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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OECD 회원국 중 1위이며 노인 빈곤율 또한 심각한 수준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는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로의 변화에 비해 노인 복지에 대한 대책은 지지부진한 우리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우리 시대의 어른들이 살아온 날들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삶의 남은 시간들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스스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남은 시간들을 뜻깊게 보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는 삶의 끝자락을 홀로 조용히 정리하며 웰다잉을 준비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담담히 그린 그림책입니다. 제목을 보면 단순히 '크리스마스'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크리스마스는 할머니의 생활과 할머니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할머니는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밖으로 나가기 싫어합니다. '할머니의 기억이 장난을 쳐서'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느 날의 크리스마스에 화환을 걸다가 완전히 지쳐버린 할머니는 화환을 1년 내내 걸어두고 크리스마스 무렵에만 불을 켭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너희끼리 재밌게 놀아! 좋은 시간 보내! 내 걱정은 하지 마. 나도 즐겁게 보낼 테니" 하고 이야기하십니다.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인디아 데자르댕 글, 파스칼 블랑셰 그림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인디아 데자르댕 글, 파스칼 블랑셰 그림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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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몸은 이제 늙어 손이 떨리기 시작해 요리도 그만 두었습니다. 60년 동안 사랑했던 남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랜 단짝도 세상을 떠났지요. 곧 할머니의 차례도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아침, 화장실에 가려고 발자국을 옮기다가 할머니는 몸을 움직이기 점점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외출을 하지 않습니다.

나이듦을 반가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조금씩 고장 나는 자신의 몸을 감당해야 하는 마음은 두렵고 슬픕니다. 그래서 갱년기 우울증에서부터 노년의 우울증까지 극복해야 할 숙제들이 하나 둘 주어지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밖에 나가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고, 미끄러질 수도 있고, 힘없는 노인이라고 강도가 노릴 수도 있기에 위험하다고 느낍니다. 반면 집은 추억이 어려 있고, 익숙한 냄새가 위안을 주고 매주 음식 배달부와 미용사, 의사가 와서 도와주니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집 안에 자꾸 고립되고 맙니다.

 인디아 데자르댕 글, 파스칼 블랑셰 그림
▲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인디아 데자르댕 글, 파스칼 블랑셰 그림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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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르게리트 할머니에게 특별한 크리스마스가 찾아옵니다. 배달된 크리스마스 도시락을 꺼내고 샴페인을 따서 혼자만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순간, '딩동' 벨이 울립니다. 문 밖에서 '끼이익 꽝'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면서요.

할머니는 저승사자라도 찾아온 게 아닌지 당황해 합니다. 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은 할머니 집 앞에서 갑자기 차가 고장난 가족일 뿐입니다. 할머니는 강도일까 봐 두려워 하는 마음을 누르고 도와주기로 결심합니다.

견인차를 부를 수 있게 전화기를 쓰게 하고, 화장실이 급한 아이와 아이 엄마를 집 안으로 들어오게 허락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차와 음식을 들고 차 안에서 떨고 있는 가족들을 향해 걸어 나옵니다.

할머니는 세상을 향해 걸어 나옵니다. 사실 할머니가 두려워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던 것입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성큼성큼 눈 쌓인 집밖으로 나왔을 때 할머니의 인생 3막 1장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롭게 적응하며 살아가야 할 노년기의 삶을 위해 할머니는 '고독'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고독'은 노년의 삶이 두려운 할머니의 '방어막'이었습니다. 두터운 방어막을 걷어내고 한 발짝 걸어 나올 때 산뜻하고 맑은 공기 숨 쉴 수 있는 진짜 삶이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삶이 두려움이 되는 그날을 맞이합니다. 그날에 마르게리트 할머니처럼 삶을 다시 조용히 보듬는다면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일부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웰다잉을 만들어 가는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나의 노년에게도 일찌감치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마르게리트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 2014년 볼로냐 아동도서전 라가치 상 수상작

인디아 데자르댕 글, 파스칼 블랑셰 그림, 이정주 옮김, 시공주니어(2018)


태그:#시공주니어, #마르게리트할머니,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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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속 보물들을 찾아 헤매는 의미 탐색자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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