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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광고에선 늘 편안함을 강조하고, '생리를 하는 중에도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여성상을 제시한다.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광고.
 생리대 광고에선 늘 편안함을 강조하고, '생리를 하는 중에도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여성상을 제시한다.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광고.
ⓒ 유한킴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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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SNS에는 생리에 대한 여성들의 경험담과 생리대를 구매할 수 없는 저소득층 여성에 대한 염려가 이어졌지만, 유한킴벌리는 결국 생리대 가격 인상을 밀어붙였다.

일회용 생리대 가격은 저소득층 여성에겐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누군가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면 생리대 보급'을 말한다. 이는 생리에 대한 남성중심사회의 무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세탁 후 재사용할 수 있는 면 생리대를 보급하자는 주장은 당사자인 여성들이 쉽사리 공감하기 어렵다. 세탁과 건조를 할 만한 충분한 주거 공간과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만 사용 가능한 것이 면 생리대다. 생리를 주제로 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 즉 생리에 대한 이해가 높은 사회였다면 이런 주장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생리대를 숨기고 가리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지 오래된 나 역시, 가끔 생리대를 보이지 않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에 갈 때 생리대를 파우치나 주머니에 넣어가거나, 구입한 뒤 즉시 가방에 넣거나 하는 것이다. 내가 생리대를 정말로 '자연스럽게' 휴대하는 것은 아마 한참 먼 미래의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드럭스토어나 마트에서도 생리대를 구입하면 속이 보이지 않도록 종이봉투나 검은 봉투에 넣어준다.

생리대 광고에선 늘 편안함을 강조하고, '생리를 하는 중에도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여성상을 제시한다. 흰 옷이나 붙는옷을 입어도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생리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는 모습을 강조한다. 생리대를 잘 선택하면 아무 일 없이 마무리할 수 있다는 듯 보이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드물다.

실상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생리통은 불시에 뒤통수에 꽂히는 다트같다. 피가 묻어나오는 상황에서, 세탁의 번거로움이나 몸이 불편해지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여져 창피당할 일'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슬프다. 조심성 없는 여자라는 지적을 받을것이고, '생리하는 (것을 들킨) 여자'라는 조롱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생리에 대해 더 떠들고, 들어야 한다

최근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SNS에는 생리에 대한 여성들의 경험담과 생리대를 구매할 수 없는 저소득층 여성에 대한 염려가 이어졌지만, 유한킴벌리는 결국 생리대 가격 인상을 밀어붙였다. 사진은 팬티라이너.
 최근 유한킴벌리가 생리대 가격 인상을 발표했다. SNS에는 생리에 대한 여성들의 경험담과 생리대를 구매할 수 없는 저소득층 여성에 대한 염려가 이어졌지만, 유한킴벌리는 결국 생리대 가격 인상을 밀어붙였다. 사진은 팬티라이너.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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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완벽한 상태를 묘사한 광고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생리대가 없다면 누구도 어떤 광고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흠 없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다. 하긴, 생리대 광고에서 흡수율을 보여주기 위한 파란 시약을 '생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광고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생리'같은' 일은 외부에 들키지 않고 (정확히 말하면 남성들에게 들키지 않고) 마무리 해야 한다는 인식은 공기처럼 당연하게 퍼져있다. 저소득층 여성들이 생리대를 편하게 고르거나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2016년이 되어서야 언론과 정치인들의 주목을 받는다. 그마저도 '중대한' 화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사용이 가능한 면 생리대를 보급하자'는 제안은, 한국의 남성권력집단이 아무렇지 않게 "괜찮다"고 생각할 만한 성질의 주장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생리에 대해 말하고 또 들어야 한다. 생리는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이 생각의 연장으로 생리대를 아껴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건 "무릎이 깨지면 피를 참으면 된다"는 말과 같다.

많은 여성이 첫 생리대를 일회용으로 접하고, 이후 건강과 기호의 차원에서 면 생리대를 선택한다는 것을 안다면 이런 제안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다. 삽입형 생리대(탐폰)를 사용하면 처녀막이 손상되므로 출산을 한 여성들만 쓸 수 있다는, 더 정확히는 그래야만 한다는 근거 없는 낭설 역시 여성의 신체나 생리에 관해 무지함이 드러나는 말이다. 또 여성의 신체보다 '처녀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국내 한 탐폰 생산 업체는 아예 제품 사용안내서에 "처녀막은 막이 아니며, 탐폰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설명을 써 두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여성의 신체와 생리대에 대한 지식과 대화를 얻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숨겨야 하는 것은 생리뿐만이 아니다. 브래지어 끈이 보이면 같은 여성끼리 귀띔해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여성들은 본인의 의지대로 원하는 옷을 입을 수 없고, 남자들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생리를 화제에 올릴 수도 없다. 이 불편한 침묵을 깨는 것, 생리와 생리대에 대한 토론이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태그:#생리, #생리대, #월경, #면생리대, #탐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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