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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9-4앞에서 오열하는 고인의 친구분들 사고 전날에도 함께 만나셨는데 조심하라는 한마디를 하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 구의역 9-4앞에서 오열하는 고인의 친구분들 사고 전날에도 함께 만나셨는데 조심하라는 한마디를 하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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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을 위해 설치했다던 스크린도어가 열렸다가 닫혔고, 또 한 명의 사람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지난 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홀로 죽어간 정비공은 작년 10월에 취업했다고 한다.

그는 나처럼 전문계 고등학교 출신이었고, 동갑이었다. 그와 같은 순간에 비슷한 삶을 살았을 나는 오늘 구의역의 강변 방면 9-4에 서서, 내 19살을 떠올려보게 된다.

나는 농업계 마이스터고, 즉 전문계 고등학교의 학생이었고 학교에서 작성하라고 한 서약서 때문에 2년간 대학에 갈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서약서였지만, 학교는 양질의 취업처를 알선해 주겠다면서 서약하지 않으면 입학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3학년이 됐을 때, 대학에 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학교는 약속했던 양질의 취업처 따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얼마 되지 않는 취업처 가운데 어디가 덜 열악한지를 골라서 취업해야 했다. 그나마 나는 성적이 좋은 편이어서 일찍 취업할 수 있었지만, 회사에 나가보지도 못한 채 졸업해야 했던 친구들도 많았다.

힘들게 취업의 문턱을 넘은 8월 한여름부터, '더럽게 덥다'는 말로밖에 표현 못할 하우스 안에서 멜론을 심고, 괭이질을 하고, 풀을 뽑았다. 마실 물은 쇠 맛이 나는 지하수뿐이었다. 혹여 식중독에 걸리지 않을까 물을 피했지만 마시지 않으면 탈진할 것 같은 상황.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물을 마시고 배가 아파오는 것을 내색하면 타박이라도 당할세라, 아픈 배를 부여잡고 일해야 했다.

주말에는 탈진해서 온종일 잠자는 것밖에는 할 수 없던 생활이 3개월. 추석에야 겨우 집에 내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맛있는 밥상을 앞에 두고 나는 쓰러져 버렸고, 대학 병원에서 MRI도 찍고 각종 검사를 하면서 그동안 번 돈을 다 쓰게 됐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회사로 복귀하면서 계속 어지럼증이 이어졌다. '더는 회사에 다닐 수 없는 몸 상태이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학교에 연락했다.

학교는 '내년 3월까지 회사에 다녀야 학교에 보조금이 나오고 정상적으로 취업한 것으로 처리가 되니 회사에 남아 있어라, 만약 돌아온다면 다시 취업 시켜주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나는 학교로 돌아가서 취업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한 채 졸업할 수 없었다. 어지럼증과 두통에 계속 시달리면서 계속 일을 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몇십 년 만의 한파라며 뉴스에선 신나게 떠들어댔지만, 산꼭대기에서 하우스 철골을 세우던 나에게 당시의 겨울은 '세상에 다시 없을 만큼' 추웠다.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나는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4m가 넘는 높이의 얼어붙은 철골 위에 매달려 클립을 채우고 파이프를 박아야 했다. 머릿속으로 '언 땅 위에 떨어지면 참 아프겠구나'고 되뇔 뿐,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다

"올라가지 못하면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잘못 떨어지면 정말 죽겠으니 이 일을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었다. 선택권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한 달에 100만 원 남짓의 돈을 받으며 일하던 나는 약속받았던 정직원 채용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닫혀 버린 스크린도어 앞에 홀로 서 있는 나에게 '공기업 직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밥도 먹지 못하고 바쁘게 일했을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2013년 1월 19일 성수역, 2015년 8월 29일 강남역, 2016년 5월 28일 구의역. 서울메트로의 외주화, 최저가 입찰, 하청과 재하청. 도저히 지켜질 수 없는 2인 1조 매뉴얼 앞에 선택권을 빼앗긴 청춘들이 홀로 죽어가야만 했다.

내가 저 문 안에서 '열어달라, 열어달라' 외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람의 목숨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가방 안에 남겨진 육개장 한 사발과 젓가락을 보며, 누가 우리 앞의 문을 닫고 사지로 내몰았는지를 떠올려본다. 돈에 손과 발이 달려있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리라.

내 앞에 죽어간 이들을 기억할 뿐이다.

구의역에 붙은 포스트잇 구의역에 추모객들이 붙인 포스트잇 중 한장입니다.
▲ 구의역에 붙은 포스트잇 구의역에 추모객들이 붙인 포스트잇 중 한장입니다.
ⓒ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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