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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주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구체적인 생활세계다. 주민들의 생활은 경제나 교육, 문화, 복지, 환경 등의 개별적 범주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총체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2015 전국 마을선언 초안 제5절>

마을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곳에서 이웃을 사귀고, 아이를 키우고, 취미활동을 하고,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판다. '마을을 살린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데 필요한 총체적 기능을 복원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떠나가는 농촌마을을 살리는 일은 더욱 그렇다. 마을이 살만 해야 사람들이 모여 산다. 마을 주변 논밭에서 기르는 농작물을 더 좋은 값에 내다팔 수 있어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이사와도 함께 어울릴 사람이 있어야 하고, 아이들은 뛰어놀며 공부할 친구와 학교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마을을 살리겠다고 정부는 '마을만들기' 정책을 펼치고 있다. 마을은 총체적이지만, 마을만들기 정책을 펼치는 행정부서는 개별화되어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려는 주민들은 농업관련 부서로, 건설 부서로, 경제 부서로 찾아 다녀야 한다. 어쩌면 농촌 지역 지자체의 모든 부서가 마을만들기 정책과 관련이 있는 지도 모른다.

행정은 전형적인 관료제다. 효율성, 전문화, 분업화라는 장점이 있지만 부서 간 칸막이는 생각보다 견고하다. 마을만들기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부서 간 협업은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구조다. 서로 떠넘기거나, 일 잘하고 마을에 애정 있는 담당 공무원 한 명이 '마을사업 독박'을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3차 대화마당은 지난 20일 논산시 공동체경제추진단 회의실에서 열렸다.
▲ 충남 마을만들기 3차 대화마당 3차 대화마당은 지난 20일 논산시 공동체경제추진단 회의실에서 열렸다.
ⓒ 정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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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다. '마을사업에 대한 효율적인 행정의 재편 방향'이라는 충남 마을만들기 세 번째 대화마당 주제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행정조직의 업무처리에 대한 주제를 다루다보면 공무원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행정조직의 논리가 주민과 괴리되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주민 생활에 밀접한 행정조직의 개편은 관심을 가져볼만한 가치가 있다.

마을만들기, 다양한 공동체 사업과 연계해야

충남연구원 마을만들기지원시스템연구회는 지난 20일 논산시 공동체경제추진단 회의실에서 세번째 대화마당을 열었다. 논산시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행정조직을 적극 개편했다.

2015년 9월 희망마을건설과 내에 '희망마을지원센터추진단'을 설립한 논산시는 조직을 보다 확대해 올해 5월 전략기획실 산하에 '공동체경제추진단'을 꾸렸다. 마을만들기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 로컬푸드, 학교급식, 귀농귀촌 분야 등 각 부서에 흩어져 있던 사업 중 15개 사업을 공동체경제추진단으로 이관했다.

공동체경제추진단 행정지원팀 이상환 주사는 "마을만들기에는 사회적경제, 로컬푸드, 귀농귀촌 등이 모두 필요한데, 협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에만 국한하지 말고 각각의 공동체 사업을 연계해야 마을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직체계는 행정지원팀, 실무추진팀으로 구분되어 있다. 행정지원팀에는 일반직 공무원 2명, 실무추진팀에는 4명의 민간 전문가 및 활동가들이 임기제 공무원, 기간제 형식으로 결합하고 있다. 추후 행정지원팀 2명, 실무추진팀 3명을 추가로 뽑아 민간 전문가인 단장을 비롯해 12명 규모의 조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담당 업무 다르면 사업 간 협업 어려워

임경수 단장이 마을만들기를 위한 논산시 조직개편 사례를 발표했다.
▲ 임경수 논산시 공동체경제추진단장 임경수 단장이 마을만들기를 위한 논산시 조직개편 사례를 발표했다.
ⓒ 정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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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에서 커뮤니티비지니스센터장을 맡았던 임경수 박사가 논산시 공동체경제추진단장을 맡고 있다. 임 박사는 정책보좌관을 겸하고 있다. 임 박사는 논산시 중간지원조직 설립을 준비하면서 부서 간 칸막이 때문에 효과적인 업무 추진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중간지원조직 역할을 하면서) 주민을 만나는 것보다 행정 처리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급식 사업을 마을만들기와 연동시켜, 마을에서 생산되는 것을 묶어서 학교급식센터에 공급하려고 했습니다. 계약직 공무원이 학교급식센터 업무를 전담하고 있지만, 농정과 소속으로 일하기 때문에 마을만들기와 연동이 어려웠습니다.(당초 마을만들기 사업은 희망마을건설과 업무였음.)"

