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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운의 <경계인을 넘어서> 겉그림.
 박찬운의 <경계인을 넘어서> 겉그림.
ⓒ 스마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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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경계인'이라는 화두를 꺼내 든 것일까? 적어도 내가 아는 박찬운 교수(한양대 법대)는 결코 경계에 서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그는 변호사로서, 인권운동가로서, 인권법학자로서, 무엇보다 지성인으로서 누구보다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이해관계가 아니라 가치에 맞게 경계를 넘어 선택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사색만 하거나 아니면 행동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경계인'을 자신의 책 제목(<경계인을 넘어서>, 스마트북스)으로 내걸었을까? 참으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책 머리말에 그 이유가 나오기는 한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투사 / 연구자, 주류 / 비주류, 이상주의자 / 현실주의자라는 경계로 범주화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확실히 어느 쪽이라고 분류하기 힘든 경계인이다. 그렇다. 나는 하루하루를 고독한 경계인으로 살아간다. 그게 나의 정체성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땅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본문 8쪽)

아마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생겨나는 실존적 긴장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런 의미의 경계인이라면 세상사람 누구나 경계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본문을 아무리 읽어봐도, 내 이해력이 부족해서인지, '경계'에 서 있는 사람 특유의 실존적 고민, 즉 두 세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치밀한 논리적 사유와 그에 따른 과감한 실천적 결단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그러니 이 책이 제목으로 내세운 '경계인'은 송두율 교수 이후 이런저런 사람들이 사용한 '경계인'과는 결이 다른 셈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말하는 '경계인'을 우리들 누구라도 매순간 서는 자리, 결단해야 하는 긴장 속의 존재방식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게 보니 저자의 다음 메시지는 그 결단이 선택하는 길, 즉 경계를 넘어서 가야 할 방향에 대한 것이 된다.

이 땅에 자유·평등·정의가 흐르게 하는 일

"이 땅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 즉 지금 이곳에 자유·평등·정의, 그리고 사랑이 흐르게 하는 일이 바로 그것. 이를 위해 저자는 인문정신으로 돌아간다. 말과 글로 자신이 아는 것을 정확하게 양심껏 표현해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겠다는 것.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으로 비판 정신, 저항 정신, 창조 정신을 갖겠다는 것.

그의 다짐을 보며 나는 좀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저자야말로 혹독하던 시절부터 원래 이렇게 투철히 살아온 사람이 아닌가. 당장 그가 SNS를 통하여 일상적으로 쓴 글 몇 꼭지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재심의 문을 열고, 감옥의 인권을 개선했으며, 소록도의 기적을 만들어냈고, 당직 변호사 제도를 도입하는 등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을 확장시키는 데에 자신의 열정을 쏟아 왔다.

책을 읽다 보면 어린 시절부터의 경험을 통하여 인생관과 세계관이 이루어져가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는 저자의 공적인(일부는 사적인) 삶이 서서히 스며들게 됨을 느낀다. 저자의 인생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며 많은 문제들과 만나며 답을 갈구한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원래 의도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 책을 박찬운의 삶과 생각을 모은 공적 영역의 '자서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거기서 나는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다.

대저 뿌리가 깊고 튼실한 사회에서는 어떤 위치에 서든 사람을 가르칠 때 그 도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가르쳐 세상에 내보낸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당장 법조계만 해도, 시험과목으로 전락한 법조윤리 말고는, 변호사론이나 법관론 같이 법률가론이라고 부를 교육은 물론이고 잘 정리된 책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척박한 현실... 한 법률가의 치열한 삶

우리는 '법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관해 진정 배우지 못했고, 당연히 가르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 한 법률가의 치열한 삶과 사유를 담은 이 책이야말로, '법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놓고, 법률가 되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큰 비전을, 매너리즘에 빠져든 기성 법률가에게는 각성을 줄 그런 교과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변호사로서의 숱한 실무경험과 인권법학자로서의 연구, 그리고 현장에서의 실천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성찰해낸 결과를 담아냈기에 그 울림은 더욱 값지다.

물론 이 책을 법률가의 공적 자서전이라는 범주에 묶어둘 수는 없다. 전인적(全人的)인 인문정신을 희구하는 '르네상스맨'답게 저자는 책, 미술, 역사, 여행, 정치, 경제, 종교, 사회, 지식인론 등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며 거의 전방위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안동에 가게 되면 임청각, 법흥사지 7층 전탑을 무심히 지나치지는 못할 것이다. 공지영의 <의자놀이>를 읽으며 마주하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진실은 슬프고 화난다. 의존사회와 독립사회라는 대비 개념을 만들어 복지사회를 말할 때 저자의 창의성이 빛난다. 만년의 버트란드 러셀을 불러내 그의 시 <이디스에게>를 직접 번역해 자유로운 사랑을 예찬하는 대목은 진정 아름답다. '쓸모없는 것'에 대한 찬양에는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다. 쾌락과 절제의 균형을 이야기할 때에는 저자가 결국 법률가임을 확인하게 된다.

'나답게 멋대로 살라'는 말에는 독자를 끓어오르게 하는 울림이 있다. 어떤 이야기든 저자는 우리에게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고 부딪치고 창의적으로 바꾸라고 말한다. 결국 선택의 문제이다.

그렇다. 우리는 매순간 어떤 경계에 서서 끊임없이 선택해야만 한다. 그런데 권력은, 그리고 자본은 체제가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이 유일한 살길이라는 믿음을 전파해왔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겁에 질려 비판도 저항도 하지 못하면서 다르게 생각하는 힘, 즉 꿈꿀 능력을 잃어버리고 '안전한' 길만 선택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진정한 나의 선택이고 안전한 길일까? 이런 세상에서 법률가는, 그리고 시민은 무엇으로 사는가?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늘 고민하고 깨어 있으라는 것. 그리고 온전히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되 연대하라는 것. 책을 덮으며 새삼 느끼는 것은 계몽정신의 힘이다.

덧붙이는 글 | <경계인을 넘어서>(박찬운 / 스마트북스 / 2016.03. / 1만4800원)
글쓴이 최용성는 서울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로, 이 글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보>(2016년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경계인을 넘어서

박찬운 지음, 스마트북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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