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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에서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다시 봄이 올 거예요>(창비, 2016, 아래 '다시 봄')을 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봄>에 담긴 10대들의 목소리를 좀 더 깊이 듣고 새로운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 <오마이뉴스>에 '<다시 봄>을 읽다'라는 제목으로 여섯 차례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네 번째 글은 이윤승 선생님이 보내주셨습니다. - 기자말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려는 관성의 힘은 참으로 작은 듯하다. 아주 작은 일로도 우린 평온을 잃고 슬픔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슬픔의 방향은 내리막이라서 그 슬픔을 멈추기란 쉽지 않다. 움직임을 만들었던 힘보다 더 큰 힘을 주어도 속도만 줄여줄 뿐이다. 결국 슬픔의 끝자락에 다다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추스를 수 있다. 사람마다, 슬픔의 동기마다, 슬픔의 끝에 이르는 시간은 모두 다르다.

나와 아주 가까운 이의 부재로 인한 슬픔은 수년의 시간으로도 모자라다. 나는 청소년 시절 청소년 인권 침해를 겪으며 자살을 시도했고, 그 때문에 신체의 장애를 얻었다. 건강과 모든 꿈을 잃은 후의 분노, 좌절, 원망의 시간을 보내고 다른 생각을 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도 삶의 변곡이 일어났던 날을 '그날'이라고 부른다. 그 시간을 마주하기가 어려워 '그날'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책 표지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책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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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4월 16일 한 동네 같은 또래의 학생들이 한순간에 생명을 잃었다. 부모, 형제자매, 친구는 각자의 자리에서 부재를 인정해야 하는 길고 긴 시간을 겪어야 했다. 대중이 부르는 그 사건의 이름 대신 '그일'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분들의 이야기가 <다시 봄이 올 거예요>에 담겨있다.

한 페이지를 넘기기도 쉽지 않은 책. 수잔 손택은 영상매체에서 보여주는 고통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게 하기보다는 고통을 일상적으로 만들어 사치스러운 얕은 연민만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참사 이후에 과잉된 고통의 영상은 대중들에게 공감만이 아닌 다른 감정을 일으켰다.

쉽게 잊고 쉽게 연민하며 2년을 보냈다. 그로 인해 공감 없는 자들은 '그만 좀 하라'는 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고 교실 존치에 대해 논의할 때에도 배려 없는 말들이 오갔다. 책을 통해 천천히, 아주 서서히 바라보았다면... 그렇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면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세월호와 닮은 학교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나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으며 1주기를 보냈고, 2주기 때는 <다시 봄이 올 거예요>(아래 <다시 봄>)와 함께 했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슬픔을 대하는 방식은 조금 담담해졌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의 유가족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폭력을 보는 시각은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다를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교사다. 물론 모든 교사들이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학교의 모습이 세월호와 많이 닮아 있음은 대부분 인정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봄>을 읽고 어떤 모습이 닮아있고 우리 학교가 어떻게 바뀌어야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운다, 정똘, 현, 하나, 먼지라는 이름의 학생들이 함께 읽었다.

다섯 중 넷은 나와 함께 지역에서 '야자'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강좌를 기획하고 있다. 청소년 인권에 관심이 많으며 고맙게도 나에게 반말을 해주는 친구들이다. 교사와 학생, 어른과 청소년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같은 형태의 말을 사용할 때 쉬워진다. 덕분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솔직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다.

2년 전, 4월 16일에 대한 학생들의 기억은 모두 달랐다. 아침에 소식을 들은 사람, 저녁에 집에 가서야 알게 된 사람, 혹은 한참 동안 단순한 사고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 그런데 그들 모두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이건 잘못된 것 같은데...'

그런 의문들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집회도 나가보고 416연대에 후원이라도 했던 학생은 2주기를 안산에서 보냈다. 이야기를 나눈 5명 중 셋은 비 오던 2주기의 그날, 광화문광장에서 함께 비를 맞았다.

사고 직후부터 유튜브, 페이스북, 팟캐스트를 통해 정보를 얻으려 했던 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고 한다. 정상적인 생활이 이뤄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멀리서 비극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도 이러한데 가까이, 너무도 가까이에서 비극을 겪은 분들의 마음은 어떨지 상상조차 어렵다. 그런데 그분들의 고통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그만하라'는 말이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만 유효한 말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실망은 더 커졌다.

