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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홍익대학교 정문에 설치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상징 조형물이 부서진채 길가에 나뒹굴고 있다.
 1일 오전, 홍익대학교 정문에 설치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상징 조형물이 부서진채 길가에 나뒹굴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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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정문에 일베 인증을 뜻하는 손가락 상이 우뚝 세워졌다. 이 조형물은 단 2일 만에 부서졌지만 이에 대한 논쟁은 이제 표현의 자유 문제로 옮아가 더욱 불붙고 있다. 압도적인 크기와 상징성을 지닌 조형물과 달리 매우 빈약한 설명을 내놓고 있는 작가와 학과장의 입장을 바라보며 나는 표현의 자유 문제보다도 이 문제에 책임지고 있는 학교와 미술대학의 역할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제작자 홍기하씨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언론들이 그를 '작가'라며 그 일베상을 '작품'이라고 칭한다. 미대를 졸업한 나 역시 학부생일 때 작가라는 황송한 호칭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나 그 호칭이 늘 의심스러웠다.

예술을 넓은 의미로 정의하자면 누구나 작가일 수 있다. 아이가 그려놓은 벽지의 그림도 작품이라 부를 수 있으며 그 작품을 만든 아이를 작가라고 불러줄 수도 있다. 우리는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생활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장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그들을 아티스트, 작가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홍기하씨를 작가라고 부르는 맥락은 위와 같은 넓은 의미의 예술에 있지 않을 것이다. 문학과 같은 공식적인 등단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미술계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자의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몇 가지 기준이 있기야 할 텐데, 그중 하나가 미술대학이라는 제도 내에 속하는 것이다.

그의 조형물이 작품이라고 불리고, 그가 작가라고 불리는 것은 그 일베상이 딛고 있는 토대가 미술대학이며 학내 공식적인 전시의 일환으로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본인도 그것이 무단으로 설치한 것이 아니라 학교의 공식적 허가를 받고 설치한 것임을 근거로 작품이 훼손되지 않을 권리를 말하고 있다.

상당히 묘한 발언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무단으로 설치했다면 주장할 수 없는 권리이지만 학교가 승인해 줬기에 가지는 권리라는 뜻이다. 즉, 그 조형물의 권리와 작품으로서의 성격은 학교와 환경조각전이라는 제도가 뒷받침하고 있다.

미술대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나는 이 사건에서 있을 수 있었던 몇 가지 경우의 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첫째,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 교수들과 해당 수업의 동료들은 이러한 논쟁이 벌어질 것을 이미 예상하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비평했으며 그 결과 논란에 상응하는 답변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환경조각전의 담당 교수 혹은 전시 담당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준비된 답변을 내놓는다. "우리는 이 작품이 논란을 낳으리라는 것을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가지는 미학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와 같은 요지여야 할 것이다.

둘째,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담당교수나 관계자들이 학생 개인에 앞서 작품의 내용에 관해 설명하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설득한다. 혹은 이 작품이 있게 된 경위를 설명한다. 이것은 그룹전을 열었을 때 작가 개개인의 작품을 전시 주최 측이 보호하고 방어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셋째, 학교 관계자들은 침묵하더라도 제작자와 함께 수업에 참여한 동료들이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혀준다. "우리는 제작과정에서 함께하며 지켜봐 온 동료로서 이러한 이유로 그의 작업이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비평하며 발전시키는 미술대학 실기수업의 특성상 수업시간에 서로의 작품에 대한 비평의 과정이 있었다면 작품이 전시되는 시점에 동료들은 어떠한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작품 제작자 스스로가 학생들을 향해서 자신의 작업을 방어한다. 자신의 작업이 이러한 맥락에서 제작되었고, 그것이 어떤 미학적 의미를 지니는지를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1, 2, 3번은 모두 실현되지 않았고 홍기하씨는 작품의 내적 구조에 대한 탄탄한 설명 대신 매우 단선적인 '의도'만을 입장으로 내놓았다. 미술대학의 실기 수업은 대부분 학생이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교수가 개인에게 코멘트를 해주거나 함께 모여 서로의 작품에 대해 크리틱(비평)하며 발전시키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나는 동대학 순수미술과를 졸업한 학생으로서 1번~3번의 반응이 나오지 않은 것은 제작 과정에서 이러한 비평이 부재했거나 매우 빈약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고 짐작한다. 이것은 수업의 질의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느낀다면 내부에서 개선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조소과가 전시의 주최로서 책임을 가지고 있음은 다른 문제이다.

