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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새벽 벌어진 '강남역 살인사건'은 한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단순 살인이 아닌 피의자 김모씨가 평소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분노를 분출한 '계획적 여성 혐오 살인사건' 이라는 의혹 때문이다. 경찰은 피의자가 '여성혐오'를 바탕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 아닌 단순히 '조현증(정신분열증세)'을 앓고 있던 환자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날 피의자가 1시간 이상동안 공중 화장실에서 범행을 준비하며 6명이나 되는 남성을 모두 그냥 돌려보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경찰이 내놓은 결과는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사건 이후 전국에서는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강남역 10번 출구에 자발적으로 그녀를 추모하는 공간을 만들어 헌화를 하고 추모의 메시지를 담은 포스트잇을 붙여놓는 등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그녀를 기렸다. 특히 이제껏 알게 모르게 성희롱, 유리장벽 등 각종 성 차별에 노출되어있던 전국의 여성들은 이번 사건이 우리사회에 아직도 만연해 있는 '여성혐오'를 극명히 보여준 것이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추모의 물결이 성행할수록 '여성혐오' 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도 거칠어졌다. 강남역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그녀가 단순히 여성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 것이라면 자신 역시 이 사회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이제까지 일베, 소라넷 등의 '범죄 수준의 여성혐오' 사이트를 규탄하지 않는 이 사회를 비난했고, '여성의 피해'에 무감각한 대한민국의 남성들을 비판했다.

추모의 열기와 여성들의 분노가 더욱 극렬해지자 한 편에선 '여성들이 점점 추모의 논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라는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죄 없는 여성의 죽음은 안타까운 것이지만 여론이 '죽음에 대한 추모'에서 벗어나 사회와 남성을 비판하며 '추모'의 논지를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정말 지나친 것일까? 단순히 한 사람의 죄 없는 죽음을 애도하는 데서 그쳐야 하는 것이 맞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2014년 4월 16일, 총 304명의 실종자와 피해자를 낳은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손 꼽히는 최악의 참사로 기억된다. 참사로부터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사람들이 단순히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마음에서 그쳤는가? 그렇지 않다. 참사 이후 국민은 단순한 애도를 넘어 '대한민국의 재난 대응 체계'를 바라보았다.

비운의 사고는 어느때나 일어날 수 있다지만 구할 수 있었던 아이들을 국가의 '재난 컨트롤 타워 부실' 탓으로 단 한명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은 분개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성장' 과 '발전' 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현위치를 지적했으며 참사를 계기로 이제는 우리가 '안전'과 '생명'에 눈을 돌려야 함을 주장했다. 한 차례의 사회적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아직 꿈을 찬란히 펼쳐 보지도 못한 23살 여대생이 이유도 모르는 채 칼에 찔려 처참히 생을 마감한 일을 단순히 '조현증 환자에 의한 불의의 사고' 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시민의식을 함양한 국민이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이 사건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에 대한 각성'은 성숙한 시민이 할 수 있는 추모의 가장 마지막 단계다. '여성혐오' 가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은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이지 말아주세요'의 의미가 아니다. 표면으로 드러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도처에서 여성을 괴롭히는 만연한 혐오와 차별을 온전히 없애달라는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촛불을 들고 강남역 10번출구에 나오는 여성들은 모두 그녀의 억울한 죽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사회의 각성과 변화 촉구'라는 추모를 택했다. 부디 정부와 모든 국민이 강남역 추모 열풍 속에 담겨있는 여성들의 뜻을 헤아려 주기 바란다.


태그:#강남역살인사건, #여성혐오 , #강남역추모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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