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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은 여성에게 '세상이 험하니 조심해서 다니라'고 말하는 데 익숙하다. 다시 말해, 여자라면 누구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 남성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여자들이 조심해야 할' 원인 대부분을 남성들이 제공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가해자 절대다수가 남성이라는 통계 수치를 인용하면 "남자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간주하지 말라"며 불쾌해한다.

그러니까, 여자는 언제나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남자들은 어느 순간도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없다. 한국에서 여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주로 외계인인 모양이다.

주위에 허물없이 지내는 여자가 있다면 물어보라. 그들이 한국에 살면서 어떤 기막힌 성적 폭력을 경험했는지 말이다. '잠재적 피해'의 위협에 대해 물어볼 필요는 없다. 이미 '실제의' 성폭력과 물리적 위협을 일상적으로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나는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 고등학생 한 명은 통학 버스를 탈 때 느끼는 공포감을 털어놓았다. 만원 버스 안에서 엉덩이와 가슴을 만지는 남자들을 만난 건 부지기수고, 어느 날은 버스에서 내려보니 아예 치마의 지퍼가 열려 있었다고 했다.

다른 학생은 학교에서 치마를 입은 학생들을 책상 위에 올려 '엎드려뻗쳐'를 시키는 남자 선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이 상태에서 학생들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교사로부터 말할 수 없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비교적 잘 보호받는 학생들의 경험이 이러니, 덜 보호 받으며 더 오래 살아온 여성들이 훨씬 가혹한 경험을 했으리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증언을 듣고 놀랄 필요는 없다. 정말 가혹한 경험은 입 밖에 내기 어려울 만큼 참담한 경험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조차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다.

여성에게 우악스럽고 폭력적인 사회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잠재적 가해자 취급' 운운하는 볼멘 소리를 하는 것은 의식이 사회, 교육, 법과 제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결과다.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잠재적 가해자 취급' 운운하는 볼멘 소리를 하는 것은 의식이 사회, 교육, 법과 제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결과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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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의식은 어디에서 왔는가? 태어날 때부터 거기 있던 것인가, 아니면 사회에서 나고 자라며 형성된 것인가?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잠재적 가해자 취급' 운운하는 볼멘소리를 하는 것은 의식이 사회, 교육, 법과 제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결과다.

가부장적 인습과 사회구조는 지배적 세계관으로, 여러 나라 곳곳에 퍼져있다. 내가 이주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같은 가부장 국가라고 해도, 한국 남성들이 여자를 대하는 방식은 유달리 우악스럽고 폭력적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당당하게' 여자 몸을 빤히 응시하는 남자들, 여자 앞에서 대놓고 외모와 옷차림을 거론하는 남자들을 본다.

가장 경악스러운 점은 성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여성들의 성적 결정권이 여성 자신에게 있다는 기초적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는 청소년 관람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빠뜨려,' '덮쳐버려'라는 말이 자막과 함께 등장하기도 하고, 인터넷 게시판에서 '여친을 골뱅이 만들어 따먹었다'는 '무용담'이 '인증샷'과 함께 올라오기도 한다.

법은 한 나라의 인식 수준을 반영하는 동시에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 법원이 성폭행범 그것도 미성년자를 강간범들에게 '초범', '우발적 범행,' '반성하고 있다'거나 심지어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로 풀어주거나 미약하기 짝이 없는 처벌을 내리는 관행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최근 사례만 보아도 그렇다. 2014년, 자신의 딸과 함께 자는 13살 친구를 강간한 아버지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1심 재판부는 '어린 피해자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큰 정신적 피해를 본 만큼, 상당 기간 사회와 격리가 필요하다'며 5년 형을 선고했으나, 그는 즉시 항소했다. 결국 피해자 부모와 5000만 원에 합의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미성년자 강간, '100년형'과 '무죄'의 차이

한국의 성범죄 판결과 처벌은 놀랄만큼 안이하다. 한국에서 '집행유예'와 '무죄' 판결을 받은 것과 유사한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 대해 미국 법원은 각기 '최소 24년 형'과 '최소 100년 형'을 선고했다.
 한국의 성범죄 판결과 처벌은 놀랄만큼 안이하다. 한국에서 '집행유예'와 '무죄' 판결을 받은 것과 유사한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에 대해 미국 법원은 각기 '최소 24년 형'과 '최소 100년 형'을 선고했다.
ⓒ Charlotte Obserber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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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앞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샬롯에서 40대 남성이 13살 여아를 강간한 것이다. 그는 올해 재판에서 '최소' 24년 형을 선고받았다. '한국적 사고'로 보면 과한 판결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정도는 약과다. 올 2월, 13살 소녀를 강간한 오마하의 39세 남자는 최소 100년, 최장 160년 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기혼남이었던 그는 임시로 돌보던 아이를 유혹해 성행위를 하게 만들었고, 임신까지 시켰다. 재판 과정에서 소녀는 여러 번 말을 바꿨다. 주위 사람에게는 스스로 성관계를 했다고 말하다가도, 재판 과정에서는 '성관계는 갖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 진술에 일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들의 성관계가 '합의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은 채 강간으로 기소했다. 미성년자와는 '성적 합의'자체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주처럼, 네브라스카주 형법은 성인이 16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행위를 하는 경우,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강간으로 간주한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11년 연예기획사 대표가 15살 여중생을 수차례 성폭행해 임신까지 시킨 것이다. 임신한 피해자는 그의 집에서 기거하다가 출산 뒤 성폭행을 당했다면서 경찰에 신고했다. 피고는 '연인관계'라고 주장하면서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주장했다.

1심에서는 징역 12년이 선고되었고, 2심에서는 징역 9년으로 줄었다. 그러다가 2015년 10월에 열린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구속된 피고를 면회하고 문자를 보내는 등의 행동에 비추어 '의사에 반한 성폭행은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상반된 견해를 듣고 보며 자란 남자들이 여자를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 나라에서는 끔찍한 범죄가 한 나라에서는 '연애'가 되기도 하고, 한 나라에서는 여성 학대가 다른 나라에서는 '여자 다루는 요령'이 되기도 하며, 한 나라에서는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불쾌한 남자 혐오'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당신은 '잠재적 가해자' 아니라고?

자신의 의식이 형성된 사회적 담론과 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여성들을 위협하는 끔찍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여성 혐오적 사고가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면, 남자는 스스로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여자는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며 흥분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일상에서 가해자 역할을 해 왔다는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이번 사태를 여성보다 남성들이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성들이 정말로 항의해야 할 곳은, 오직 '혐오'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경찰과 '여혐' 대 '남혐'이라는 생뚱맞은 대결구도를 끄집어내는 질 낮은 언론이다.

가해자 취급받는 게 불쾌한가? 강남 살인사건을 둘러싼 '가해자' 논란은 남자들에게 '기분'의 문제일지 모르나, 여자들에게 삶과 생존의 문제다. 정말 끔찍한 것은 잠재적 가해자 '취급'받는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적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흥분하기에 앞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 주위, 사회를 돌아볼 일이다. 자신을 가해자로 만들거나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다.

'여성 해방이 곧 남성 해방'이라는 말이 이번만큼 설득력을 가진 적도 없다.


태그:#강남살인, #여혐, #여성혐오, #잠재적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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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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