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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여름이다. 녹음이 짙어지고 싱그러운 햇살이 점차 열기를 더해가는 봄 끝 무렵에 봄의 찰나가 그리웠다. 저만치 가버린 봄을 기억하고 싶었다.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들꽃, 뫼꽃이 피는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문수사를 5월 25일 찾았다.

경남 진주에서 옛 마산으로 넘어가는 발산고개 근처에 있는 발산저수지. 그 안쪽에 ‘들꽃·뫼꽃 피는 절’ 문수사가 자리잡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옛 마산으로 넘어가는 발산고개 근처에 있는 발산저수지. 그 안쪽에 ‘들꽃·뫼꽃 피는 절’ 문수사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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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서 옛 마산으로 넘어가는 발산고개에 못 미쳐 시원한 저수지가 나온다. 발산저수지다. 저수지 둑길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가면 10여 가구가 사는 내동마을이 나온다. 마을에서 다시 영봉산으로 5분여 작은 저수지가 하나 더 나온다. 저수지가 끝날 무렵에 찔레꽃들이 떨어진 하얀 꽃길이 나온다. 싱그러운 나뭇잎들이 초록에서 짙은 녹색으로 영글어가는 숲이 나온다.

진주 문수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싱그러운 나뭇잎들이 초록에서 짙은 녹색으로 영글어간다.
 진주 문수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싱그러운 나뭇잎들이 초록에서 짙은 녹색으로 영글어간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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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근 숲 앞 '천상천하 문수사'라 적힌 장승을 마주한 길 건너편에는 '들꽃·뫼꽃 피는 절'이라 새겨진 해맑게 웃는 장승이 반긴다. 장승 주위에는 '환경파수꾼 갑돌이, 강돌이, 산돌이, 동돌이, 야돌이'라 적힌 장승들이 또한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는 듯 반긴다. 절 입구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주문을 장승들이 대신하는 모양이다. 장승들의 해맑은 표정을 따라 하는 내가 궁금했는지 저만치에서 '샤스타국화'라고도 하는 '샤스타데이지' 들이 하얀 고개를 내민다.

문수사 입구 장승들의 해맑은 표정을 따라 하는 내가 모양이 궁금했는지 저만치에서 ‘샤스타국화’라고도 하는 ’샤스타데이지‘ 들이 하얀 고개를 내민다.
 문수사 입구 장승들의 해맑은 표정을 따라 하는 내가 모양이 궁금했는지 저만치에서 ‘샤스타국화’라고도 하는 ’샤스타데이지‘ 들이 하얀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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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스타데이지는 프랑스의 들국화와 동양 섬 지역 국화를 교배해 만든 종인데 '순진, 평화, 만사를 인내한다'는 꽃말을 지니고 있다. 하얀 샤스타테이지의 반가운 인사를 뒤로하고 숲길로 걸었다. 숲길 옆에는 작은 실개천이 졸졸 소리를 내며 함께 한다. 하늘에는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가 들린다.

시원한 그늘이 끝나면 일주문이 없는 진주 문수사 경내다.
 시원한 그늘이 끝나면 일주문이 없는 진주 문수사 경내다.
ⓒ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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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개천 사이로 들꽃들이 하나둘 보인다. 시원한 그늘이 끝나자 '문수사 삼층사리탑 봉안식'이라는 걸개와 함께 20여 개 돌계단 축대 위에 절이 있다. 계단 옆으로 맑은 붉은 빛의 '지느러미엉겅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이 손짓하듯 부른다. 줄기에 물고기 지느러미 같은 날개가 있어 '지느러미엉겅퀴'인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엄격, 고독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지느러미엉겅퀴’ 스코틀랜드의 국화(國花)다.
 ‘엄격, 고독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지느러미엉겅퀴’ 스코틀랜드의 국화(國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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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 고독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녀석은 스코틀랜드의 국화(國花)다. 13세기 데인족이라고도 하는 덴마크의 바이킹들이 깊은 밤 스코틀랜드를 기습 공격했다. 야습을 위해 군화를 벗고 맨발로 숨을 죽이고 스코틀랜드 막사로 접근하던 바이킹 병사가 그만 엉겅퀴의 가시에 찔려 비명을 질렀다. 이 소리에 막사에서 자던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잠에서 깨어나 바이킹족을 물리쳤단다.

