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하다. 배우 박종환(33)과 대화 후 든 생각이다. 지난 5월 3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만난 박종환은 한 번도 예측된 대답을 하는 법이 없었다.

 거짓말로 먹고사는 남자 완주(박종환 분)는 돈 때문에 살인사건의 거짓 목격자가 된다.

거짓말로 먹고사는 남자 완주(박종환 분)는 돈 때문에 살인사건의 거짓 목격자가 된다. ⓒ CGV아트하우스

<양치기들>의 김진황 감독은 박종환 캐스팅을 "<양치기들>을 만들며 가장 잘한 일"이라며 "신의 한 수였다"고 평했다. 김 감독의 극찬을 전하자 박종환은 "제가 가진 개성과 감독님이 상상한 완주가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며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기복 없는 표정 속에 드러나는 엉뚱함, 느린 듯 진중한 말투. 박종환과 완주는 정말 많이 닮아있었다. 영화 속 완주는 연극배우를 하다 역할대행업을 하며 거짓말로 먹고사는 남자이다. 어머니 병원비를 위해 거짓 증언을 하다 곤경에 빠지는 인물. 박종환은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다른 건 신경 못 쓰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가 자신과 많이 닮았"다면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자신도 (완주처럼) 가치 판단이 흐려질 때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꿈 없던 청년을 영화로 이끈 선임

 영화<양치기들>에서 완주 역의 배우 박종환 이 3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기복 없는 표정 속에 드러나는 엉뚱함, 느린 듯 진중한 말투. 박종환과 완주는 정말 많이 닮아있었다. ⓒ 이정민


입대 전까지 진로에 대해 별생각 없었다는 박종환. 그에게 군 선임은 "너 제대하고 뭐 할 거야? 할 거 없으면 나한테 영화가 어떤 건가 들어볼래?"라고 제안했고,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네"라고 답했다고. 그게 시작이었다.

"선임에게 촬영, 조명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선임이 제대하는 바람에 오래가진 못 했지만, 그동안은 영화를 그저 관객으로서 체험하는 입장이었다면, 만드는 사람의 입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입장으로 생각해보게 됐죠."

하지만 박종환은 제대 후 바로 영화에 뛰어들 수 없었다. 집에 손을 벌릴 수 없어 1년 간 헬스트레이너, 스쿼시 강사 등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1년간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은 후, 독립 영화 사이트를 오가며 스태프 일을 했다.

그 경험은 짧은 입시 준비 기간에도 그가 서울예대 영화과에 합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그는 학교에 쉬이 적응하지 못했다. 흘러흘러 영화과에 진학하게 된 그에게 명확한 꿈과 목표를 이야기하는 동기들의 모습은 낯설었다. 영화에 대한 꿈과 열정, 재능이 가득한 동료들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결국 "내 길이 아니다, 나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고,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수업 받으면서 느낀 건 저 빼고 모두 특별하다는 거였어요. 생각하는 것도, 고민하는 것도 달랐어요. 단지 나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게 아니라, 왜 영화가 하고 싶은지 꿈이 명확했어요. 저랑은 달랐죠."

연출가 꿈꾸던 박종환, 배우 되다

 영화<양치기들>에서 완주 역의 배우 박종환 이 3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종환은 늦게 들어간 서울예대 영화과를 1년 만에 그만뒀다. 영화에 대한 꿈과 열정, 재능이 가득한 동료들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 이정민


그리고 그는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영화와 아무 관계도 없는, 호텔 사우나에서의 아르바이트. 뚜렷한 계획 없이 일했고, 돈이 모이니 무턱대고 여행을 떠났다. 2주간의 캐나다 여행 후, 그는 다시 영화계 언저리로 돌아갈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영어 뮤지컬 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낮에는 영어 뮤지컬 학원, 밤이면 연극영화과 입시학원이 되는 그곳에서 그의 일은 학생들에게 유인물을 뽑아주고 선생님들의 수업 시간표를 짜주는 것이었다. 영화는 다시 하고 싶지만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에게 예상 밖의 제안이 왔다. 소봉섭 감독이 영화 출연을 제안한 것이다. 대학 시절 그가 과제로 출연했던 단편 영화를 소 감독이 봤다고 한다.

자신에게 연기가 맞는지 안 맞는지 확신이 없던 박종환은 오래 공을 들여 고민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한번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처음 해보는 연기는 때로 "너무 창피"했고, "너무 힘든 경험이었"지만 "연기와 맞다", "계속 배우하고 싶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었다.

"소 감독님은 디렉팅하는 데 있어 결과물보다 제가 고민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특히 '난 널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셨을 때는 자신감과 함께 '잘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죠."

꿈 없던 20살, 꿈을 찾았다 여긴 22살,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학교를 그만둔 24살. 예측불허로 지나온 20대를 지나, 박종환은 2010년 영화 <독이 담긴 잔>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 <잉투기> <베테랑> <검사외전> 등으로 활동 반경을 키워갔다. 그리고 최근 개봉한 영화 <양치기들>은 그의 첫 장편 주연작이다.

"가족극 아버지 역 해보고파"

 영화<양치기들>에서 완주 역의 배우 박종환 이 3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양치기들>은 박종환의 첫 장편 주연작이다. <양치기들> 김진황 감독은 박종환 캐스팅을 "<양치기들>을 만들며 가장 잘한 일"이라며 "신의 한 수였다"고 말했다. ⓒ 이정민


박종환은 <양치기들> 기자간담회에서 생활 연기를 칭찬하는 기자들에게 "나는 그저 생활인일 뿐"이라면서 "잘 생활하고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박종환에게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역할을 잘 이해하고 카메라 앞에서 그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 그래서일까? 그에게 던진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아 보고 싶으냐"는 뻔한 마무리 질문은 '앞으로 누구의 삶을 이해해보고 싶으냐'는 무거운 질문이 됐다.

"누군가를 잘 이해하는 편이 아닌데, 역할을 맡아 연기하다 보면 그 인물이 이해되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 가족 구성원이 중심이 되는 극의 아버지 역을 해보고 싶어요. 평생을 두고 이해해 보고 싶은 분이거든요."

박종환은 최근 임시완·진구 주연 영화 <원라인> 촬영을 마치고 최민식·곽도원 주연 영화 <특별시민> 촬영에 한창이다. 요즘 <특별시민>에서 그가 살아내고 있는 역할은 서울 시장 선거 운동 방해원이라고. 그는 앞으로 또 어떤 이들의 인생을 살아낼까? 언젠가 그가 아버지 역을 맡게 될 때까지, 그 사이에 그려낼 또 다른 삶들이 기대된다.

 영화<양치기들>에서 완주 역의 배우 박종환 이 30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종환은 최근 임시완·진구 주연 영화 <원라인> 촬영을 마치고 최민식·곽도원 주연 영화 <특별시민> 촬영에 한창이다. ⓒ 이정민



양치기들 박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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