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곡성>과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가 압도한 한 달이었다. 지난달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한국과 미국의 상업영화계가 달성한 최고의 지점을 번갈아 만나는 호사를 누렸다. 이들 영화는 지난 몇 달간 영화다운 영화에 목말라 있던 영화팬들을 해갈시키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그 안에 담긴 세계관은 때로 지나치게 종교적이거나 폭압적이었고 때로 현대사회에 대한 교묘한 은유였으나, 그를 이해했든 이해하지 못했든 만족스러운 감상이 되었으리란 점만큼은 분명하다.

지난 한 달 동안 두 영화는 나란히 500만이 넘는 관객을 나눠 가졌고, <엑스맨: 아포칼립스>와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 1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아 뒤를 이었다. 규모 있는 네 작품의 질주 뒤에는 채 십만을 넘기지 못한 많은 작은 영화의 좌절과 예술영화관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의 폐관이 자리했으나, 여기까지 눈길을 돌리는 여유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누리달(6월)은 수년 간 손꼽아 기다린 명장의 귀환부터 치열하게 제 자리를 확보하려는 웰메이드 장르물과 기획영화가 뒤엉키는 현장이 될 것이다. 승리가 예견된 작품이 몇 편 보이긴 하지만 대다수는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치열한 접전을 앞두고 있다. 누리달의 승자는 과연 어떤 영화가 될 것인가? 그럼 지금부터 10편의 기대작을 꼽아본다.

[하나] <아가씨>

아가씨 포스터

▲ 아가씨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박찬욱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확고부동한 입지를 구축하고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복수 3부작을 내놓아 취향과 보편의 조화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은 한국의 대표감독 박찬욱의 신작이다. 때로 그의 이름은 홍상수, 김기덕과 함께 놓여 한국 예술영화의 대표주자로 꼽히기도 하고 봉준호, 김지운, 최동훈 등과 같이 불려 대중영화의 기수로 여겨지기도 한다. 예술성과 작품성이란 말이 21세기에도 유효하다면 박찬욱 만큼 둘 사이의 조화를 높은 수준에서 이룩한 감독도 흔치 않을 것이다.

박찬욱의 신작 <아가씨>는 게이, 레즈비언 등 성소수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가 사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한다. 일찌감치 성적 긴장감이 넘치는 작품이 될 것으로 여겨진 것도 이 때문이다. 원작자인 사라 워터스뿐 아니라 박찬욱 역시 <공동경비구역 JSA>부터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박쥐> 등을 거치며 성에 대해 적지 않은 관심을 보여왔기에 원작과 연출자의 흥미로운 결합을 기대하기 충분하다.

하정우, 조진웅, 김혜숙, 문소리 등 쟁쟁한 배우들에 김민희, 김태리라는 가능성 있는 배우가 더해진 출연진은 박찬욱에게 충분한 재료가 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가 그려낸 작품이 무엇일지는 이미 1일부터 관객의 평가받기가 시작됐다.

[둘] <더 보이>

더 보이 포스터

▲ 더 보이 포스터 ⓒ 리틀빅픽처스


공포의 계절이 시작됐다. 한여름을 대형 투자배급사의 대작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내준 공포영화는 이제 초여름과 초가을로 자리를 옮겼다. 꾸준히 짧아졌고 앞으로도 더욱 짧아질 것으로 보이는 공포의 계절,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몇년간 수난을 겪었던 공포·스릴러 영화는 올해 들어 부활의 날개를 펼치려 한다. 1일 개봉한 <더 보이>가 그 선봉과도 같은 작품이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 지역을 강타하고 북상한 이 영화는 소문 빠른 영화팬들의 귀를 쫑긋거리게 하고 있다.

<사탄의 인형> 시리즈 이후 인형을 소재로 한 명작 공포영화가 등장할 수 있을까? 제임스 완의 <컨저링 2>가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더 보이>가 거둘 성적에 영화팬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셋] <정글북>

정글북 포스터

▲ 정글북 포스터 ⓒ 브에나 비스타 코리아


다재다능함으로 할리우드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존 파브로의 관심사가 동화까지 확장됐다. 러디어드 키플링의 <정글북>을 동화 속에서 꺼내 스크린 위에 펼쳐낸 것이다. 할리우드 최첨단 기술로 되살린 정글 속 다양한 동물들과 천진한 모글리의 활약이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준비를 마쳤다.

빌 머레이, 스칼렛 요한슨, 벤 킹슬리, 루피타 뇽, 크리스토퍼 월켄 등 이름만 들어도 화려한 배우들이 동물 목소리로 출연을 결정했다. 초호화 목소리 캐스팅이라 할 법한데, 목소리 연기의 중요성을 익히 아는 애니메이션 팬들에겐 흥미로운 캐스팅이 분명하다. 정글에 가득 펼쳐진 위험 속에서 모글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9일 확인할 수 있다.

[넷] <컨저링 2>

컨저링 2 포스터

▲ 컨저링 2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쏘우> 시리즈를 들고 무너져가는 공포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제임스 완이 이번엔 <컨저링 2>를 들고 돌아왔다. 그에게선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인시디어스> 시리즈를 넘어 <쏘우> 이후 또 하나의 공포시리즈를 성공시키려는 야욕이 가득 느껴진다.

베라 파미가, 패트릭 윌슨 등 원작 출연진이 건재한 가운데 직접 메가폰을 잡은 제임스 완의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대단하다. 1977년 영국 엔필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전편에도 등장한 폴터 가이스트를 한 층 업그레이드 시켰다니 극장을 찾는 이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9일 개봉한다.

