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포스터.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포스터. ⓒ 영화 홈페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를 나이 들어 다시 보면 '유치하다'. 면도칼 하나 들어갈 여지없이 꽉 짜인 선악의 구도. 거기에 무언가를 가르치려하는 억지스런 전개. 그리고, 마지막엔 하나같이 권선징악의 결말.

시간이 흘러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이런 '동화적(아동용 만화적) 세계인식'에서 벗어나는 것에 다름없다. 착한 사람과 악인은 잘린 두부처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부끄럼 없이 삶의 교훈을 이야기해줄 자격이 있는 인간은 지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선한 일을 해도 복을 받지 못하고, 악행을 저지르고도 잘 먹고 잘 사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이 정도의 기본적 세계인식은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한 최근작 <엑스맨: 아포칼립스>(이하 <엑스맨>)를 어떻게 말할까? 기자 역시 '성인'이다. 내 입장을 에두르지 않고 단칼에 잘라 말한다면 '유치하다'.

유치한 몇 가지 이유

 설정과 전개, 결말까지가 '유치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영화 <엑스맨>.

설정과 전개, 결말까지가 '유치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영화 <엑스맨>. ⓒ 영화 홈페이지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부활을 거듭하며 악을 행해온 아포칼립스(Apocalypse · 이름부터가 '세상의 파멸'이다)와 그 절대악으로부터 인간과 세계를 구하려는 프로페서 X(제임스 맥어보이 분)의 대결구도가 그렇고, 상영시간 내내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불을 뿜고 쇳덩어리를 집어던지며 싸우는 조악한 전개가 그러하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정의는 승리한다'는 식상한 결말이 또한 그렇다. 이걸 유치 외에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아포칼립스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약한 인간들이 득세하고 있는 건 옳지 않다, 강한 자가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말은 조소를 넘어 '피식~' 어처구니없을 때 나오는 실소를 부른다. 한국의 시골 읍내 깡패들도 요즘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만화가 원작이니 이해할 수도 있다"고? 그건 나름의 철학과 세계인식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는 다수의 만화가를 모욕하는 언사다. "정의가 힘이 아닌 힘이 정의다"라고 말하는 건 아이의 어법이지 어른의 방식은 아니다. 그 어른이 만화가이건, 소설가이건, 은행원이건, 회사원이건.

어떤 은유도 찾아볼 수 없는

 <엑스맨>의 한 장면. 이 영화를 뭐라고 불러줘야 할지 난감하다.

<엑스맨>의 한 장면. 이 영화를 뭐라고 불러줘야 할지 난감하다. ⓒ 영화 홈페이지


백 걸음 물러서서 <엑스맨>에 등장하는 수준 이하의 대사와 졸렬한 전개방식이 은유일 수도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가정이 사실이 되려면 영화 속에서 최소한의 암시와 복선이라도 읽어내는 게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만나면 서로 눈부터 부라리며 치고받기에 바쁜 돌연변이들의 싸움에서 대체 무슨 은유를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엑스맨>은 각종 화려한 카피로 치장된 영화다. "2016년 최강의 블록버스터", "시리즈 역대 가장 스펙터클한 영상", "브라이언 싱어와 SF의 명제작자 사이먼 킨버그로 구축된 최강의 드림팀" 등등. 그러나 이런 선전 문구는 기자에겐 입에 발린 수사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동교육용 동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계인식과 영화적 은유의 빈곤 탓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 많은 영화' <엑스맨>을 어떻게 불러줘야 할까? 상상력 빈곤한 앙상한 블록버스터? 아니면, 할리우드에서 만든 시간 때우기용 팝콘?

엑스맨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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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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