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피겨는 은반 위의 예술이라고 한다. 기술과 예술이 절묘하게 합쳐져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 그런 차가운 은반 위에서 항상 영화 속 여주인공과 같은 팔색조의 매력을 뽐내는 선수가 있다. 바로 10년 만에 미국에 세계선수권 메달을 안겨준 애슐리 와그너다.

와그너는 한 때 '피겨 여왕' 김연아와 함께 매 경기마다 마지막조에서 뜨거운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3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애슐리 와그너는 이젠 제법 관록이 묻어나는 선수로 성장해 있었다.

"한국의 아이스쇼, 안 좋아하는 선수가 어딨겠나"

 미국 피겨 선수 애슐리 와그너.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국 피겨 선수 애슐리 와그너.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영진


애슐리 와그너가 올댓스케이트 아이스쇼에 처음으로 참가한 건 지난 2013년. 당시 치명적인 매력을 선보이며 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녀는 3년 만에 다시 한국에 왔다. 그녀는 한국의 아이스쇼는 정말 특별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아이스쇼 관객들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관객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말 스케이팅을 좋아합니다. 매 공연 때마다 항상 뜨거운 환호로 저를 맞아주고 정말 저의 퍼포먼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너무나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에너지가 항상 느껴지고, 아마 이런 관중들을 좋아하지 않는 선수는 없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와그너는 이번 아이스쇼에서 지난 시즌 자신이 쇼트프로그램으로 선보였던 '힙힙 친친'(Hip Hip Chin Chin)을 다시 한 번 보여주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경기에 사용하는 프로그램답지 않게 흥이 넘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이 음악은 애슐리에게도 각별했다.

"제가 이 프로그램을 처음 들었을 때 딱 느낌이 왔어요. 스케이팅을 하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다른 것에는 신경쓸 겨를도 없이 온전히 스케이팅에만 신경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줬습니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은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안무도 그렇고 정말 잘 어울렸던 프로그램이라고나 할까요?(웃음)"

관중과의 호흡을 꿈꾸는 피겨 스케이터

 애슐리 와그너의 아이스쇼 연기 모습.

애슐리 와그너의 아이스쇼 연기 모습. ⓒ 박영진


어느덧 제법 관록이 있는 선수가 된 애슐리 와그너. 그녀가 세계 피겨계의 정상을 지키고 있는지도 벌써 5년이 훌쩍 넘었다. 피겨의 특성상 10대 후반 내지 20대 초반이 전성기이고 선수생활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만 24세인 그녀가 수 년째 정상권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사실 선수들이 계속해서 실력을 유지하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어렸을 땐 대회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선수에게 있어 무엇보다 동기부여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어린 선수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고 기술적으로 발전해가고 있기에 자극도 되고 긴장도 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넌 계속해서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주는 것도 큰 힘이 되죠."

피겨선수로서 그녀가 항상 가지고 있는 고민은 바로 '관중'이다. 매 시즌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들고 나와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 은반 위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 같은 존재로서 늘 고민하기 일쑤. 사랑스러운 모습부터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연기까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에게 이런 생각은 항상 행복을 가져다 준다.

"제가 음악을 선정할 땐 제 안무가인 셰린본과 자주 상의를 합니다. 그녀와 호흡을 맞춘지 벌써 몇 년이 됐는데, 그녀에게 항상 관중들이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음 좋겠다고 얘기합니다. 두 캐릭터(여성스러운 캐릭터, 섹시한 캐리터)를 모두 좋아합니다. 치명적인 프로그램은 빠르고 에너지가 넘친다고나 할까요. 반면 로맨틱한 프로그램의 경우엔 정말 드라마틱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지난 시즌 프리스케이팅이 그랬어요."

"모든 걸 해내는 선수로 기억되길 바라요"

 애슐리 와그너의 아이스쇼 연기 모습.

애슐리 와그너의 아이스쇼 연기 모습. ⓒ 박영진


와그너가 처음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 2012년 자신의 조국인 미국에서 열렸던 4대륙선수권. 당시 프리스케이팅에서 블랙스완 연기로 금메달을 목에 건뒤, 그녀는 그랑프리와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다수의 메달을 목에 걸며 미국의 간판선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2년 전 소치 동계올림픽에선 단체전 동메달을 따내며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유독 세계선수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번 포디움(3위 이내 입상)에서 한 발 차이로 메달을 따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어느덧 미국은 10년간 피겨 세계선수권에서 메달리스트를 배출하지 못했다.

그랬던 그녀는 절치부심 끝에 지난 3월 보스턴에서 열린 2016 피겨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4위에 오른 후, 프리스케이팅에선 가장 마지막으로 등장해 '물랑루즈'에 맞춰 진한 매력을 풍기는 연기를 선보이며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리고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하며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세계선수권 메달을 거머쥐었다.

"이 메달은 제게도 미국에게도 정말 특별합니다. 미국이 지난 10년간 세계선수권에서 포디움에 들지 못했기에 이번엔 꼭 이루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시합 전에 긴장도 많이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동안 저는 세계선수권에서 번번히 메달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저의 조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기회를 놓치기 싫었고 그렇게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 메달은 정말 제게 의미 있고 자랑스러운 메달이었어요."

와그너에게 이제 남은 것은 올림픽 메달. 2년 전 소치에서 팀동료들과 함께 포디움에 오른 그녀는 이젠 개인전에서 시상대에 서기를 희망하고 있다.

"지난 (소치) 올림픽에 나갔을 때 개인적으로 이런 기회가 주어져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즐기려고 했습니다. 평창에선 제가 즐기는 올림픽을 할 것이고, 또한 많은 한국인들이 와서 지켜봐 줄 것입니다. 다음 올림픽에선 정말 포디움에 드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오랜시간 차근차근 성장해 오며 결국 피겨계의 정상에 선 그녀. 오랜시간 선수생활을 하며 대기만성형이라 불리는 와그너는 인터뷰 말미 훗날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묻자 고민 끝에 이렇게 답했다.

"포기 않는 선수. 그리고 어떤 것이든 해내는 선수로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 2018년 올림픽땐 정말 기억에 남을 만한 무언가를 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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