[다섯] <시선 사이>

시선 사이 포스터

▲ 시선 사이 포스터 ⓒ 영화사 진진


어느덧 13번째를 맞는 국가인권위 기획영화다. <별별 이야기>, <여섯 개의 시선> 등 그간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제작한 영화는 성별, 나이, 장애, 국가, 출신 등 한국사회 내부의 여러 차별의 지점을 스크린 위에 적나라하게 드러내왔다. 관객들은 그로부터 객관적인 시선에서 차별을 바라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국가인권위원회가 매년 영화를 내놓는 이유일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임순례, 박찬욱 등 내로라 하는 감독들이 이 프로젝트를 거쳐갔고 이번엔 최익환, 신연식, 이광국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영화는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과대망상자(들)>, <소주와 아이스크림>이라 이름붙은 세 편의 단편으로 이뤄졌는데 그 각각이 독특한 시선으로 한국사회가 그간 조명하지 못한 지점들을 비추고 있다고 할 만하다. 출연진으로는 김동완, 오광록 등 대중에게 알려진 배우부터 박주희, 윤영민, 정예녹, 박지수 등 가능성 있는 신예까지 다채롭다. 어쩌면 <시선 사이>는 이들 모두에게 값진 도전의 장이 될 것이다. 과연 이들은 시선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을까? 9일 확인할 수 있다.

[여섯] <닌자터틀 : 어둠의 히어로>

닌자터틀 : 어둠의 히어로 포스터

▲ 닌자터틀 : 어둠의 히어로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지난 2014년 마블이 주름잡던 코믹스 기반 히어로물의 세계에 인상적인 발자국을 새긴 <닌자 터틀> 시리즈의 속편이다. 돌연변이 거북이들의 주체할 수 없는 유쾌함은 다시금 영화팬들을 홀릴 수 있을까? 전작을 연출한 조나단 리브스만이 축출된 가운데 속편은 만만찮은 젊은 감독 데이브 그린이 맡았다. 메간 폭스와 네 명의 거북이들은 천하의 마블을 상대로 DC코믹스도 실패한 공성전을 치르려 한다. 한국에서의 전초전은 16일 시작된다.

[일곱] <프랑코포니아>

프랑코포니아 포스터

▲ 프랑코포니아 포스터 ⓒ (주)안다미로


러시아의 거장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영화 <프랑코포니아>가 한국서 개봉한다. 그의 전작 가운데 한국서 볼 수 있었던 영화가 손에 꼽는 현실을 감안하면 놓치기 아까운 기회가 될 것이다. 포스트 타르코프스키를 따질 때 못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들었던 소쿠로프의 영화인 만큼 개봉관엔 자신이 남다른 영화애호가임을 자임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질 게 분명하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에 점령된 파리에서 각기 독일과 프랑스인으로 만났지만 예술을 아끼는 마음만큼은 같았던 두 사내. 이들이 나치에 맞서 루브르를 지켜내는 이야기가 88분의 짧은 러닝타임 동안 펼쳐진다. 영화를, 예술을 사랑한다면 보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16일 개봉.

[여덟]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 포스터

▲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보나마나 성조기 펄럭거리는 할리우드발 국뽕(자극적 수법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작품을 가리키는 속어)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때로 그와 같은 영화가 당길 때도 있는 법이다. 더욱이 그게 20년의 시차를 두고 개봉하는 <인디펜던스 데이> 속편이라면 더욱 그렇다. 전편의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는 이번에도 연출을 맡았다. 높은 출연료를 요구한 윌 스미스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건 그와는 다른 문제다.

22일, 우리는 또 하나의 전설적 미국뽕을 마주한다.

[아홉] <비밀은 없다>

비밀은 없다 포스터

▲ 비밀은 없다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한국 영화계에 손예진 만큼 믿을 만한 여배우도 드물다. 잠시 주춤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연애소설>, <클래식>,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아내가 결혼했다>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는 가히 동급최강이라 할 만하다. 사이사이 <여름 향기>, <연애시대> 등으로 TV드라마 외도도 성공적으로 다녀왔다.

많은 톱스타들이 부러워할 법한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이제 한 단계 도약을 앞두고 있다. 전작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나쁜놈은 죽는다>를 통해 냉탕과 온탕을 한 차례씩 오간 그녀로서는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신작 <비밀은 없다>가 바로 그 놓칠 수 없는 발판이다.

박찬욱 감독의 관심 아래 첫 장편 연출작이었던 <미쓰 홍당무>로 주목받는 데뷔전을 치른 이경미 감독 역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 처음으로 도전한다. 이경미와 손예진에게 <비밀은 없다>가 어떻게 기억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23일 개봉.

[열] <레전드 오브 타잔>

레전드 오브 타잔 포스터

▲ 레전드 오브 타잔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정글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이야기를 물으면 사람들의 답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키플링의 동화 <정글북>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지만 남은 형편없는 소설 <타잔>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의 명작 동화와 다른 하나의 졸작 소설은 만화와 영화 등으로 수차례 변주되며 비슷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둘은 다시금 영화로 제작돼 6월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존 파브로의 <정글북>이 개봉하고 20일 뒤, 데이빗 예이츠의 <레전드 오브 타잔>이 모글리의 뒤를 쫓는다.

백인은 흑인을, 남자는 여자를, 인간은 동물을 정복하고 무너뜨리는 타잔의 이야기가 21세기에 발맞춰 어떻게 변주됐을지 기대가 적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 새 시대에는 새 이야기가 쓰여져야 마땅하다. 29일 개봉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대작을 소개합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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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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