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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사정은 그랬다. 큰 길에서 들어온 작은 주택단지인 우리 동네는 유난히도 조용한 곳이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있던 예전에는 시끌벅적했다던데, 지금은 아이들이 자라 출가하거나 청소년이 된 집이 대부분이라 한적한 동네가 되었다.

유치원에도 가지 않고 종일 집에서 떠들고 노는 아이들이 셋이나 있는 집은 우리 집뿐이라 마당에서 놀다 민원도 몇 차례 받은 바 있다.

너무나 조용한 동네에 시끌벅적 사남매

층간소음을 피해, 마당에서 마음껏 놀게 하려고 이사온 단독주택인데 마음같지 않은 민원을 겪고 나니 그제야 수시로 낮은 담을 넘어 오는 이웃들의 시선을 느끼게 되었다. 나이 든 부부들이 대부분인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젊은 가족은 이웃들에게 관심거리였다. 게다가 마당에서 풀어 키우는 짜니의 등장으로 이목은 더욱 집중되었다.

자꾸 밤에 컹컹 짖을 거야!
▲ 혼자는 짜니 자꾸 밤에 컹컹 짖을 거야!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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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입에 우리가, 특히 짜니가 오르내린 사정은 그랬다. 우리 전에 살던 세입자가 키우던 큰 개가 있었는데, 맞벌이 부부, 학원에서 늦게 돌아오는 아이와 함께 살던 그 개는 외로움 탓인지 유난히도 많이 짖었다고 한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낮이고 밤이고 짖어대는 통에 숱한 민원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시골 어딘가로 떠나갔다는 슬픈 이야기.

그런 사연이 있던 집에 또 개가 들어온 것이다. 언뜻 봐도 새끼 송아지만큼 크고 진돗개의 야성이 번뜩이는 개가! 마당에서 풀어 키우는 짜니를 보고 동네 어른들과 우체부, 택배 아저씨들은 오며가며 담장 너머로 한마디씩 하셨다.

"이 동네 어디 집은 개 풀어 키우다 전기 검침원을 물어서 돈을 물어줬대. 묶어. 저러다 텃밭이나 비닐하우스 가서 농작물이라도 파헤치면 그것도 예사 일이 아니야."
 
"이제 '개춘기' 시작이야, 어서 묶어, 개는 묶어 키우는 거야"

미처 몰랐던 개의 사정은 그랬다. 생후 6개월에서 1년까지라던가, 1년에서 2년까지라던가, '개춘기'라는 게 있다더라. '개'와 '사춘기'가 더해진 말로 혈기왕성한 개의 한 시기를 이르는 말인 듯했다. 산책길에서 짜니를 보는 사람들마다 '개춘기엔 고생 좀 할 거다'라 하더니, 그 말은 봄이 채 오기도 전에 현실로 나타나버렸다.

짜니는 신발, 이불, 방충망 뭐든 물어뜯지요
▲ 팬티 쯤은 애교 짜니는 신발, 이불, 방충망 뭐든 물어뜯지요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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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사연만 늘어놓자면, 현관에 놓인 신발 여러 켤레 해 먹은 것은 기본으로 빨래줄에 널어 놓은 옷 물어뜯기, 현관에 두고 간 택배 상자는 물론 내용물까지 찢어놓기, 널어놓은 솜이불 뜯어 마당에 솜으로 눈밭 만들기 등등.

앞발을 세워 달려들어 가족들과 손님들 옷을 찢은 것도 몇 번이나. 어릴 적부터 야금야금 뜯어놓은 현관 방충망은 '방충'의 구실을 잃어버린 지 오래.

흙 속에 코를 박고 흙냄새를 맡으며 땅속 벌레를 잡고 놀 수 있는 화단이 있고,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계단과 빙글빙글 돌며 놀 수 있는 마당도 있고, 하루에 한번 이상 동네 이곳저곳으로 산책도 했지만 짜니는 수시로, 그것도 점점 더 맹렬하게, 잔디 뿌리가 무자비하게 끊어지게 땅을 파댔다.

뭔가 스트레스가 쌓인 개들이 땅을 판다던데, 잘해준다고 해도 짜니는 뭔가 불안하고 부족했나 보다. 눈치에 코치까지 봐야 하는 세입자는 방충망 수리를 시작으로 다음 봄엔 잔디도 사다 심어야 하나 걱정이 커져만 갔다.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1박2일 친정집에 다녀와 여느 때처럼 "짜니야!" 하고 부르며 대문을 열었는데, 짜니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놀란 식구들이 짜니를 다급하게 불러대자 옆집에서 짜니가 담을 훌쩍 넘어 오는 것이 아닌가! 화단에 올라서면 아이들도 쉽게 넘을 수 있는 담이 짜니에겐 간식으로 소시지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짜니, 담을 넘어 옆집으로!