일베 인증상은 왜 질문이 아닌 인증이 되었나

31일 오전 마포구 홍익대 정문에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 상징물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조각상은 일베를 상징하는 자음 'ㅇ'과 'ㅂ'으로 회원을 인증하는 손가락 형상이다. 이 조각상은 조소과 4학년 홍기하씨가 '환경조각연구' 수업 과제로 제작해 '환경조각연구 야외조각전'(5.31~6.20)에 출품한 것으로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제목을 붙였다. 30일 오후 설치된 작품에는 음료수와 달걀을 던진 흔적과 자진철거를 요구하는 항의 메모지도 붙어 있다.
▲ 홍대 정문에 설치된 '일베' 상징물 조각상 31일 오전 마포구 홍익대 정문에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 상징물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조각상은 일베를 상징하는 자음 'ㅇ'과 'ㅂ'으로 회원을 인증하는 손가락 형상이다. 이 조각상은 조소과 4학년 홍기하씨가 '환경조각연구' 수업 과제로 제작해 '환경조각연구 야외조각전'(5.31~6.20)에 출품한 것으로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제목을 붙였다. 30일 오후 설치된 작품에는 음료수와 달걀을 던진 흔적과 자진철거를 요구하는 항의 메모지도 붙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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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하씨는 입장문에서 "저의 작품은 지금과 같은 수많은 논란이 있을 것을 예상하며 몇 개월간 교수님들과 논의를 하며 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수홍 홍익대 조소과 학과장도 비슷한 입장이다(관련 기사 : '일베 상징물' 작가 "작품 훼손, 일베와 다른 게 뭔지").

두 사람은 조형물이 일베에 대한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은 이 학과장 스스로가 주장하듯 작가의 작업 노트가 아닌 작품의 '조형언어'를 통해 말하는 것이다. 그 작품의 조형언어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첫째로 이 조형물은 전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일베는 우리 안의 이데올로기나 정서가 아니다.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과도 한참 거리가 있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 비하, 전라도 비하, 좌파에 대한 일천한 이해를 동반하는 맹목적인 반좌파, 반진보, 여성에 대한 비하와 혐오 등을 공유하고 약자를 혐오하는 것을 자양으로 삼는 매우 특정한 정치집단이다.

그들의 그 혐오와 폭력성이 가시화 되는 순간이 홍기하씨가 만든 저 손가락으로 "인증"을 하는 순간이다. 저 일베 손가락은 단순히 일베를 지시하는 기호가 아니다. 적극적인 일베 프라이드의 상징이다.

홍기하씨는 그 일베의 '인증' 손가락을 전형적인 모뉴먼트의 형식으로 홍문관 앞에 세워두었다. 그리고 제목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다. 이 조형물만을 두고 봤을 때 조형물 스스로는 일베 모뉴먼트 이상의 어떤 조형언어도 가지지 못한다. 그것의 '조형언어'는 김일성상, 이순신상과 다르지 않은 전형적인 기념비의 일차원적인 원리 위에 있고 그렇기에 충분히 일베를 찬양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조형물이다.

만약 진심으로 일베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싶은 것이었다면 제작자는 적당한 조형언어를 찾는 것을 실패한 것이다. 이것이 수개월 논의의 결과라면 교육자로서 교수가 부끄러워해야 할 지점이다.

둘째로 홍기하씨가 보여주고자 했다는 "일베가 실재함"이 과연 미술적 질문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붙이기에 일베가 실재함은 너무도 명증하다. 이미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연구되고 있고 일베를 다룬 단행본들도 많다.

