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창조'가 화두인 시대입니다. 여기저기서 창조경제를 말합니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에도 창조라는 단어가 접두어처럼 붙습니다. 일터에서는 창조적 업무를 강조하고, 학교에서는 창조적 교육과 창조적 학생을 주장합니다.

사회 곳곳에서 틈만 나면 아부의 손바닥을 비비듯 '창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나라 돌아가는 시대형편은 창조를 거스르는 비창조가 아닌가 싶습니다. 창조를 한자로 쓰면 '創造'가 됩니다. '비롯하다 창(創)', '만들 조(造)' 자입니다. 굳이 풀어서 말하자면 '여럿 가운데서 처음으로 만들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 창조라는 게 어느 날 아침,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게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창조는 일순간 번뜩 떠오르는 영감이 아닙니다. 창조는 연습하고 또 연습함으로 얻을 수 있는 인고의 결과입니다. 현대의 모태가 된 르네상스시대에 이룩된 어마어마한 창조적 성과들이 이를 말해 줍니다.

"당연한 진실은, 창조성이란 오랜 세월 연습하여 획득할 수 있는 대가다운 실력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헌신적인 몰두가 창조성을 키운다(음계를 연습하는 음악가나 텐서 대수를 공부하는 아인슈타인을 상상해보면 되겠다).(후략)" - 193쪽

르네상스시대에 창조적 결과물을 탄생시킨 창조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수공업자로 간주하며 공방에서 일하고 생활하던 사람들입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어떤 주관적 영감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진 듯 보일 수도 있는 수작업, 평생에 걸친 연습을 통해서 터득한 결과였습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장인의 경지에 다다를 만큼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데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창조이거늘 작금의 나라 형편은 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메뚜기 뛰듯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는 용역과 비정규직, 해고와 명퇴가 일상화 되고,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점차 까마득해지는 시대니까요. 거듭되는 연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창조와는 점차 멀어지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상을 창조적 순간들로 경험하는 기술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지은이 프랑크 베르츠바흐 / 옮긴이 정지인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5월 27일 / 값 13,800원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지은이 프랑크 베르츠바흐 / 옮긴이 정지인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5월 27일 / 값 13,800원
ⓒ 불광출판사

관련사진보기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지은이 프랑크 베르츠바흐, 옮긴이 정지인, 펴낸곳 불광출판사)에서는 르네상스시대와는 다른 시대, 수작업 같은 연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창조가 불가능해진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삶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창조의 씨앗을 발아시키는데 필요한 햇살 같은 힌트, 물 기운 같은 방법을 귀띔처럼 들려주고 있습니다.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여섯 글자가 머릿속에 섬뜩하게 각인됩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 불공정에 침묵하는 사회, 부당한 대우, 부당한 처사에 항거하지 못하는 사회야말로 학습된 무기력에 점령당한 비창조적인 사회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닌 것을 보고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고, 부당한 지시와 불공정한 계약에 항거할 수 있고, 사회적 불의에 별 다른 부담 없이 머리띠를 두르고 데모에 동참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러울 때 '학습된 무기력'이 사라지고 진정한 창조 경제가 가능한 그런 사회가 도래할 것입니다.

아마도 행복 연구에서 나온 가장 중요한 결과는 이것이 아닐까. "가난한지 부유한지, 건강한지 아픈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결혼했는지 이혼했는지 등의 외적인 상황이 행복 수준을 결정하는 경우는 약 1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 168쪽

창조는 바로 보는 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바로 보는 마음챙김으로 학습된 무기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선입견, 고정관념, 편견의 틀 또한 바로 봄으로 벗어날 수 있고, 행복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부와 미모 등이 행복을 결정하는 데 미치는 영향이 고작 10% 미만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볼 때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나머지 90%를 챙길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어떤 빌딩도 궁극적으로는 모래 한 알 철근 한 토막이 쌓인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그 어떤 일들도 사실은 모래 한 알 같고 철근 한 토막 정도의 작은 일들이 쌓이고 퇴적된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직시할 수 있다면, 생각을 가두고 있는 감옥의 창살이 의외로 쉽게 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고, 일상에 휘둘리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면 행복은 시작되고 심신은 건강해 질 것입니다. 우리는 기술적 도구의 도움으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시간이 모자라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후렴구처럼 책 마지막 부분에 쓰여 있는 일곱 글자, '가서 차나 마셔라!'를 삶에 대입시켜보는 순간순간들이야말로 우리들 삶을 창조적 순간들로 경험하게 하는 행복 기술의 출발점이 될 거라 기대됩니다.

누군가가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하고 묻는다면 '시대적 창조'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는 "'가서 차나 마셔라!'라는 말로 대신해도 뇌느냐?"고 묻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지은이 프랑크 베르츠바흐 / 옮긴이 정지인 / 펴낸곳 불광출판사 / 2016년 5월 27일 / 값 13,800원



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 일상을 창조적 순간들로 경험하는 기술

프랑크 베르츠바흐 지음, 정지인 옮김, 불광출판사(2016)


태그:#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 #프랑크 베르츠바흐, #정지인, #불광출판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