반면 전통시장에 사회적경제 분야인 청년플랫폼을 조성하는 사업은 연계가 잘됐다. 사회적경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팀장이 전통시장 업무를 함께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 박사는 "두 업무 모두 한 공무원의 업무이기 때문에 사업 간 연동이 가능했다"며 "만약에 사회적경제와 지역경제 업무가 나눠져 있었다면 이것을 합치는 것도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체경제추진단이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는 사업을 모두 가져온 것은 아니다. 논산시 예산서를 분석해 주민을 발굴하고 조직하는 업무만 가져왔다. 예를 들어 사회적기업과 관련된 인건비 지원 등 행정적 업무는 사회적경제과가 그대로 맡고 있다. 학교급식 관련 조직 발굴은 추진단이 하고, 로컬푸드와 학교급식 사업을 위탁받은 업체에 대한 지원은 농정과가 하는 식이다.

임 박사는 "하드웨어 사업, 행정처리 사업은 원래 부서에서 맡는다"며 "민간의 역량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일, 행정처리가 많은 일은 그대로 놔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논산시는 지역 청년들을 발굴하고 전통시장에 청년플랫폼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논산시 청년간담회 논산시는 지역 청년들을 발굴하고 전통시장에 청년플랫폼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논산시 공동체경제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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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행정조직 개편은 "다른 나라 이야기"?

논산시 공동체경제추진단은 직접 사업을 집행하면서 마을만들기와 관련된 여러 부서의 사업을 총괄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대화마당에 참석한 충남도내 마을만들기 담당 공무원들은 논산시의 사례를 듣고 부러워했다. 총괄조정부서가 없는 상황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솔직히 우리 부서(건설 관련 부서)는 기반조성이 주 업무였지, 마을만들기 사업은 부수 업무였습니다. 기반조성 업무 만해도 너무 많은데 마을만들기 사업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을 사업에 관심은 있지만 업무량이 과중되는 거죠. 타 부서에 지원요청해도 공감대가 안 생깁니다. 마을만들기 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행정부서나 지원부서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데 담당 직원만 생각하는 거죠. 논산시의 사례를 들으니 다른 나라 이야기 같군요."

"우리 지자체에서는 행정체계 개편에 대해서는 깊이 다루지 않는 상황입니다. 기획실에서 총괄한다고 하지만 예산만 총괄하는 형식이지요. 이 일을 맡으면서 역량강화, 창조형 마을만들기, 현장포럼, 선행사업 등 공모 사업 일만 몰리고 있습니다. 마을 사업 공문은 모두 건설교통과로 와요. 중간지원센터 업무를 지원해주는 것이 더 중요한 업무인데 행정처리하는 업무에 치우쳐 어렵습니다."

총괄조정부서만으로 지속가능할까?

논산시는 '총체적인' 마을만들기 사업을 위해 행정칸막이를 없앤 행정조직 혁신 사례이지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자체장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이 큰 규모의 전담부서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앞으로 지차제장이 교체되더라도 이러한 형태가 유지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논산시는 2017년 1월 마을만들기 관련 중간지원조직 업무를 민간으로 이양할 계획이다. 공동체경제추진단의 실무추진팀 업무가 민간단체에게 위탁되는 방식이다. 이 때 행정조직에 남은 행정지원팀이 총괄조정부서 역할을 계속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부서 간 업무협조를 위한 행정협의체가 필요하다.

논산시 공동체경제추진단은 마을만들기 사업뿐만 아니라 시민창안대회 등 사회적경제 사업을 적극 연계하고 있다.
▲ 논산 사회적경제 창안대회 논산시 공동체경제추진단은 마을만들기 사업뿐만 아니라 시민창안대회 등 사회적경제 사업을 적극 연계하고 있다.
ⓒ 논산시 공동체경제추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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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마당을 주관한 충남연구원 구자인 책임연구원은 "행정 내부에서 총괄조정부서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업무조정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민간의 중간지원센터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행정의 총괄조정부서와 협조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 박사는 "행정협의체에서 사안마다 부서 간 협업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 아직 정확한 그림은 못 그렸다"며 "민간이 빠져 나가도 행정조직에 남아 있는 팀이 행정협의체를 운영하면서 조정해 나가야 업무가 원활하게 추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을만들기뿐만 아니라 사회적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중간지원조직 업무를 위탁받을 민간단체 네트워크 형성과 법인 구성도 논산시의 과제다. 구 책임연구원은 "통합형 중간지원센터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민간 네트워크(법인)가 마을위원장 만의 모임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마을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행정조직은 변해야 한다. 대부분 지자체의 행정구조는 마을의 현실을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 논산시의 사례가 주목받는 것은 이러한 상황 때문이다. 논산시의 행정혁신 실험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사라져가는 농촌마을을 살리길 기대한다.

충남 마을만들기 4차 대화마당은 6월 24일 예산군에서 열린다. 주제는 '마을협의체 구성방향과 역할, 당사자 조직의 과제'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의 블로그 '시골다락방(darock.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마을만들기, #논산, #행정조직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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