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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박>의 백대길(장근석 분).
 <대박>의 백대길(장근석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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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 드라마 <대박>의 주인공인 백대길은 아버지 숙종의 아들로 인정받지 못한 채, 타짜 백만금의 아들로 초년 인생을 살았다. 배우 장근석이 백대길 역, 최민수가 숙종 역, 이문식이 백만금 역할을 맡고 있다.

드라마 속 백대길은 숙종과 후궁 최숙빈 사이에서 태어났다. 최숙빈은 숙빈 최씨로도 불린다. 숙종의 피를 물려받은 백대길이 그 아들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최숙빈이 후궁이 된 지 6개월 만에 백대길을 낳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최숙빈의 전 남편인 백만금이 백대길의 생부일 것이라고 수군댔다. 결국 백만금이 백대길을 맡아 키우게 됐다. 그래서 아이의 성도 백씨가 된 것이다.

백대길은 돈 한푼 모으지 못하는 타짜 아버지의 아들로 살았다. 아버지 백만금은 백만 금의 돈을 벌어오기는커녕 양아들 백대길한테 가난한 삶만 안겨주었다. 하지만, 백대길의 삶은 꽤 화려한 편이다.

타짜 아버지한테서 배운 최첨담 도박 기술, 일급 무사 김체건한테서 배운 초첨단 무예가 있었다.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백대길은 도박계를 평정하고 어둠의 세계를 장악한다. 삶 자체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지만, 웬만한 명문가 자제 못지않은 화려한 삶을 그는 살고 있다.

드라마 속 백대길에 해당하는 실제 인물은 이영수다. 이영수는 숙종의 전체 아들들 중에서 셋째이자 최숙빈한테서 태어난 아들들 중에서 첫째다. 탕평정치로 유명한 영조 임금한테는 친형이 된다. 드라마 속 화려한 백대길과 달리, 이영수의 실제 삶은 판이하게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아주 간략한 삶이었다. 조선왕실 족보인 <선원계보기략>에서는 이렇게 기록했다.

"3남 영수: 육상궁(毓祥宮)·화경휘덕안순수복 숙빈 최씨가 낳았다. 일찍 죽었다."

 <선원계보기략>에 언급된 이영수. 빨간 줄 친 부분.
 <선원계보기략>에 언급된 이영수. 빨간 줄 친 부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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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최숙빈에 대한 수식어로 쓰인 '육상궁'은 최숙빈의 사당을 가리킨다. 또 화경휘덕안순수복(徽德安純綏福)은 존호를 가리킨다.

위의 족보에 따르면, 이영수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곧바로 죽었다. 원문은 "조졸(早卒)"이라는 두 글자로 간명하게 처리되어 있다. 양력을 기준으로 할 때 그는 68일간 살았다. 68년이 아니라 68일이다.

영수(永壽)란 이름은 말 그대로 하면 '영원한 생명'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던 것이다. 드라마에서처럼 어둠의 세계를 장악할 시간도 없이 그는 매우 짧은 인생을 살았다. 

68일밖에 살지 못했지만, 이영수는 꽤 기구한 삶의 주인공이다. 바깥 빛을 보기도 전, 그러니까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죽을 위험을 겪은 아이다. 그 위험의 출발점은 당시의 왕비인 장희빈이다. 뱃속에 있을 때 장희빈발(發) 저주를 받았던 것이다.

조선 후기에 이문정이 쓴 <수문록>에는 이영수가 어머니 뱃속에서 겪은 기막힌 사연이 소개되어 있다. <수문록>은 숙종·경종시대의 당쟁을 정리한 책이다. 수문록(隨聞錄)이란 표현은 '들은(聞) 그대로(隨) 쓴 기록(錄)'이라는 의미다.

최숙빈이 아직 궁녀였을 때였다. 그는 궁녀로서 숙종과 은밀히 교제하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최숙빈이 궁녀보다 낮은 무수리 출신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그의 신데렐라 같은 출세를 보다 더 극적으로 부각시킬 목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최숙빈은 일곱 살에 궁에 들어갔다. 이 나이에 궁에 들어간 여성은 거의 다 궁녀였다. 또 최숙빈의 무덤인 소령원에 있는 신도비의 비문에도 궁녀 출신이란 사실이 소개되어 있다. 이렇게 최숙빈이 궁녀 신분으로 숙종을 만나고 있을 때였다. 이때 어머니 뱃속에 있었던 이영수는 기막힌 일을 겪게 된다.