옆집엔 4~5년 된 소형견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동안 담 위로 앞발을 올리고 서로를 쳐다보며 지냈다. 주로 짜니가 애정을 갈구했고, 옆집 개는 도도함으로 어쩌다 한 번씩 담 옆으로 와 짜니를 상대해줬다. 옆집 개와 놀고 싶은 욕구와 몸집이 점점 커지자 짜니는 식구들이 집을 비운 틈을 타 옆집으로 행동반경을 넓히고 만 것이다. 

그러길래 담은 왜 넘어서...
▲ 긴 줄에 묶여버린 짜니 그러길래 담은 왜 넘어서...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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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니의 사정은 그랬다. 겨울이 되면서 식구들이 마당에 나가 있는 시간이 줄고, 늘 열려 있던 현관문마저 닫혀버리자 외로웠을 것이다. 현관 방충망 앞에 앉아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개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텔레비전을 보는 즐거움도 꽤 쏠쏠했는데 말이다.

거의 하루 종일 마당에서 혼자 지내게 된 짜니는 담이라도 넘어 같은 처지의 옆집 개와 놀고 싶었나 보다. 개는 무리지어 사는 늑대과의 동물 아니던가.

이후 짜니는 또 옆집으로 넘어갔고, 옆집 개 허벅다리를 물어 피를 보고야 말았다. 놀란 마음에 옆집 개를 안고 동물병원에 가 치료를 받고, 상처 입은 옆집 개에게 양질의 간식을 바쳐야 했다. 다행히 개 키우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다며 이해해준 옆집과 그 일을 계기로 담 사이로 먹을 걸 나눠먹는 사이가 되었지만 아찔한 기억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비닐하우스로 나 있는 앞쪽 담을 넘어가 버리면 일파만파 커질 일들이 불 보듯 뻔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짜니를 결국 묶어 키우기로 했다. 1미터 남짓한 줄에 묶인 짜니는 추운 겨울인데도 개집에 들어가지 않고 묶인 채 갈 수 있는 최대한의 곳에 가 웅크리고 현관문만 원망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간식도, 사료도 입에 대지 않고…….

담 너머가 궁금해서 그러니?
▲ 줄에 묶여도 높은 곳에 올라가는 짜니 담 너머가 궁금해서 그러니?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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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니와 함께 동네 산책을

줄에 묶인 짜니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마당 양 끝에 말뚝을 박고 그 사이에 와이어 긴 줄을 달고, 그 줄에 도르레가 있는 짧은 줄을 달아 개들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넓혀주는 줄을 새로 사 옮겨 주었다. 풀려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마당을 돌아다니게 된 짜니는 다시 개집에 들어가 자고, 사료도 먹기 시작했다.

짜니를 묶어 키우게 되자 많은 문제가 해결되었다. 신발도 빨래도 물어뜯지 않고, 밤이면 평상 위에 올라가 담 너머 텃밭으로 지나다니는 들고양이, 새를 보며 짖지도 않았다. 땅도 파지 않았다.

하루 아침에 줄에 묶여버린 자신의 신세에 기가 죽은 듯 했다. 풀 죽은 짜니를 위해 우리는 최대한 시간을 내어 짜니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섰다. 그 전에도 이틀 걸러 한 번씩은 시켰던 산책이었지만 줄에 묶인 이후로는 하루의 중요한 일과로 산책을 넣었다.

하루에 적어도 한번, 많게는 두 번, 세 번씩 시간 날 때마다 운동 겸 아이들과 짜니를 데리고 인적이 드문 길과 한강 생태공원으로 나섰다. 주말엔 가능하면 일정을 줄여 간식을 싸들고 온 식구가 짜니와 함께 2~3시간 코스로 산책을 했다.

길게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새벽에 일어나 짜니 산책을 먼저 시켰고, 밤늦게 돌아오는 날엔 집에 들어가기 전 잠깐이라도 짜니에게 바람을 쐬어 주었다. 짜니 덕분에 우리는 늘 다니던 길에서 벗어나 이웃 동네까지 구석구석을 알게 되었고, 애 셋을 낳아 키워도 꿈쩍 않던 내 체중도 앞자리가 바뀌는 듯 했다.