버스에 타 있던 한 학생은 뒤에서 누군가의 '그만하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고, 안산에서 도보행진을 하는 동안 옆에서 그 말을 들었던 학생은 이곳이 과연 안산이 맞나 싶었단다. 유가족들은 정말 진저리나게 들었을 텐데, 그 말이 모든 장기를 녹이는 말들이었을 텐데. 그래서인지 <다시 봄>을 읽으며 학생들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었을 때 느꼈던 슬픔과는 다른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었을 때는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에 <다시 봄>을 읽을 때는 잊지만 않아도 좋겠다는 그 말들이 너무 소박한 거야. 그렇게 안 착해도 되는데 너무 착한 사람들 같아."

"잊지만 않기를 바라는 그 분들의 모습을 보니 그렇게 만든 세상에 대해 너무 화가 나."

학생들은 왜 화가 났을까. 세월호의 진실만을 원했지만 그것조차 너무 힘겨웠던 상황에 화가 났을 수도 있다. 그 분들을 힘들게 한 사람들이 소수의 권력자들만이 아니어서 화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10대를 살아가는 자신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기에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책에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생존자로서 앞으로의 삶을 더 값지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모습도 있고 희생당한 형제자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있다. 그럼에도, 희망을 말하는 그 안에도 짙은 안개 같은 것이 보인다. 세상의 어른들이 쌓아둔 벽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스스로를 의심하도록 만들어"

우리 사회는 고통을 겪는 어린 존재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그들의 고통을 성인의 고통과 비교하고 고통의 유효기간도 정해놓고 있다. 어린 나이이니 세상을 더 희망적으로 보라고 한다. 고통의 당사자만 이런 일을 겪는 건 아니다. 슬픔에 공감하는 10대들도 같은 일을 겪는다. 학교는 참사가 있고 바로 모든 수학여행을 취소하는 과잉을 보이더니 바로 다음해에는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수학여행을 기존의 방식대로 추진한 곳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에 슬퍼하는 학생들에게 추모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데에도 인색했고 다시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기 가족이 당한 일도 아니니 그만하면 됐단다. 한 나라의 누군가가 깊은 슬픔에 빠져있지만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지금 자신의 성공을 위해 달려야만 한다고 가르치는 곳이 우리의 학교였다. 특히 학생이기에, 청소년이기에 공감과 슬픔도 성인들의 그것보다 가볍게 여겼다.

슬픔, 분노 같은 감정 뿐 아니라 학생과 청소년은 어리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학교와 가장 닮아있는 지점이다. 단원고의 학생들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학교가 가만히 있도록 가르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지점에 대한 학교와 교사의 반성은 지난 2년간 얼마나 있었나.

여전히 학교는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세월호의 선원이 학생들에게 했던 그 말을 학교에서도 똑같이 쓰고 있다. '슬픔은 빨리 잊어라,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지금 너희들은 이렇게 해야만 한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의 말들이 학생들에게 전해지고 학생들은 그 말에 따라 교사와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세월호에 탔던 학생들에게 선원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 때, 학생들은 그들이 전문가니까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거야.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잖아. 선생님들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말해주면 학생들은 그렇게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까. 그 둘의 상황이 너무 비슷한 거야. 청소년은 그냥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존재가 되는 거지."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특히 세월호와 너무나 닮아 있는 학교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아직도 학교는 청소년과 아동에 대해 미숙한 존재로만 보고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그들의 행동과 감정조차 모두 미숙하고 가볍게만 바라본다면 언제든 비극은 또 일어날 수 있다. 혹은 지금 이 순간 수많은 학생들은 학교에서 비극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생활하면 점점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아. 내 생각대로 하려고 하면 선생님들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그렇게 하면 안 될 거다, 그렇게 해서 되나보자, 네가 어려서 판단력이 흐린 것 같다고 말하지. 사실 선생님들도 자신들의 경험밖에 알지 못하는 건데."

"12년 동안 겪은 교사들은 대부분 학생들에게 확신을 주기보단 스스로를 의심하도록 만들게 했어. 자신의 선택을 믿지 못하게 한 후 교사들의 선택을 강요하곤 했어."

이제 세월호를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도 달라져야 한다. 잊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삶에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내 삶이 변화되어야만 잊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마치며 교사로서의 삶의 변화를 약속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삶의 변화를 부탁했다. 교사로서 더 이상 학생과 청소년에게 보호라는 이름으로 억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학생 또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선택을 강요당하길 거부하고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어리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길이다.

자존감이 낮아져 안락함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기보단 기꺼이 자유를 위해 살아가기를 바란다. 학교만이 아닌, 교사와 부모만이 아닌 다른 곳들에서 스스로 정보를 찾고 자료를 모은 후 자신의 선택을 만들었으면 한다. 교사와 부모가 원하는 삶이 아닌 곳에서의 삶도 충분히 가능하며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린 자들이 겪고 있고 겪게 될 비극의 고리를 끊는 길이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 -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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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