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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 이화여대 기독학과 교수가 2014년부터 2년동안 '꽃자리' 웹진에 연재한 글을 묶어 <버리지 마라 생명이다>라는 책을 지난 4월 말에 출간했다.

'다시 김교신을 만나다'라는 부제가 달린 <버리지 마라 생명이다>는 1901년에 태어나 1945년에 생을 마친 김교신 선생의 글과 삶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백 교수는 단순히 김교신 선생의 글과 삶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김교신 선생의 글과 삶을 연결지어 이해하기 쉽게 소개했다. 

책 출간 뒷 이야기와 함께 김교신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자 지난 8일 이대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백 교수를 만났다. 다음은 백 교수와 나눈 일문일문을 정리했다.

- <버리지 마라 생명이다>라는 책을 지난 4월 말에 출간하셨어요. 한 달 조금 지났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저자로서 제 몫은 성실하게 써서 내는 것까지이고 그 뒤는 제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래 책 출간 후에는 반응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편이에요. 일단 반응은 아주 폭발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 주위의 반응은 어떤가요?
" 김교신 선생님의 일생이나 사상을 단선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제 이야기와 접목한 이중구조가 새롭다고 해주세요.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짚어주어서 고맙다고 하시는 분도 계세요."

백소영 이화여대 교수
 백소영 이화여대 교수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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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의 의미는 뭔가요?
"<버리지 마라, 생명이다>는 나중에 생각한 제목이에요. 원래 꽃자리 '웹진'에서 연재할 때는 '김교신 다시 읽기'로 진행했었기 때문에 그대로 할까도 생각했어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도 '꽃자리' 출판사 대표님에게 '김교신 선생을 젊은이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데 젊은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소개해 주실 수 없냐?'고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거든요.

어떤 방식으로 소개할지를 고민했어요. 요즘 젊은이들과 소통하려면 1920~30년대 김교신 선생의 글을 그대로 소개하는 것은 딱딱해요. 그래서 요즘 얘기를 시작으로 김교신 선생을 만나게 하는 방식이 좋겠다는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와 우리 사회의 이야기부터 풀어나가게 되었어요.

요즘 눈만 뜨면 일어나는 일이 죽음과 죽임의 사건들이었잖아요. 그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김교신 선생의 텍스트를 가져오다 보니 공통으로 나온 게 결국 <버리지 마라, 생명이다>라는 제목이었어요. 승자독식 구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순수하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쓸모없는 사람을 버리는 것이 아무렇지 않으니까요. 그것은 일제치하를 살았던 김교신 선생의 안타까움이기도 했고 신자유주의 경제구조를 살아가는 우리의 안타까움과 맞물린다는 생각이 들었죠. 때문에 '생명은 그 어떤 이유로도 버려질 수 없다'는 것이 공통의 메시지라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하는 삶'을 살다 간 김교신 선생

- 부제가 '다시 김교신을 만나다'예요. 교수님은 김교신 선생으로 박사 논문을 쓰셨잖아요. 김교신 선생이 어떤 분이었는지 소개 부탁드려요.
"짧게 소개하면 학교 선생님이셨고 일제 강점기를 사신 분이에요. 1901년에 태어나셔서 1945년에 돌아가셨으니까 그야말로 소년 이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일제 치하에 있었던 분이시잖아요. 한 인간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는 악조건이라는 악조건은 다 갖춰진 곳에서 인간으로, 신앙인으로, 그리고 조선인으로 자기 주체성을 잃지 않고 소신껏 사시고 가르치시다가 가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삶 자체가 '스스로 하는 삶'이셨어요. 조선어로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었음에도 여전히 강단에서 우리말로 수업을 진행했고, 교회와 관련해서도 서양에서 들여온 제도나 교리를 그대로 따라 하던 주류 교회들과는 달리 주체적인 신앙으로 소화해서 '무교회'라는 조선산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셨어요.

김교신 선생을 흔히 무교회주의자로 아시잖아요. 그러나 그것만 설명하기에는 굉장히 넓이나 깊이가 남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보고 평가하라고 한다면, 굉장히 주체적이고 스스로 자기 삶의 의미나 자리를 해석해 가셨던 분이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그런 점에서 요즘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꼭 불러와야 하는 인물이죠."