<수문록>에 따르면, 아버지 숙종이 처소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이때만 해도 숙종은 이영수의 존재를 몰랐다. <수문록>은 숙종이 꿈에서 본 상황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아래에 나오는 '선(先)대왕'은 숙종을 가리킨다. 숙종이 죽은 뒤에 나온 기록이라, 선대왕이란 표현이 사용됐다.

"선대왕이 베개에 기대어 조는 사이에, 꿈에서 갑자기 신룡(神龍)이 나타났다. 신룡은 땅속에서 나오고자 했지만,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머리 뿔을 드러내고는, 울면서 선대왕에게 '전하, 속히 저를 살려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왕의 처소 중 하나였던 창덕궁 선정전.
 왕의 처소 중 하나였던 창덕궁 선정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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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이 꿈에서 본 것은 신비한 용이다. 땅속에 갇힌 용은 숙종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꿈에서 깨어난 숙종은 이상한 느낌에 휩싸였다. 잠깐 동안 꿈의 해석에 들어간 그는 '용이 땅속에 갇힌 것은 아이가 뱃속에 있는 것'이고 '용이 구조를 요청하는 것은 태중 아이가 위험에 처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자 숙종은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중전 장희빈의 처소로 급히 움직였다. 최근에 궁녀 최씨와 만남을 갖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그는 장희빈부터 떠올렸다. 장희빈이 이미 두 번이나 아들을 낳은 적이 있기 때문에 '중전한테서 아이가 또 생겼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장희빈의 처소에 가보았지만, 숙종은 별다른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장희빈을 포함한 몇몇 여성들이 마당에 서 있었을 뿐이다. 그 모습이 좀 이상했을 수도 있지만, 특이사항이 포착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담장 밑 큰 항아리가 숙종의 눈에 확 들어왔다. 항아리는 엎어진 상태로 놓여 있었다. "저 항아리는 어째서 거꾸로 세워두었느냐?"라고 숙종이 물었다. 장희빈은 "빈 항아리는 본래 거꾸로 세워둡니다"라고 대답했다. 숙종은 뭔가 수상했다. 왠지 빈 항아리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내시에게 "똑바로 세워보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깜짝 놀랄 풍경이 나타났다. 내시가 항아리를 들어보니, 임신한 여성이 결박당한 채 웅크리고 있었다. <수문록>에 따르면, 그 몸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장희빈한테 매질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숙종이 들여다보니, 궁녀 최씨였다. 최숙빈이었다. 최씨가 왕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장희빈이 최씨를 소환해 죽도록 매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가 왕의 아이라는 게 입증되지 않는 한, 아이를 임신한 궁녀를 처벌하는 것은 중전의 권한이었다.

만약 숙종이 그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장희빈은 계속해서 매질을 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최숙빈은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최숙빈이 그렇게 죽었다면 훗날 영조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영조의 자손인 사도세자와 정조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최숙빈이 죽지 않았더라도 매질이 조금만 더 계속됐다면, 뱃속에 있는 이영수는 목숨을 지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위험에 처한 스스로를 구하려고 잠든 아버지한테 텔레파시를 날려 "전하, 속히 저를 살려 주십시오!"라고 울부짖었는지도 모른다.

숙종은 새로 잉태된 아이가 장희빈 몸속에서 자기를 부르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최숙빈 몸속의 이영수가 애타게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영수는 뱃속에 있을 때, 중전 장희빈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장희빈의 저주를 받은 아이였던 것이다. 그런 위기를 겪고도 이영수는 무사히 태어났다. 하지만 그의 삶은 '조졸'이었다. 불과 68일밖에 살지 못했다. 자기를 미워하는 장희빈의 세상에서 68일밖에 견디지 못한 것이다. 장희빈의 저주를 계속해서 막아내기가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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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