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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는 진주성 앞에 '진주대첩기념광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진주시는 지난 2007년부터 부지매입을 시작했다. 진주시는 총 사업비 980억원(국비190억원, 도비57억원, 시비 733억원)을 들여, 2018년까지 진주성 촉석문 앞 2만 5020㎡(약 7600평) 부지에 기념공원과 기념관, 주차장 등을 조성한다. 진주시는 진주대첩을 기념해 새로운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진주시는 진주성 정문 앞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뜨겁다. 형평운동은 백정들의 신분 해방운동으로, 진주에서 1923년에 시작되었고, 기념탑은 시민성금으로 1996년에 세워졌다. 이와 관련해 안동준 경상대 교수가 글을 보내와 싣는다. - 편집자말

진주대첩기념광장 조감도.
 진주대첩기념광장 조감도.
ⓒ 진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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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가 진주성 앞에 진주대첩기념광장을 조성할 계획이다. 무엇 때문에, 어떻게 광장을 조성하는지 자세히 아는 시민이 드물다.

진주성은 국가지정문화재일 뿐만 아니라 진주정신이 깃든 성지다. 성지는 신성한 장소이며, 신성한 장소이기에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그럼에도 진주시 당국은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진주성 주변을 대규모로 개발하려고 한다. 이른바 진주대첩을 기념하는 공간을 따로 마련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 와중에 진주성문 앞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도 철거하겠다고 한다.

시민공청회나 여론조사를 통해 최선 방안 찾아야

진주대첩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임진왜란 삼대 대첩의 하나로 군·관·민이 합심해 왜적을 크게 물리친 전투다. 이러한 진주대첩을 기린다고 할 때, 현존하는 진주성을 당시 치열했던 진주성 전투를 재현하는 문화교육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물론 도심 속 휴식의 공간이나 주차공간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도 시민공청회나 여론조사를 통해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민주사회이고, 시민들과 함께하는 진주시 당국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시민 여론 배제하고 사업 강행

그런데 진주시 당국은 시민들의 여론을 배제하고 진주대첩기념사업을 강행하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진주성문 앞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도 철거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이번 기회에 촉석루 벼랑 아래에 있는 의암도 남강에서 건져내 이전하기 바란다. 의암 위에서 논개가 왜장을 죽이고 순절했지만 논개의 절의가 국가로부터 인정받기까지 수백 년이 걸렸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기생이란 신분이 비천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분차별의 폐해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게 진주성문 앞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이다.

형평운동기념탑은 백정들의 형평운동을 기념하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신분 차별의 불이익을 없애고 모두가 하나로 뭉쳐서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는 진주정신을 상징하는 유적이다.

의암이 옛날 유적이라면 형평운동기념탑은 오늘날 그 정신을 잇는 현대의 유적이다. 군·관·민이 합심해 왜적을 물리친 진주대첩의 정신을 오늘날 다시 일깨우는 유적인 점에서 논개의 의암과 형평운동기념탑은 둘이 아니다.

이를 다른 곳도 아닌 진주시 당국이 앞장서서 진주대첩기념사업을 빌미로 진주성과 관련 유적들을 훼손하려고 한다.

진주성 정문 앞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
 진주성 정문 앞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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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된 역사유적은 다시 복원 어려워

익히 경험한 바와 같이, 한번 훼손된 경관이나 역사유적은 다시 복원하기 어렵다. 명분이 확실하고 중요한 사업일수록 여론을 수렴하고 사업의 집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일개인이나 소수집단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주시 당국은 문화인식은 물론이거니와, 그들 자신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전제군주시대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여론을 외면하고 강행한다면 독선에 빠지기 쉽다.

지방자치화 시대에 진주시는 다른 지자체에 앞서서 지방행정의 민주화를 선도하여 시민들의 편의를 살피고, 진주문화와 진주정신을 선양할 책임이 있다. 진주시와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경우에도 진주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일을 추진하는 게 당연하다.

남강유등축제 가림막 교훈은?

지난해 유등축제 때 입장료 수익을 노리고 가림막을 설치해서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망신당한 일이 발생했다. 축제는 지역주민이 주인인데, 지역주민의 참여를 가로막는 축제를 진주시가 강행했다.

지역주민이 주축이 된 축제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축제의 후속효과를 노리는 마케팅이 이뤄져야 하는데, 축제를 주관했던 진주시 당국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잘못 파악했던 것이다.

안동준 경상대 교수
 안동준 경상대 교수
ⓒ 안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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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대첩기념광장 조성사업도 마찬가지다. 이 사업은 말 그대로 진주대첩의 정신을 계승하고 기념하자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시민들의 뜻을 모아 추진해 나가면서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진주성 주변 상가건물들을 철거하고 주차장을 확보하는 데 그칠 일이 아니다. 진주를 상징하는 대규모 문화사업이기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의사참여를 진주시 당국에서 독려하고 다수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진주가 문화와 교육의 도시라면 마땅히 밟아야 할 절차다. 그럼에도 진주시 당국은 시민들의 여론을 외면하고 뼈아픈 실수를 되풀이하려 한다.

지난날 진주대첩에서 군·관·민이 합심해 진주성을 지켰는데, 오늘날 진주대첩기념사업에서는 진주시민들이 소외되고 있다. 진주대첩의 정신이 사라졌는가. 왜적의 망령이 되살아온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안동준님은 경상대 교수입니다.



태그:#진주성, #진주시, #기념사업, #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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