- 김교신 선생을 어떻게 연구하게 되셨어요?
"제가 김교신 선생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96년 즈음이었어요.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논문을 써야 하는 때였는데, 그때 <성서조선>을 접하게 되었죠. 제가 관심을 갖은 신학적 주제가 '교회론'이에요. 지금의 교회들이 성장주의적으로 정당화하는 교회론의 대안으로서 성서적이면서도 현대 사회에 적합한 교회 모델을 찾으려 했어요. 그런 것을 잘 얘기한 사람은 없을까라는 고민을 가지고 공부했는데 서양 학자에게는 별로 매력을 못 느꼈어요(웃음).

하버드대학교 옌칭 도서관의 지하에 있는 한국관에서 <성서조선>을 처음 보았어요. 정말 낡았고 굉장히 한문이 많아서 읽기 힘든 책이었지만 <성서조선> 창간사를 읽을 때 가슴이 뛰던 것이 기억나요. 김교신과 그의 <성서조선> 동인들은 지식인이었음에도 지식인을 위한 비전이 아니라 평신도를 향한 꿈을 꾸었거든요. 성경을 읽는 해석의 권위를 산골에서 나무를 베는 사람에게까지도 주려 했어요. 모든 평민에게 스스로 성서를 읽을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한 거죠. 

제가 생각하는 교회의 작동원리는 소유 나눔과 권위 나눔이에요. 많은 교회가 어느 정도 소유 나눔은 실천하지만, 권위 나눔은 잘 안 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지향하는 신앙 공동체가 무교회 공동체였어요. 성직자라는 특별한 계층 위계를 두지 않은 평신도 모임인 데다가 서로 돌아가며 성서연구를 한 결과물을 나누었거든요. 그 결과물이 <성서조선>이었는데 연구하다 보니, 여러 가지 사정으로 주필이 되신 분이 김교신 선생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김교신 선생을 연구하게 된 거죠. 그분이 무교회라는 운동을 한다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무교회 운동을 만났죠."

"버려지는 생명의 삶 사는 사람 많아요"

<버리지 마라 생명이다> 책 표지
 <버리지 마라 생명이다> 책 표지
ⓒ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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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이야기가 많아요.
"의도한 게 아니라 '꽃자리'에서 연재를 시작했던 것이 2014년이었어요. 그 시점에 가장 큰 이슈가 세월호여서 당연히 그 이야기가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었죠.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써서 모으다가 2년 만에 출간했으니 아무래도 이야기 중에서 많은 꼭지를 차지하게 되었죠.

충분히 구출할 수 있는 정황이었음에도 구출 안 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라서 많은 생명이 버려진 사건이잖아요. 근데 그것을 우리가 계속 기억하고 고민하지 않는다면 이 땅에서 생명을 살려내는 것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를 해봤자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거죠. 왜냐면 우리가 살려낼 수 있는 생명을 못 살려낸 건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어떻게 말하면 서서히 침몰해 가는 세월호 같은 시스템은 우리 사회 도처에 너무나 많이 있어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줄 알지만, 그저 하루하루 일상에 치여 살다 보면 어느덧 버려지는 생명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 김교신 선생은 무교회주의자였잖아요. 요즘 교회 안 나가면서도 신앙을 지키는 이른바 '가나안 성도'가 늘어나요. 김교신 선생이 주장했던 무교회주의와 지금 일어나는 '가나안 성도'는 같은 것인가요?
"제도 교회 안에 갇힌 신앙이 아니라는 점에서 넓게 보면 겹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나 가나안 성도는 개인화된 신앙도 가능하거든요. 물론 일본 무교회주의에서도 '1인 1교회주의'라고 해서 한 사람이 무교회를 주장하고 살아낼 수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다수의 무교회주의자는 공동체를 지향해요. 이 공동체는 제도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산 신앙을 가지고 삶으로 살아내는 진정한 신앙 공동체라는 이야기예요.

무교회주의자들은 교회를 없애자고 말하는 게 아니라 교회를 본래의 영을 가진 공동체로 만들자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에클레시아'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사용해요. 신약성경에 나오는 단어인데 뜻으로 풀자면 '밖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일상에서 교회로 살아가는 공동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하기 위해 에클레시아로 살아내는 것을 주장하는 거죠.