뭐가 있길래 자꾸만 땅을 파니 짜니야?
▲ 땅 속에 얼굴을 묻고 뭐가 있길래 자꾸만 땅을 파니 짜니야?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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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산책의 후유증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한파가 와도, 폭설이 쏟아져 눈밭에 발이 푹푹 빠져도 짜니와 아이들은 산책을 이어갔다. 그러다 더 큰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한 채 생후 1년이 되어가는 짜니는 습지가 있는 산책길에서 자주 수풀 속으로 맹렬히 뛰어들었다.

아마도 새나 작은 벌레, 혹은 들고양이 기척에 그랬던 듯하다. 리드줄을 잡고 있던 나는 몇 번이고 몸이 쏠려 넘어질 뻔했다. 주인 옆에 나란히 서서 산책시키는 훈련을 시키지 않으면 오십견이 올지도 모른다더니 몇 달간의 산책으로 내 어깨엔 심한 무리가 오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 대신 남편이 출근 전 아침 6시 30분에 짜니와 산책을 나갔다. 새벽 산책이 하루 이틀 이어지자 짜니는 새벽 6시를 넘기면 짖기 시작했다. 닭도 아닌데 말이다. 단잠에 빠진 이웃들에게 행여 피해라도 갈까봐 서둘러 일어나 짜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야 했다.

남편이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또 짖어댔다. 데리고 나가달라는 건지, 밤이 되어 야성이 살아나는 건지, 봄이 가까이 오자 봄바람이 나려는 건지, 아무튼 짜니는 점점 더 크게, 자주 짖어댔다.

새벽과 밤으로 우린 짜니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다. 뒷집 개도 짜니 못지 않게 짖었지만, 아이들 노는 소리에도 민원을 제기하는, 소음에 예민한 이웃을 둔 우리는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3월이 되었고, 친정 아빠 기일을 맞아 1박2일로 친정에 다녀오는 늦은 밤, 대문엔 이웃의 메모가 붙어 있었다.

줄이 묶인 답답함, 산책으로 풀자
▲ 동네 뒷산에도 오른 짜니 줄이 묶인 답답함, 산책으로 풀자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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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개 헛짖음, 휴일에 잠 좀 잡시다!"

다음날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에게 물어보니 저녁이 되어도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다 지친 짜니가 초저녁부터 짖기 시작했고 가까이 지내는 이웃들이 담 너머로 고기를 던져주며 몇 번이고 달랬지만 늦도록 계속 짖고, 다음날 새벽에도 주인을 찾으며 한참을 짖었다고 한다.

잠시라도 집을 비우면 짜니의 긴 줄이 나무에 묶이진 않았는지, 주인을 찾으며 짖지나 않는지, 이웃들에게 눈총을 받지나 않는지 걱정이 늘어지던 차 대문에 붙은 메모와 이웃들 이야기에 그동안 애써왔던 마음이 그만 흔들리고 말았다.

결국 짜니를 친정집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개 때문에 걱정하는 내게 많은 이웃들이 "개가 짖는 게 당연하지"라며 너그럽게 넘겨주셨지만 이런 일이 길어지면 서로가 피곤해 질 게 뻔 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수술을 권할 만큼 악화된 내 어깨와 짜니 산책길에 삔 남편의 발도 오래토록 낫지 않고 있었다.

봄이 오는 냄새를 따라 달리고 싶은 짜니, 그러나 늘 묶여 있는 줄
▲ 봄이 오는 습지 봄이 오는 냄새를 따라 달리고 싶은 짜니, 그러나 늘 묶여 있는 줄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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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어린 짜니를 싣고 친정에서 서울로 온 지 7개월 만에 다시 짜니를 싣고 친정으로 돌아가게 되다니……. 작은 상자 안에 폭 들어가던 강아지 짜니였는데, SUV 트렁크에 태워야만 하는 성견이 된 짜니.

강아지 짜니는 서울로 오는 내내 잠을 자더니, 다 큰 짜니는 뭘 아는지 모르는지 3시간 내내 한숨도 자지 않고 트렁크에서 아이들이 있는 뒷좌석으로 넘어오려고 애를 썼다. 불안해하는 짜니와 함께 우리 다섯 식구는 엉엉 울면서 짜니가 마음껏 짖어도 되는 친정집으로 향했다.

개 두 마리는 키우기 힘들다 하신 친정엄마껜 전화도 드리지 않고 말이다.

 (다음 글에 계속)


태그:#반려견, #육아일기, #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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