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부서진 홍대 앞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상징 조형물
 부서진 홍대 앞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상징 조형물
ⓒ 최윤석

관련사진보기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에 설치된 '일간베스트저장소(아래 일베)' 상징 조형물이 훼손됐다. 1일 새벽, 한 홍익대 학생과 '랩퍼 성큰'씨가 조형물을 파손한 것.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이 작품은 파괴됨으로써 완성되었다'는 취지의 반응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에 공감한다.

한 작가가 설치하고, 작품 수용자의 '계란 던지기'와 같은 분노 표현들을 받아들이고, 찬성과 반대 의견이 담긴 포스트잇이 조각상을 뒤덮고, 그리고 최종에는 스스로 그것을 파괴하는 것까지 모든 퍼포먼스를 다 해냈다면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주제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이 조각상의 파괴를 두고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며 그것이 '일베'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말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이러한 예술 행위도 존중받아야 하고,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평등, 차별과 역차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다양성 존중이라는  단어도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그냥 자기 입맛에 따라 아무데나 갖다 붙이면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긴 하지만 일베를 인정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다. 일베는 바로 그 민주주의, 자유와 다양성을 부정하는 극우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치의 문제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집단을 인정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내가 온라인에서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다 보니 '당신은 다양성을 존중한다면서 왜 내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가' 하는 말을 요즘 많이 듣는다. 그들은 뭔가 단단하게 착각하고 있다.

그들의 의견이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의견이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국내에서 외국인(노동자)을 몰아내자, 퀴어퍼레이드라니 인정할 수 없다 동성애자를 몰아내자, 장애인 시설은 세금 낭비다,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에게 생리대를 세금으로 보급하겠다니 아깝다, 여자들은 안전하게 밤에는 집에만 있든지 남자친구하고만 다녀라, 강남역에서 여자를 죽이 것은 남자가 아니라 조현병 환자다, 정신장애인들을 집밖으로 못나오게 만들자'와 같은 말들처럼.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나치즘을, 파시스트를, IS와 같은 극단적인 폭력 집단을 인정할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가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그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뿐만이 아니다. 그 행위 저변에 깔린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나와 다른 것, 약한 것을 혐오하고, 배제하고, 마구 죽여도 된다고 하는 그 발상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말은 약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말이지 강자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만든 말이 아니다. 소수자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자는 것이지 다수의 횡포를 묵인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양성 존중하지 않고 강자 논리 강변하는 일베, 반대한다

31일 오전 마포구 홍익대 정문에 극우성향 사이트 '일베' 상징물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조각상은 일간베스트저장소를 상징하는 자음 'ㅇ'과 'ㅂ' 모양을 하며 회원을 인증하는 손 모양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조각상은 조소과 4학년 홍기하씨가 '환경조각연구' 수업 과제로 제작되어 '환경조각연구 야외조각전'(5.31~6.20)에 출품한 것으로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제목을 붙였다. 30일 오후 설치된 작품에는 음료수와 달걀을 던진 흔적과 자진철거를 요구하는 항의 메모지도 붙어 있다.
▲ 홍대 정문에 설치된 '일베' 상징물 조각상 31일 오전 마포구 홍익대 정문에 극우성향 사이트 '일베' 상징물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조각상은 일간베스트저장소를 상징하는 자음 'ㅇ'과 'ㅂ' 모양을 하며 회원을 인증하는 손 모양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조각상은 조소과 4학년 홍기하씨가 '환경조각연구' 수업 과제로 제작되어 '환경조각연구 야외조각전'(5.31~6.20)에 출품한 것으로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제목을 붙였다. 30일 오후 설치된 작품에는 음료수와 달걀을 던진 흔적과 자진철거를 요구하는 항의 메모지도 붙어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그렇다면 일베는 다수자인가 소수자인가. '그런 짓은 일부 일베같은 놈들이나 하는 거지' 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일베는 '일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와 파급력이 크다. 또,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가치의 문제다. 극성 일베가 숫자상 소수더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기득권의 가치, 다수자의 의지, 강자의 논리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여성혐오는 소수 일베나 하는 것이라고 치부해 왔지만, 각성하고 보니 우리 모두가-남녀 상관없이- 여성혐오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일베의 사상은 다수의 사상이고 강자의 논리다. 그 사상은 소수자와 약자를 배제하는 사상이다. 우리는 그것에 반하여 다양성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추구한다.

해당 작품을 만든 홍익대학교 조소과 4학년 홍기하씨는 1일 발표한 공식입장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의 작품은 제가 일베를 옹호하느냐 비판하느냐를 단정 짓는 이분법적인 의도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제 작품의 제목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입니다. 사회에 만연하게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일베라는 것을 실체로 보여줌으로써 이것에 대한 논란과 논쟁이 벌이는 것이 제 작품의 의도입니다. 또 작품이 이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의 작품을 통해서 이것이 왜 예술이냐, 작품이 아니라 쓰레기다, 관객에게 혐오감을 준다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없다 등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는데 이렇게 예술의 정의와 범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는 것은 건강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없기 때문에 각자 저의 작품을 통해서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볼 수 있어서 대중과 거리가 먼 현대미술을 한걸음 더 가깝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들었다. 이것이 정말 작가의 의도라면 그는 성공한 것이다.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불쾌감을 표시했고 논란과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극단적인 작품 파괴 행위로 나타났다. 그는 작품 파괴 행위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어느 정도는 의도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는 6월 20일까지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생각이었다. 그는 '일베는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어했다. 그것은 일베도 즐겨하는 말이다. 무슨 다른 뜻이 더 있는지 더 기다려 보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작품이 20여일 전시되는 동안 가장 즐겁고 뿌듯했을 것이 누구인지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고, 가장 불쾌하고 분노할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다양성 존중의 이름으로 동상 파괴 행위를 옹호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의 예술적 의도대로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일베에 대한 대중적인 주의와 관심을 끌어냈으며, 극단적 파괴 행위를 통해 그 의도는 완성되었다고 본다. 이 작품은 예술가가 만들었고, 수용자가 완성했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에서 이보다 더 현대적이며 전위적인 작품은 없었다. 나는 해당 예술가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태그:#일베, #일베 조형물, #예술
댓글3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