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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26일은 UN이 정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입니다. 원래 이 날은 1945년 6월 26일 UN 헌장이 채택된 날이며, 1987년 6월 26일 UN 고문방지협약(정식명칭: 고문과 그밖의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UN협약)이 발효된 날이기도 합니다.

1998년 6월 26일 당시 UN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 날을 제정하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 세계인에게 전했습니다.

"오늘은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우리의 존경을 표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전 세계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일에 대해 힘껏 외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수많은 고문피해자, 생존자들에게 오늘의 기념일을 헌정하는 것은 너무도 늦었습니다."

반기문 현 UN 사무총장인 역시 2012년 6월 다음과 같은 기념 메시지를 발표하였습니다.

"UN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을 맞아, 우리는 고문으로 고통 받는 전 세계 수십만의 피해자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보냅니다. 또한 우리는 각 국가들이 고문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모든 고문피해자들에게 효과적이며 즉각적인 보상과 배상, 재활을 위한 사회적, 심리적, 의료적 지원 등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강조합니다. UN 총회와 인권이사회는 공히 지금까지 각 국가들이 고문피해자 재활 센터 등 관련 시설들을 지원하고 설립하기를 강력히 촉구해 왔습니다."

2016년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로고
 2016년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로고
ⓒ IR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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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이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음은 일찍이 근대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논파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탈리아 출신의 고전 법이론가 체사레 베카리아 였습니다.

그는 "똑같이 두 무고한 자 혹은 두 범죄자 중에서 억세고 용기 있는 자는 그 혐의를 벗게 되고, 나약하고 겁 많은 자는 유죄가 선고될 것이다", "형이 선고되기 전에는 누구도 유죄라고 할 수 없다, 범죄사실이 확실하다면 고문은 불필요하고, 불확실하다면 법률에 따라 무고한 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몽테스키외도 그의 저작 <법의 정신>에서 "고문은 전제정에서나 적합한 관행이며, 강압적 자백이 아닌 신중한 수사만이 범죄자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국제사회는 고문금지에 관한 국제규범을 만들게 됩니다. '세계인권선언'(1948),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1966), '만인에 대한 고문과 잔혹하고 비인도적 혹은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 금지에 관한 UN선언'(1975), '고문과 그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UN협약'(1984), '이스탄불 의정서'(1999) 등 고문의 근절을 위한 국제적 노력은 계속되어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갑오개혁(1894) 당시 고문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고, 오늘날 우리 헌법 제12조에도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과연 이 고상한 선언들로, 고문은 전근대의 유물로 사라진 것일까요?

국제엠네스티 "세계 150개국에서 고문 사용 중"

몇 해 전 국제엠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세계 150개국 이상에서 고문이 사용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고, 그중 70개 이상 국가에서는 광범위하게, 그리고 80개 나라에서는 고문에 의한 사망자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고문은 그 특성 상 외부로 그 진상이 자세히 드러나기 쉽지 않습니다. 드러난 사례가 이러하다면 은폐된 고문은 보다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무리가 없습니다.

물고문은 얼굴에 수건이나 헝겊을 덮고 그 위에 물을 지속적으로 부음으로써 질식할 것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는 고문 방법입니다. 미국 CIA는 2002년 9.11 테러 발생 후 체포된 3명의 알케에다 용의자들에게 이 물고문을 여러 차례 실행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직접 물고문 실행을 승인했습니다. 대부분의 공화당 의원, 부시 행정부 각료들, 전직 CIA 국장들, 딕 체니 부통령 등도 "테러범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 "완전히, 전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행위"라며 CIA를 옹호했습니다. 미국이 적어도 자국 영토 내에서 물고문을 금지한 것은 2009년 오바마 대통령에 와서 이루어졌습니다. 자국 영토 내에서 라는 전제가 매우 위험스러워 보입니다만.

우리나라는 고문에 관한 한 매우 독특한 역사적 유례를 가진 나라입니다. 갑오개혁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나고 말았듯이, 갑오년 이후에도 식민지 백성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일제의 잔혹한 고문은 비일비재 했습니다.

일제 하 고문이 더욱 잔혹했던 것은 '조선인의 손으로 조선인들을' 고문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정보, 사찰, 공작을 담당했던 조선인 고등계 형사들은 고문 기술자들이었습니다. 노덕술, 최연, 김태선, 김태석, 김영호, 이구범, 노주봉, 김창룡 등이 일제하에서 악명을 떨친 친일 고등계 형사, 헌병들이었습니다.

해방 후 이들 친일 고등계 '순사'들은 미군정 하에서 다시 경찰로 복귀하여 한국 경찰의 중추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으로서는 반대파를 숙청하는데 고등계 순사들의 탁월한 정보, 고문, 공작 능력이 더없이 요긴했고, 고등계 출신 세력들은 생존을 위해 권력의 보호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친일 경찰들 일부는 이후 특무대, 방첩부대를 거쳐 군대로 스며들기도 합니다. 1949년 6월 6일 새벽 일제 고등계 출신 세력들이 반민특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는데 극적으로 성공하면서 일제하 고문기술자들은 완벽하게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수많은 고문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1948년 수도경찰청 고문치사사건, 1951년 한양대 박창건 교수 고문치사사건, 1952년 전남 무안경찰서 성고문 사건, 1953년 조봉암 선거운동원 김성주 살해사건, 1958년 조봉암 사건, 1964년 인혁당 사건, 1968년 해방전략당 사건, 납북어부 사건, 1971년 서승 서준식 형제 사건, 1973년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사건,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1975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조작사건, 1979년 크리스찬 아카데미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982년 학림, 부림, 송씨 일가 사건, 1983년 오송회 함주명씨 사건, 1985년 김근태 민청련 의장 고문사건, 1986년 부천서 문귀동 성고문 사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1989년 미술인 홍성담 고문사건 등.

