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극장에서 단독 개봉하거나 개봉 예정인 <나의 소녀시대> <산이 울다> <본 투 비 블루>

대기업 극장에서 단독 개봉하거나 개봉 예정인 <나의 소녀시대> <산이 울다> <본 투 비 블루>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팝엔터테인먼트, 그린나래미디어


30만 관객을 돌파한 <나의 소녀시대>는 오직 CGV에서만 볼 수 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호평받은 <본 투 비 블루> 역시 오는 9일 CGV에서만 개봉한다. 지난해 부산영화제 폐막작으로 작품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산이 울다>는 지난 25일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했다.

이처럼 대기업 상영관들이 특정 예술영화를 독점 개봉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예술영화 중에서도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독차지한다며 국내 예술영화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화산업을 장악한 대기업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외국영화 수입사들까지 줄 세운다는 게 이 비판의 핵심이다.

논란이 일게 된 데는 최근 30만을 넘긴 <나의 소녀시대>의 흥행이 작용했다. 대만영화로 지난해 부산영화제 야외상영작이었던 <나의 소녀시대>는 대중성 있는 영화로 부산에서도 화제를 모았었다. 오직 CGV에서만 상영하는데도 높은 좌석점유율 속에 탄탄한 흥행을 이어가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주연배우의 한국 방문도 확정됐다.

음악영화들이 흥행하는 특성 때문에 <본 투 비 블루> 독점 개봉에도 비슷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 영화는 재즈 음악사를 대표하는 트럼펫 연주자인 쳇 베이커를 소재로 삼았다. 음악이 인상적이라 흥행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대기업 상영관인 CGV에서만 상영한다. 중국 영화 <산이 울다>도 예술영화 관객들의 관심 속에 1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서울지역 예술영화관의 한 관계자는 "기존에는 대기업 상영관에서 상영해도 배급에 문제없었는데, 특정 극장 체인에서만 개봉하게 되면 몇 안 되는 예술극장들이 '게토화'(빈곤·슬럼화)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배급사가 문제인지 극장이 문제인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면서 "지역극장들이 어렵고 고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영화관 모임은 지난주 이 문제를 의제로 올려 논의했다. 초기 대응을 못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극장과 배급사 쪽을 만나 우려를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영화관 모임의 한 관계자는 "다양성 영화까지 자기들 스크린에서만 단독으로 개봉시켜 배급사를 길들이고, 가뜩이나 힘없는 독립예술영화관들 프로그램 선정에도 벽이 쳐지게 했다"라며 "이건 동네 자영업 극장들 다 문 닫으라는 소리"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콘텐츠 차별 전략, 홍보마케팅비 등 지원으로 배급사도 유리

 대표적인 대기업 상영관인 CGV와 롯데시네마

대표적인 대기업 상영관인 CGV와 롯데시네마 ⓒ CGV, 롯데시네마


이에 대해 수입배급사와 대기업 극장들은 "배급 전략과 콘텐츠 차별화 전략의 일환으로 선택과 집중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배급사 측은 배급 비용 대비 효과가 좋다는 이유를 들었고, 극장 측은 비수기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산이 울다> 배급사인 팝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개봉 영화가 많은 현실에서 와이드릴리즈(개봉 첫 주에 가능한 많은 스크린을 확보해 관객에게 선보이는 배급 방식)로 갈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봤기에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좌석점유율 등 아쉬움이 없진 않으나, 상영 회차 보장을 받고 있어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본 투 비 블루>를 배급하는 그린나래미디어 측도 '전략적 선택'을 강조하며 "단독 개봉으로 간다고 해도 상영관 사정이 좋은 건 아니지만, CGV와 협업할 수 있는 채널이 생기면서 받을 수 있는 게 많다"고 말했다. 또 "배급사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라며 "단독 개봉으로 CGV에 홍보마케팅비를 지원받으면서 개봉 비용이 절감돼 손익분기점도 적어져 나쁘지 않다"고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CGV 측은 비수기 영화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한 것인데 비판적으로만 보려는 시선이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CGV 관계자는 "<나의 소녀시대>가 잘 되니 그런 이야기들이 나온다"며 "콘텐츠 차별화 전략이다, 주로 재개봉 영화를 대상으로 기존에도 시행해 온 방식이고 수입배급사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고 설명했다.

괜찮은 영화인데 관객들의 호응을 받지 못한 경우, 마케팅을 제대로 하여 살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도한 방식이 이런 단독 개봉이다. CGV 관계자는 "(단독 개봉을 한 작품이) 다 잘 된 것도 아니다"라며 "성과가 생기다 보니 평소에는 관심 없다가 한번 잘 되니까 말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탄탄한 시스템을 바탕으로 가능성 있는 영화를 살려내니 도리어 비판이 나온다는 불평이다.

논란을 의식한 듯 CGV 측은 <본 투 비 블루>의 경우 단독 개봉이지만 수입배급사가 다른 예술극장들에 배급해도 상관없고, 이를 권유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롯데시네마가 단독 개봉한 <산이 울다> 역시 일부 단관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영화시장 활성화 논리로 시장 지배력 강화

이번 논란은 단관극장들과 수입배급사 및 대기업 상영관의 이해관계가 달라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하지만 밑바탕에는 영화산업을 수직계열화한 대기업 독과점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대기업 상영관 입장에서는 비수기 영화시장 활성화를 위한 극장 운영 전략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안이다. 수입배급사들도 개봉비용을 줄일 수 있고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 수직계열화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극장이 흥행에까지 도움을 주는 건 자연스럽게 시장 지배력 강화로 이어진다. 대기업 상영관의 지원만 받으면 흥행이 불투명한 영화도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인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입배급사들은 단독 개봉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자본력이 약한 극장들은 경쟁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하면서 종속 가능성도 커진다. 이를 통해 대기업 독과점 구조가 더 심화하고 굳어지는 흐름으로 가게 된다.

대기업 상영관이 독립예술영화 투자 배급까지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저예산독립예술영화의 제작을 돕는다는 것이 명분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수익 다변화다. 이 과정에서 투자를 받고 싶은 사람들의 줄서기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물론 대기업들은 줄 세우기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영화산업을 장악한 대기업이 상업영화에서 저예산독립예술영화 쪽으로 점차 영역을 확장하면서 지역의 작은 단관극장들이 점차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이 끊긴 데 이어 영화 배급사들에도 천대받는 독립예술극장들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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