가나안 성도와 같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제도교회 바깥에서의 신앙이 가능하다고 보는 점이에요. 그러나 구별되는 점은 교회의 본질은 공동체라는 것에 있고 그게 혼자만의 단독자가 아니라 최소한 두 사람이라도 하나님 안에서 너를 살려내는 일을 실천하는 에클레시아를 주장한다는 점이죠. 물론 가나안 성도 중에서도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분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이름 자체는 개별화된 개인을 포함하는 말이지 싶어서요.

제가 교회의 원리를 권위와 소유의 나눔이라고 했잖아요. 그건 혼자는 못 나누는 것이에요. 소유도 둘 이상이 있어야 나누고 권위도 둘 이상이 있어야 나누는 건데, 나눔이라는 관계적 혁명이 가능하고 그것이 일어나는 관계가 에클레시아라고 생각해요. 그 부분에서는 대부분의 무교회주의자들이 공감하는 부분이거든요."

- 한국교회의 타락이 사회 문제가 된 지 꽤 되었잖아요. 아마 이대로 가게 되면 한국 교회는 원래 그런 곳으로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여요. 김교신 선생이 현재 한국교회를 보면 뭐라 할까요?
"현재 우리의 사회 시스템이 적자생존의 가장 반생명적인 시스템잖아요. 만약 김교신 선생이 이 땅을 살아간다면 누구보다 성경적인 분이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적인 승자독식의 적자생존 시스템을 비판하지 못하고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에 대해 가장 통탄하실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물론 2/3 이상의 교회들이 아직 미자립이고 공동체로서 생명을 유지하기도 힘들만큼 어려운 교회들이라 그들까지 포함해서 '한국교회'라는 이름으로 같은 비판을 할 수는 없죠. 하지만 요즘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교회들은 대부분 대형교회로 승자독식의 구조 속에 성공을 획득한 교회잖요. 그런 교회가 보여주는 문제가 사회의 상류층인 10%가 보여주는 문제와 다르지 않아요. 그러나 교회에서 같은 모습을 보일 때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 더 가혹한 것은 교회는 안 그래야 할 공동체라는 기대감이 있어서겠죠.

김교신 선생이 제일 많이 싸웠던 부분은 '껍질을 붙잡는 것'이었어요. 여기서 껍질이란 건 제도로써의 교회나 강력한 시스템으로써의 제국을 붙잡는 건데, 지금 우리나라가 가진 가장 큰 생명 없는 껍질은 신자유주의라고 생각해요. 시장 내 효율성이나 유연성이란 이름으로 생명을 계속 착취하고 버리는 시스템이죠. 한국교회도 이 작동원리에 포섭을 당한 거죠.

그래서 교회 안에서조차, 심지어 목회자 중에서도 권위를 나눌 뿐만 아니라 소유를 나누는 기본적인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거죠. 목회자 간에도 담임 목사가 가지고 있는 권위나 소유가 부교역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위나 소유와 비교할 때 너무 큰 간극이 있잖아요. 제 책에 '초불초'라는 꼭지가 있을 거예요. 부모를 닮지 못함을 얘기하시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인데 여호와께 우리 부모님이 되신다고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은 그분이 만들어 주셨고 그렇게 살기를 원했던 모습으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거죠. 그걸 전혀 못 하고 세상질서대로 살아가는 한국교회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저는 <오마이뉴스> 독자분들이 버려지거나 은폐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예민함이나 사회적 민감성을 가지고 계신 게 너무 감사해요. 만약 제 책이 그 부분에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면 행복하겠어요. 제 책의 의도는 버려지는 생명을 향한 민감한 감수성을 가졌던 20세기 인물을 21세기에 소환해 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김교신 선생 자체를 회고하자는 의도보다는 김교신 선생의 삶을 우리 자신의 삶으로 끌어왔으면 좋겠어요. 김교신 선생은 자기가 불리할 줄 알면서도 소신껏 버려지는 생명을 계속 품으시면서 살았던 분이거든요. 독자님들도 이미 그런 식의 삶을 사시겠지만 그런 삶을 계속 다짐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태그:#백소영, #김교신, #무교회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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