 꽃으로 둘러싸인 문수사 대웅전
 꽃으로 둘러싸인 문수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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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은 '지느러미엉겅퀴'를 보노라면 옛 전설과 함께 스코틀랜드 비공식 국가(國歌)로 불리는 'Flower of Scotland'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오! 스코틀랜드의 꽃이여/ 너와 같은 것을 언제 다시 만날까/ 네 작은 산들과 골짜기를 위하여/싸우다 죽은 꽃이여/ 거만한 에드워드 군대를/ 맞서 싸워 물리쳐낸 꽃이여!'

잎이 소나무처럼 생기고 꽃은 국화를 닮았다는 송엽국
 잎이 소나무처럼 생기고 꽃은 국화를 닮았다는 송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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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를 지나자 하얀 꽃눈이 내리는 모양새로 흔들리는 '빈도리'들이 보인다. 바람에 하늘하늘 거리는 별 모양 털과 짧은 털은 꽃말처럼 '애교' 스럽다. 애교스런 '빈도리' 아래에는 잎이 소나무처럼 생기고 꽃은 국화를 닮은 송엽국이 짙은 분홍색으로 웃는다.

사철채송화 또는 솔잎채송화로도 불리는 송엽국의 꽃말은 '나태, 태만'이다. 꽃을 들여다보면 고운 색에 이끌려 꽃말처럼 '나태'하고 '태만'히 그냥 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난다. 그러나 봄부터 가을까지 오랜 시간 꽃을 피우는 송엽국은 꽃말처럼 나태하고 태만하지 않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을 견디어내고 물기 없는 바위틈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강인함을 가졌다.

문수사 신선각과 돔형 온실
 문수사 신선각과 돔형 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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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경내로 들어가는 계단 옆으로 샤스타데이지가 평화롭게 무리 지어 있다. 두 손 모아 공손하게 합장하고 들어서자 대웅전을 중심으로 왼편에 요사채, 오른편에 돔형 온실과 그 위쪽에 신선각, 대웅전 뒤편에 독성각이 들꽃에 파묻혀 있다.

대웅전 양옆으로 당나라 현종이 최고의 미인이었던 양귀비에 비길 만큼 아름답다는 ‘꽃 양귀비’들이 피었다.
 대웅전 양옆으로 당나라 현종이 최고의 미인이었던 양귀비에 비길 만큼 아름답다는 ‘꽃 양귀비’들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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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양옆으로 당나라 현종이 최고의 미인이었던 양귀비에 비길 만큼 아름답다는 '꽃 양귀비'들이 피었다. 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사람이 양귀비는 원래 당 현종의 18번째 아들 수왕 이모의 비가 되었다가 현종의 눈에 띄어 귀비가 되었다. 며느리를 사랑한 현종은 양귀비의 미모에 빠졌다. 그러나 정작 현종은 안녹산이 일으킨 '안사의 난' 때 도망가면서 양귀비를 환관 고력사에게 내주고 죽도록 내버렸다.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 만큼의 미인이었던 양귀비도 '덧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양귀비처럼 그렇게 버림받고 사랑이 끝났다.

지중해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귀화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유럽세열취손이
 지중해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귀화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유럽세열취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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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왔는데도 부처님보다 꽃에 마음이 더 끌려 대웅전으로 가지 않고 꽃따라 걸음을 옮겼다. 대웅전 옆에는 돔형 온실이 있다. 온실로 걸음을 옮기는데 꽃 속에서 '왔구나! 봄아'라는 시가 적힌 팻말이 걸음을 붙잡는다. '해마다 눈 올때면/ 매화야/ 너는 피었겠지/ 가지 끝을 따라/ 온하늘 온 땅 가득/왔구나 봄아/ 새봄인 줄 몰랐구나/ 이 아침 매화꽃 다시 피고/ 그 꽃 한 송이/ 살포시 여문/ 나비는 휠휠 돌아오고/ 벌은 바삐 날아가도/ 목을 빼어 기다림 뿐~'

나도 살포시 벌인 양 나비인 양 목을 빼 꽃을 쫓다가 개미와 마주쳤다. 줄기 윗부분의 마디 밑에 갈색의 띠처럼 보이는 곳에 끈끈한 점액이 분비되어 개미 등의 벌레가 곧잘 붙어 '끈끈이 대나물'이라 불리는 들꽃에 눈이 머물렀다. '젊은 사랑'이라는 꽃말처럼 젊고 싱그럽다.