강남역 10번 출구의 일베 인증 해프닝들은 그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물리적 공간으로 나와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베는 그곳에 있었고, 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홍기하씨를 제외하고는 없는 듯하다.  홍기하씨의 순진한 생각과는 달리 그 손가락이 질문이 아닌 '인증'으로 읽히는 까닭이다.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모인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일베 회원 등이 나타나 '여성혐오' 등에 대해 입장을 드러내며 추모객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충돌을 우려해서 경찰 수십명이 출동해 현장에 배치되었다.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관련, 21일 오후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모인 강남역 10번출구에서 일베 회원 등이 나타나 '여성혐오' 등에 대해 입장을 드러내며 추모객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충돌을 우려해서 경찰 수십명이 출동해 현장에 배치되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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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로 이수홍 학과장은 입장문에서 "제작의도는 일베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현재 존재하는 가치의 혼란, 극단적 대립 그리고 폭력성 등 일베 논란에 대하여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수홍 학과장은 일베 논란을 '가치의 혼란', '극단적 대립', '폭력성' 등의 속성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또한 그 작품이 일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며 '이분법적인 대립'을 걱정스럽게 생각하는 조형언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글을 보면 이 조형물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는 황당한 평가를 차치하고도 이수홍 학과장은 일베에 대해, 일베의 구성과 양태에 대해 제대로된 글 한 편 읽었는지, 일베라는 사이트에 방문은 해보았는지, 그 손가락 수인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생각은 해 보았는지, 학생들이 일베에 대해 충분히 토론하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함께 경청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제발 그들이 오랜 시간 논의를 거쳤다고 믿고 싶다. "42회를 맞는 정규교과과정의 일환으로 졸업을 위한 필수과목인" 이 전시를 위해 치열하게 비평할 기회가 학생들에게 주어졌다는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발견하고 싶다.

물 수밖에 없는 미끼를 던져놓고 웃는 자는 누구인가

영화 <곡성>은 원인없는 악과 고통속에 관객들을 밀어넣는다. 고통당하는 이유도 모르고 미끼에 물린 물고기의 심정이 되어 이리저리 휘둘리고 나면 영화가 끝나있다. 홍기하씨는 자신의 작품이 "공공성이 생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란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인가?
 영화 <곡성>은 원인없는 악과 고통속에 관객들을 밀어넣는다. 고통당하는 이유도 모르고 미끼에 물린 물고기의 심정이 되어 이리저리 휘둘리고 나면 영화가 끝나있다. 홍기하씨는 자신의 작품이 "공공성이 생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논란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인가?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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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논란을 지켜보며 매우 불쾌했고 동시에 강한 기시감을 느꼈다. 영화 <곡성>에서 황정민의 대사.

"그놈은 미끼를 던졌고 네놈 딸은 그 미끼를 물어분 것이여." 

영화 <곡성>은 원인 없는 악과 고통 속에 관객들을 밀어 넣는다. 고통당하는 이유도 모르고 미끼에 물린 물고기의 심정이 되어 이리저리 휘둘리고 나면 영화가 끝나있다.

홍기하씨는 자신의 작품이 "공공성이 생명"이라고 말한다. 또한 "대중과 거리가 먼 현대미술을 한 걸음 더 가깝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란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인가? 일베의 상징이 압도적인 크기로 세워진 것에서부터 이후로 벌어진 일베를 둘러싼 논란들을 보며 누구보다 슬며시 미소 지을 수혜자는 다름 아닌 일베 스스로일 것이다.

만약 술에 취한 모습으로 저 인증마크와 함께 사진이 찍혀 '인증'당한 적이 있는 여성이라면, 일베에게 '홍어 택배'니 하는 모욕을 들은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유가족이라면, '오뎅', '물고기밥'이라고 표현된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가족이었다면 저 인증마크를 보는 순간 고통스러워하며 몸서리쳤을 것이다.

학교의 권위에 힘입어 일베 인증 조형물이 우뚝 섰을 때 이로 인해 촉발되는 일베 비판도, 작품 비판도, 작품에 달걀을 던지는 등의 행위들도 모두 압도적인 일베의 존재감 아래에서 벌어지며 '작가의 의도'안으로 포섭된다.