1990년대 군부 집권세력이 물러나면서 확실히 고문조작 의혹사건들은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과거 고문피해 사건 재조사, 진실규명, 피해자 치유지원을 위한 활동이 확산되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기 설립된 각종 과거사규명기구들이 고문 등 인권침해사건을 파헤쳤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이어지면서 과거 고문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중단되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잠들 때, 고문의 망령은 부활합니다

국정원에 의한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국정원에 의한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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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동안 잠잠했던 고문 조작 의혹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2013년 유우성씨 간첩조작사건이 발생하면서 국정원 조사과정에서의 고문가해와 증거조작 문제가 다시 터져 나왔습니다. 유우성씨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간첩 누명을 벗게 되었습니다. 유우성씨의 동생은 171일간 사실상 불법구금 상태에서 모욕과 심리적 고문과 폭행 등 가혹행위를 당하고 허위 진술을 강요받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직 고문은 사라지지 않은 게 분명합니다. 민주주의가 잠들 때 언제든 고문의 망령은 부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문도 사라지지 않았고, 고문의 상흔은 우리 내부에 더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문은 개인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데 멈추지 않고 사회 속에 공포를 은밀히 확산시켜 대중을 침묵하게 함으로써 목적을 완성합니다.

진실화해위원회 등 그동안의 여러 국가 조사기구들이 조사하여 확인한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 30만 명이 넘습니다. 고문의 영향력은 그보다 훨씬 크고 은밀하게 우리 사회에 잠재해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공포의 촉수가 뻗치고 있습니다. 마치 일제 고문기술자들이 독립운동가 한 사람을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인들이 그런 생각 자체를 가지지 못하도록 공포감을 조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해자들은 한 사람의 고문피해자를 만들어 전체 사회를 침묵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인권의학연구소와 김근태기념치유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고문피해자들의 76.5%가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진단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3배에서 10배 이상 높게 나타났습니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사회적, 경제적 고통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최근 고문피해자들의 2세들에서 우울과 불안, 공황장애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앞서 두 명의 전, 현직 UN 사무총장은 고문범죄에 관한 국가의 재발방지와 피해 회복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경우, 고문피해의 구제에 관한 사법적 절차도 아직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당사자와 가족을 죽음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던 고문피해에 관하여 여전히 국가는 사과하지 않고 성실한 배상 의무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법원은 국가배상의 소멸시효를 두고 고문피해자들의 배상신청이 불과 열흘(혹은 몇 달) 늦었다고 하여 최소한의 국가배상 의무마저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습니다.

고문피해자들의 재활과 회복을 위한 조치는 아직 아무런 진전이 없습니다. 2012년 12월 국회에서 발의된 "고문방지와 피해자 구제지원을 위한 법안"은 지난달 19대 국회 해산과 함께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근태기념치유센터는 개소3주년과 UN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을 맞아 국회에서 기념행사를 오는 16일 오후 4시부터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기념행사라고 하지만 고문 방지와 고문피해자들의 삶의 회복과 재활을 위한 과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자리입니다. 조영선 변호사는 "20대 국회의 고문방지와 피해자 치유지원 입법과제"에 대해 발표합니다.

이 행사에는 고문피해자 치유와 명예회복 활동에 큰 기여를 한 분들께 감사패를 증정하고, 고문 피해 당사자들과 이들의 치유지원을 위해 노력해 온 변호사 등 여러 관계자들이 식전행사와 문화공연에도 직접 참여할 예정입니다.

식전행사에는 권재희(해방전략당 사건 권재혁 선생의 유족), 인재근(김근태 의장의 부인, 국회의원), 양길승(전 녹색병원장), 기동민(국회의원), 박우섭(인천 남구청장), 오영훈(국회의원), 유은혜(국회의원), 조영선(변호사) 등이 참여하고, 기념 문화공연에는 임진택 명창의 창작판소리, 재일동포 가수 이정미씨의 노래 공연,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의 합창, 그리고 유동우, 박순희, 최미경씨 등 고문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1년여 간 연습한 판소리 공연이 이어집니다.

김근태기념치유센터 개소3주년 및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행사.
 김근태기념치유센터 개소3주년 및 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행사.
ⓒ 김근태기념치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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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김근태기념치유센터는 개소 3주년과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을 맞이하여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1. 국가는 고문피해자들에 대한 치유와 지원 대책을 즉시 수립하고 시행해야 합니다.

2. 국가는 과거 고문 조작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전면적인 진실규명 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3. 국가는 고문범죄를 규정하고, 고문가해자들의 공직진출 금지, 구상권 행사, 연금 박탈 등 응분의 처벌을 해야 합니다.

4. 국가는 UN 고문방지협약 등 국제법을 존중하고 고문 근절과 인권 피해자들을 법적, 사회적, 의료적으로 보호하는 입법 조치를 지체 없이 실행해야 합니다.

5. 사법부는 고문 조작 등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자의적인 국가배상 기준을 철회하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실질적 배상을 위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배상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태그:#국제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김근태기념치유센터, #고문, #고문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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