‘순박한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온시디움꽃
 ‘순박한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온시디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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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청춘을 닮은 끈끈이대나물 옆으로 '세열유럽취손이'가 귀엽게 보인다. 지중해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 귀화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야생화다. 다문화 시대에 이제 야생화도 다양하게 더불어 우리 산과 들에 사는 셈이다. 세열유럽취손이 앞에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는 무단동자꽃이 자연의 에너지를 품고 때를 맞춰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밤이 되면 오므라들었다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활짝 피는 애기낮달이꽃들이 노랗게 '보이지 않는 사랑'을 노래한다. 온실 안으로 들어갔다. '순박한 마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온시디움꽃이 온실 정문 뒤에서 나를 반긴다.

문수사 요사채 앞에는 땀을 훔치고 묵은 마음을 씻을 수 있는 정자가 있다.
 문수사 요사채 앞에는 땀을 훔치고 묵은 마음을 씻을 수 있는 정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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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시디움꽃 뒤에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하고 순결한 하얀 '카라'가 피었다. '천 년의 사랑'이라는 '카라' 다섯송이는 '아무리 찾아봐도 당신만 한 여자는 없습니다'를 뜻한다고 한다. 꽃집에서 다섯송이를 사서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선물할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가가 벌어진다. 바나나 우유의 바나나 향내가 주위에 퍼졌다. 다름 아닌 '당신은 나의 것'이라는 '함소화' 꽃이다. 살짝 배가 고파진다. 가방에서 캔커피를 꺼내 목을 축인다. 나도 목이 마른다는 듯이 흘린 커피 한방울이 떨어진 곳에는 '나를 잊지 말라'는 '물망초'가 피었다.

산신각 뒤로도 들꽃과 뫼꽃 세상이다. 독성각으로 꽃들의 배웅을 받으며 올랐다.
 산신각 뒤로도 들꽃과 뫼꽃 세상이다. 독성각으로 꽃들의 배웅을 받으며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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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을 나와 산신각으로 올라갔다. 가는 길도 꽃길이다. 산신각에서 바라보는 절은 온통 꽃이다. 산신각 뒤로도 들꽃과 뫼꽃 세상이다. 독성각으로 꽃들의 배웅을 받으며 올랐다. 들꽃, 뫼꽃 덕분에 눈이 즐겁게 호강이다. 독성각에서 내려와 요사채 쪽으로 향했다. 정자에 올랐다. 앉은상에도 꽃들이 화병에 꽂혔다. 시원하게 들고 나는 바람에 땀을 훔치고 묵은 마음을 씻었다.

문수사는 들꽃의 향기를 품고 있고, 눈길마다 꽃들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문수사는 들꽃의 향기를 품고 있고, 눈길마다 꽃들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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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만든 잿밥에만 눈이 멀었던 나는 땀을 훔치고 대웅전으로 향했다. 꽃으로 둘러싸인 부처님께 합장하고 나왔다. 문수사는 들꽃의 향기를 품고 있고, 눈길마다 꽃들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눈 닿는 곳 어디를 보아도 꽃이다. 네모와 직선, 회색빛 도시에 지쳤다면 이곳에서 위안받고 느린 행복을 채워갈 수 있다. 바람 곁에 흔들거리는 꽃들의 춤사위가 벌써 그립다.

덧붙이는 글 | 경상남도 인터넷뉴스 <경남이야기>
진주지역 인터넷언론 <단디뉴스>
<해찬솔일기>



태그:#진주 문수사, #들꽃, #뫼꽃,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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