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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을 이틀 앞두고 11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되고 있다.
▲ 주인 기다리는 배지 4.13 총선을 이틀 앞두고 11일 국회에서 제20대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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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의 야구선수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717개의 홈런이 있기까지 1330번의 삼진의 아픔을 견뎌내야 했다. 그리고 그의 한 쪽 눈은 거의 실명상태였다."

어김없이 또 다른 하루가 밝았다. 오늘도 도서관 출근이다. 선거가 끝나고 한 달이 넘었다. 주머니 사정도 점점 가벼워진다. 식사를 2회로 줄였다. 점심값도 5000원 미만으로 줄인다. 300원짜리 커피 한 잔의 여유가 그나마 작은 사치가 됐다. 재활용 컵에 믹스를 넣어 두 잔의 사치를 더한다. 가끔 얻어먹는 선배에게 술이라도 얻어 먹는 날이면 '횡재'가 따로 없었다.

얼마 전 교육방송을 통해 본 <홈런왕 베이브루스>를 떠올린다.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삼진왕의 실패를 통해 홈런왕의 자리까지 오른 그의 스토리는 그 자체로 본보기가 된다. 자위의 도구로 삼는다.

"그래, 포기는 없다. 비록 꺾어지는 40대라 갈 곳은 없지만 착실히 준비하면 기회는 반드시 오리라. 위기는 기회고 악조건도 조건이지. 숙명이라 받아들이자. 그리고 때를 기다리자. 하쿠나마타타!"

정치 보좌진 4년, 남은 건 오기뿐... "포기는 없다"

지난 2012년 나는 국회 보좌진 생활로 처음으로 직업 정치에 입문했다. 늦은 나이라 걱정도 많았다. 패기 넘치고 스펙 두터운 젊은 청년들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일했다. 몰입의 나날이었다. 매일매일 낮과 밤을 순간 이동했다. 그만큼 위장과 간의 무게도 더해졌다.

오직 배우겠다는 욕심밖에 없었기에 작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과한 칭찬과 격려는 아니었지만 나름 선방한 보좌진 생활이었다. 국정감사로 시작해 예산결산위, 국토위, 미래창조위, 질의서, 보도자료, 인사청문회, 성명서, 인터뷰 시트, 축사 등 수많은 업무를 익혔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보람만큼 좌절과 쓴맛도 봐야 했다. 수석 보좌관, 수석 비서관의 매서운 비판은 좋은 안줏거리였다. 의원과의 특별한 관계로 들어온 인사와는 매일이 전쟁이었다. 때론 몸싸움, 욕설도 비일비재했다. 어린 비서에게 받는 멸시와 조롱도 감내해야 했다. 참을 '인'(忍)이 삶의 좌표가 됐다.

정부기관과의 지리멸렬한 싸움은 또 어떠했나. 전쟁터에 나가는데 총알이 없어 애태운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료요청을 해도 제대로 된 총알을 넣어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의원님의 무거운 한숨 소리와 역정을 감내해야 했다. '5분 대기조'로 매일이 전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스스로가 감당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다.

'언감생심' 보좌진 인력시장... 때를 기다려라

눈 뜨고 일어나 무작정 도서관을 가면 그리도 마음이 편한 이유는 뭘까.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살아가면서 말이다. 인생무상!
▲ 책 속에 길 있다 눈 뜨고 일어나 무작정 도서관을 가면 그리도 마음이 편한 이유는 뭘까.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살아가면서 말이다. 인생무상!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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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년의 국회경험을 뒤로 한 채 또다시 백수가 됐다. 그리고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1년 여의 공백기를 거쳐 다시 2016 총선 전쟁터에 보병 기수로 참여하게 됐다. 다시 처음의 마음과 각오로 열정을 바쳤다. 또 다른 희열에 몸부림쳤다. '아, 이게 바로 인생이구나.'

'워커홀릭' 그 자체였다. 일 아니면 다른 걸 생각하기 조차 싫었다. 다시 자료와 씨름하며 밤을 새웠다. 지역 공약을 만들고 후보자 정책홍보지를 생산했다. 성명서, 질의서, 선거공약, 슬로건, 대표정책, 주민과의 약속, 의정계획서, 보도자료 등등…. 국회는 아니었지만 다시 맛보는 전쟁터가 꽤 보람찼다. 발로 뛰고 땀을 흘리면서 승리에 도취해가는 나 자신에 만족했다.

승산이 있었다. 어려운 역경을 거치고 드디어 단일후보에 안착했다. '9회말 2아웃'의 수세였지만 공세를 놓치지 않았다. 시시비비를 가려 상대편 후보에 정확히 '어퍼컷'을 날렸다. 하지만 상대 후보의 맷집도 만만치 않았다. 드디어 총선 당일. 숨죽여 결과를 고대했지만 결과는 '어부리지'의 편이었다. 날선 야권 후보의 공방으로 엉뚱하게도 여당 후보가 승리의 깃발을 쟁취했다.

며칠간 술만 마시고 잠에 취했다. 그러다 번쩍 정신이 들었을 땐 백수의 현실이 먼저 나를 반겼다. 40대 중반에 또다시 백수라니. 하지만 어쩌랴. 나 혼자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낙선한 보좌진 모두 나 같은 신세였다. 거기에 위안을 삼았다.

당선한 후보 쪽 지인들에게 일자리를 알아봤다. 국회의원실 보좌진 채용 공고에 열심히 이력서도 냈다. 언감생심이었나. 돌아온 건 냉담뿐. 이유인즉 당선인 사무실 앞에 줄이 '100미터' 이상 늘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력서는 휴짓조각이 됐다. 명문대 스펙, 박사, 변호사, 청와대 행정관 등…, 당해낼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지잡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체념모드로 전환했다. 빌 게이츠의 성공센터인 마을도서관으로 향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역할도 충실했다. 하지만 갈수록 비참한 현실에 아픔만 더해갔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내 인생의 포기란 단어는 배추 셀 때만 적용됐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노력과 때'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우연이란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운명이 놓아주는 다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리영희 선생님의 책 <인간만사 새옹지마>를 가슴에 새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운다고 했다. 다시 시작이다. 다시 희망이다.


태그:#4.13총선, #국회 보좌진, #백수, #새옹지마, #리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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