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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홍익대학교 정문에 설치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상징 조형물이 부서진채 길가에 나뒹굴고 있다.
 1일 오전, 홍익대학교 정문에 설치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상징 조형물이 부서진채 길가에 나뒹굴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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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정문 앞에 세워졌던 조형물이 훼손되었다. 조형물은 극우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를 상징하는 손동작을 본떠 만든 것이었다.

훼손된 조형물을 놓고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극우 성향의 일베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파괴한 것은 정당하다는 의견이다. 나는 여기서 전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조형물이 파괴된 것을 보고 매우 통쾌했다. 나 역시 조형물에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조형물 파괴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반박할 때 일베를 '나치'에 비유하거나 손동작을 본뜬 조형물을 '욱일기'에 비유한다. 나는 여기에 동의하기 어렵다. 일베가 아무리 극우 성향을 띤 집단이더라도 나치와 비교하거나 조형물을 욱일기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나치는 전쟁범죄조직이다. 일베는 극우 성향의 웹사이트이다. 일개 극우 성향 웹사이트인 일베는 국제적 전쟁범죄집단인 나치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조형물을 욱일기에 비유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진해항에 일본 함정이 욱일기를 달고 입항한 적이 있었다. 그 욱일기를 보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군국주의 일본'과 '전범국가 일본의 만행'을 떠올렸을 것이다. 욱일기는 전쟁범죄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범죄나 다름없다.

일베를 나치와 같은 급이라고 생각할 수 있나

그런데 일베 조형물은 어떤가? 조형물을 전범기와 같은 급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애초에 욱일기와 일베는 존재감부터 다르다. 어떤 사람이 광화문 광장에서 욱일기를 펼치고 달리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대다수 한국인은 그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배경을 바꿔서, 광화문 광장이 아니라 일본 도쿄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일본 극우성향 인사가 욱일기를 휘날리며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그 소식을 접했다. 분명히 그 소식을 전한 기사의 댓글은 온통 그 극우 인사를 비난하는 글로 가득할 것이다.

어떤 일베 회원이 광화문 광장에서 '일밍아웃'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지나가던 행인이 그 모습을 보았다. 그 행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평소 일베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 욱일기를 펼치고 광화문을 질주하는 사람을 본 한국인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그 감정은 불쾌감이다.

일베 웹사이트에서 일베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회원은 게시판에 자신이 일베 회원인 것이 자랑스럽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작성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 일본 도쿄에서 욱일기를 펼치고 가두행진을 하던 사람과 같은 맥락으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그가 어떤 글을 쓰든지 간에 사람들은 관심도 없을 것이고, 그가 한 행동은 신문 기사로 보도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일베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일베 조형물에 대해 갖는 인식은 '범죄 집단의 표상'이라기보다 '변(便)'에 더 가깝다. 그것도 이 혐오스러운 물체는 백주대낮에 인파가 몰리는 광장 한 가운데 놓여있다. 이 혐오스러운 물체를 보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보통 사람은 불쾌하다는 시선을 보내면서도 '더러워서' 피할 것이다. 환경을 사랑하는 누군가는 '당장 저 지저분하고 혐오스러운 것을 치워 버려야겠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예술과 자유는 그런 것

실제로 누군가가 그것을 치워버린 일이 일베 조형물이 파괴된 사건이다. 하지만 '변(便)'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갖는 인식이다. 조형물은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조형물 제작자는 이러한 논란을 의도했을 것이다). 일베 조형물은 '예술작품'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이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유지된다. 모두가 불쾌하게 여겼지만 사실 조형물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람도 조형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불쾌하고 더럽고 혐오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조형물을 치우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 불편하다고 물리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며, 나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난다고 심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법에 따라야 하고, 당장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물론 자유에 대한 존중이지 그 조형물을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변(便)'은 많은 인파가 몰린 광장 한가운데 놓여있을 때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변(便)이 변소(便所)에 있으면 결코 우리는 그것에 주목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에게 있어 그것은 관심의 대상도 아닐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일베의 상징이 예술작품으로 등장한 것은 사람들에게 꽤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감히 불쾌한 존재가 변소(便所) 바깥 공공장소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예술작품이라는 '고귀한 신분'을 부여받아 '자유의 수호'를 받고 있다니. 사람들은 예술과 자유에 대해 회의를 품고 그것은 예술과 자유가 아니라며 부정한다. 하지만 예술과 자유는 원래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우리는 예술작품을 마음대로 평가하고 그 생각을 말할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조형물을 철거하자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형물을 '일찍이 본적이 없는 희대의 예술작품'이라고 칭찬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구나'라며 놀라워 할 것이다. 그리고 평가할 것이다. '일찍이 본적 없는 끔찍한 예술작품'이라고.


태그:#일베 조형물,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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