이 '작가'의 권위 아래에서 모든 행위들은 현대미술을 모르는 자들의 무지몽매함 내지는 작가가 처음부터 "의도"한 논란이며, 홍기하씨의 표현에 따르면 "현대미술에 가까워지고"있는 중이며 이수홍 학과장에 따르면 "건강한 담론"의 일부가 된다.

어떤 이들은 일베를 혐오해 작품을 부순 행위가 '어디에나 있는' 우리 안의 일베이며 조형물이 바로 이점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조형물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비윤리적인 지점이다. 일베는 가치중립적인 '혐오' '대립' '극단'을 의미하는 추상명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에 따라 혐오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살 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소수자와 약자를 혐오함으로 결속하고 작게는 언어폭력에서부터 심하게는 실질적 폭력을 가해하고 인증하는 범죄자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작품은 실재하는 일베의 실체를 마치 없는 것처럼 가상화하며 우리 모두 잠재하고 있는 문제로 치환하고 있다.

홍익대 조소과 측은 2014년 환경조각전의 작품으로 <홍익발언대>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학생에게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각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조형물이 건강한 담론을 생산한다는 이수홍 학과장의 답변이 다소 기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점이다.
 홍익대 조소과 측은 2014년 환경조각전의 작품으로 <홍익발언대>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학생에게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각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조형물이 건강한 담론을 생산한다는 이수홍 학과장의 답변이 다소 기만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점이다.
ⓒ 홍익발언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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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조소과 측은 2014년 환경조각전의 작품으로 건물주의 횡포를 고발하는 임차인들, 성소수자, 세월호,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는 사람 등을 무대에 세워 이야기를 듣는 <홍익발언대>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학생에게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각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조형물이 건강한 담론을 생산한다'는 이수홍 학과장의 답변이 다소 기만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이유다. 즉, 주최 측은 언제나 '표현의 자유'를 지상 과제로 삼아왔는가?

홍익대 조소과의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한다

현대미술에서 윤리적, 비평적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논란이 벌어졌다고 해서 모든 논란이 미학적 논란인 것도, 의미 있는 논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미술은 무균실이 아닌 사회의 자장 안에 존재한다.

나치시대의 고전미술 부흥에서, 독재정권기의 단색화의 부흥에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미술에서 정치성을 탈각하는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었음을 보아왔다. 이 논란이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이며 홍기하씨 스스로가 말한 '공공성'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이 논란은 필연적으로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탈맥락적으로 존재할 수도 없다.

현대미술에서 다원성은 매우 두드러지는 특징이지만 그런데도 참여작가들의 작품으로 인한 논란이 벌어졌을 때 주최 측은 그 논란에 어떤 형식으로든 답한다. 심지어 작품이 훼손되었다면 작가가 주최 측을 향해 손해배상청구를 해야 하는 수준이 아닌가? 전시 주최 측은 그것을 방어하거나 조정할 의무를 가지지 않는가? 홍익대학교 조소과가 이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학교는 공식적으로도 아직은 배움의 과정 안에 있는 학생에게 주어진 '작가'라는 이름 뒤에서 무책임하게 뒷짐 지고 있다.

작품을 철거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작품은 주최 측이 아닌 사람에 의해 철거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환경조각전'이 조소과 학생들의 과제를 잠시 밖에 두는 것이 아닌 '전시'라고 여긴다면 전시의 책임자로서 학교가, 홍익대 조소과가 마땅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첫째로 원하든 원치 않든 작품의 관람자가 되고 동시에 학교의 일원으로서 이 논란의 당사자가 되어 있는 홍익대학교 학생들의 비판에 답해야 한다(총학생회도 이 점을 요구한 바 있다). 둘째로 이 조형물이  '공공'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공공의 일부가 되어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말해야 한다.

이 답변은 현재 이수홍 학과장의 입장문처럼 추상적이며 원론적인 수준이 아니어야 한다. 이 논란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당사자인 학생들을 향한 구체적인 의견, 주최 측이 홍기하씨의 일베 조형물이 "일베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근거인 '조형언어'에 대한 구체적인 비평, 그리고 이 조형물을 보고 분노한 사람들에게 무소불위의 작가로서가 아닌 전시 주최자로서 전하는 메시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태그:#홍대 일베상, #홍대 일베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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