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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내가 흰돌리마을(농촌체험마을) 사무장이 되면서, 법원서류가 마을로 자꾸 날아왔다.

마을로 법원 서류 계속 날아온 이유 알고 보니.......

2008년 체험관 공사를 할 때, 원청업체가 공사를 하지 않고 하청업체가 공사를 했다. 안성시청으로부터 우리 마을 통장으로 공사대금이 지원되면, 다시 그 대금을 원청업체에게 이체하는 것이 우리 마을 임무였다.

물론 그 대금은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게 다시 지불할 일이지만, 그건 우리 마을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원청업체가 할 일이니까. 하지만, 그 신경 쓰지 않을 일을 우리 마을이 신경 쓰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원청업체가 공사대금을 하청업체에게 주지 않고 날아 버렸다. 그렇다. 일종의 사기행위였다. 그 대금을 받지 못한 하청업체는 원청업체를 상대로 법원 재판을 소송하여 승소했다. 승소한 결과, 우리 마을에게 공사잔금을 원청업체에게 지급하지 말라는 '지급정지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평화로운 우리마을은 양지편 마을이라고도 한다. 하루 종일 해가 잘 든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참 시골다운 마을이다.
▲ 흰돌리마을 이렇게 평화로운 우리마을은 양지편 마을이라고도 한다. 하루 종일 해가 잘 든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참 시골다운 마을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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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부터 꼬였다. '지급정지 명령'을 받은 우리 마을 측에서 원청업체에게 공사잔금을 지불하지 않았으면 되었을 텐데, 지불하고 말았던 거다. 이에 하청업체는 그 책임을 우리 마을에 물어 뭔가를 건져보려고 계속해서 집적대고 있었던 거다.

2008년에 공사하고 생긴 사태가 2011년까지 해결되지 않고 마을의 골칫거리로 남아 있었던 거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 달지?

궁리한 끝에 사무실에선 "변호사를 사야겠다"고 작정했다. 우리 마을의 짧은 법적 소견을 가지고 하청업체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 판단했다. 상대방 하청업체는 변호사를 고용해 체계적으로 우리 마을을 압박해오고 있었다.

문제는 변호사 비용이다. 알아보니 최소 450만원이란다. 참 난감한 일이다. 마을에서 450만원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차라리 개인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면, 본인이 빚을 내서라도 변호사를 고용하겠지만, 마을 공동의 일이니 누가 그 비용을 낸단 말인가. 더군다나 체험관을 짓는 문제로 그 일이 벌어졌으니 난감했다.

어쨌든 이걸 두고 진퇴양난이라 하겠지.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하청업체가 결국 우리 마을 체험관을 집어 삼킬 것이고, 변호사를 사자니 승산이 보장되지도 않은 싸움에 450만원이란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는 거다.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서 그들의 주머니를 열어야 했다.

그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체험관에 모인 마을 분들의 얼굴이 어둡다. 무슨 이유로 이 회의가 소집된 줄 알기 때문이다. 사무실 측 호소는 이랬다.

"승산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앉아서 체험관을 넘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두고두고 우리 마을의 치욕이 될 것이다. 되든 안 되든 한 번 부딪쳐보자".

이런 설득을 하고 또 했다. 하지만, 회의는 공회전을 하고 있었다. 서로 눈치만 보는 상태였다. 갑갑했다.

노인회 총무님이 일촉즉발 상황에 물꼬를 트다

이때, 우리 마을 한 어르신이 회의장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하이고, 이제 회의고 뭐고 끝났다' 싶었다. 그런데, 그 어르신이 나가면서 현 위원장을 불렀다. 바깥으로 나간 위원장과 어르신이 좀 있다가 사무장인 나도 불렀다. 나갔다. 그 어르신이 말했다. 그 어르신은 마을 노인회 총무였다.

"사무장 말여. 우리 노인회에서 100만원 먼저 낼 텡게 좀 더  힘써봐." 

순간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막막한 벽 사이로 한줄기 빛이 들어오는 듯 했다. 희망의 불씨를 잘 살리는 일만 남았다. 다시 마을 회의에 임했다. "마을 노인회에서 100만원 내겠다고 한다"며 공표하고, 다시 호소에 들어갔다. 그 말이 공표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그렇다면 마을 총회에서도 100만원, 부녀회에서 50만원, 당시 위원장 50만원, 현 위원장 50만원, 현 사무장 50만원, 마을어르신 두 분 50만원."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었다. 좀 전에 갑갑했던 분위기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이런 분위기가 기쁘면서도, 순간 두려웠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패소한다면 어떻게 될까.

변호사 비용은 해결됐지만, 만일 패소한다면........

그 후 변호사를 통해 우리 마을도 법적으로 대응해 나갔다. 문제의 핵심을 찾았다. 하청업체가 승소한 법원에서 날린 '지급정지 명령서'가 우리 마을에 도착한 시점과 우리 마을 전임 사무장이 공사잔금을 송금한 시점 중 어느 것이 더 빠르냐의 문제였다.

만일 지급정지명령서가 송금시점보다 빨랐다면, 그걸 알고 지급한 우리 마을의 책임이다. 역으로 지급정지명령서가 송금시점보다 느렸다면, 지급정지 명령을 모르고 송금했으니, 우리 마을에 책임이 없어진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밝히는 가다.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마을이 승소를 했다. 어떻게. 단 30초 차이로 말이다. 우리 측 변호사가 알아낸 사실은 바로 이랬다. 우리 마을 전임 사무장이 농협 CD기를 통해 원청업체에게 송금한 시간이 오후 5 시 35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송금이 완료된 시간이었다. 전임 사무장이 약 4천만 원의 공사잔금을 몇 번에 걸쳐 나누어 송금하다가 마지막으로 송금이 완결된 시간이다.

마을 입구에 한옥들이 있어 안성사람들은 우리 마을을 한옥마을이라고도 한다. 체험마을 운영위원장인 전인식씨가 체험마을을 위해 가꾸워온 한옥펜션과 한옥들이다. 우리 마을의 비주얼 담당이다.
▲ 흰돌리마을 한옥전경 마을 입구에 한옥들이 있어 안성사람들은 우리 마을을 한옥마을이라고도 한다. 체험마을 운영위원장인 전인식씨가 체험마을을 위해 가꾸워온 한옥펜션과 한옥들이다. 우리 마을의 비주얼 담당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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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급정지 명령'이 담긴 우편물이 도착한 시간은? 등기일 경우 우체부가 기계로 배달한 시점을 찍어둔다. 정확하게 말하면 해당우편물이 당사자 손에 들리고, 당사자로부터 서명을 받고 나서 찍히는 시간이다. 

그랬다. 그 시각이 바로 5시 35분 30초였다. 우리 마을은 30초 때문에 승소를 했다.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해낸 느낌

그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린 건 현 위원장과 사무장인 나였다. 변호사를 사자고 주동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두고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지 않을까. 변호사를 사는 거야 우리가 할 일이지만, 승소하는 것은 정말 천운이었다. 그것도 30초라니.

우리 마을의 작은 승리였다. 아니 우리 마을 공동체의 승리였다. 누구의 잘잘못을 묻는 것에 머물지 않고, 마음을 합해 변호사를 샀던 주민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만들어낸 열매이리라.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다른 마을은 패소해서 마을이 엉망진창이 되었단다. 위기의 우리 마을 공동체를 기업의 장난으로부터 지켜낸 시간은 단 30초였다. 마치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해낸 느낌이다.

2016년 요즘 우리 마을공동체는 적어도 잘 살고 있다. 5월 30일엔 마을 분들이 야유회를 간다고 준비가 한창이다.


태그:#흰돌리마을, #공동체, #마을, #더아모의집,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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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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