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독백을 외롭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 첫 독백을 건넨 이이체 시인. 그가 첫 시집 <죽은 눈을 위한 송가>를 낸 지 5년이 지난 2016년 3월, 두 번째 시집 <인간이 버린 사랑>을 발표했다.

'아픈 짐승처럼 그 울음을 토해놓고' <우상의 피조물>, '나는 버려지기 위해 타인이 필요하다' <고통의 타인>, '사랑도 해본 적 없는데 괴물이 되어버린' <회음의 부적>, '외뿔 짐승이여 우는 줄도 모르고 우는 내 유물이여' <검은 여름 열대병>, '당신의 눈에 숨겨진 나의 눈을 되찾아가겠다' <실험실을 떠나며> 등 시집에 수록된 70편의 시는 인간이 버린 사랑을 짐승의 독어로 사유한 듯 건조하며 서글프다.

시인은 이번 시집을 "첫 시집 때 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미진한 부분을 완성해 낸 것은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북촌에서 이이체 시인을 만났다.

"추상? 일상하고 멀다는 게 아닙니다"

시인 이이체
 시인 이이체
ⓒ 김광섭

관련사진보기


- 시인에게 인터뷰는 어떤가요?
"많은 오해와 곡해를 양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해를 선용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 오해를 그대로 남용하게 되는 경우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피치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문학사를 연구하면서 문학 언어와 저널 언어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느껴지는 괴리를 실제로 체감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미음(ㅁ)과 입구(口) 자가 전혀 다른 거잖아요? 시 쓰는 사람들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다르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입장인데, 다르다고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들은 '그건 같은 건데?' 언론 언어를 쓰는 분 중에 왕왕 그런 식으로 오해를 양산하고 계셔서 난처해지기도 하고요."

- 유년 시절이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읽기와 쓰기가 습관화돼 있었던 측면이 확실히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부모님께서 독서의 자율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권장을 해주시고 많이 장려해주신 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 이번 시집을 읽고 첫 시집의 연장선 느낌을 받았어요.
"첫 시집이 저 자신과 사랑이라는 경험, 죽음에 대한 유사체험에 관한 사유를 적어나가는 과정에서 저 자신에게 집중하였다면, 지금은 타자를 경유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경험에 대해 초점을 맞춘 것 같아요. 근데 전반적으로 이런 것들을 쓰겠다 해서 쓰는 것보다는 사고 이후, 시 쓰기 이후, 시 이후에 사후적으로 평가를 내리는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사후적인 평가인 것 같습니다.

- '몸의 내장된 쌍둥이가 마음을 잡아먹을 것이다' <언어의 정원>, '나는 여생의 기후를 읽을 것이다' <독어>,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못할 것이다' <인간이 버린 사랑>, '발가벗은 빛을 보게 될 것이다' <바벨> 등 '~것이다' 선언적 혹은 예언적 표현이 눈에 띕니다.
"어사가 두 가지죠. 그 어사는 두 가지로 읽히는 어미인데, 하나는 예상이고 하나는 의지적인 거죠. 저는 대체로 예상 쪽으로 좀 더 맞추려는 거죠. 한국어 문법 특유의 모호성 같은 것 때문에 '~할 것이다'가 선언적으로 많이 읽히기는 하죠. 선언적으로 읽혀도 상관은 없을 것 같긴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그 문장은 예후로 써나가는 거죠."

- 자아 성찰, 고백의 시는 아닌 것 같아요. '당신의 유서를 대신 써주는' <오래된 눈물>처럼 다른 인간을 탐구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관통해 오는 거겠죠. 타인을 경유한다고 해서 타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아니거든요. 타인을 경유하는 나, 내가 경유하는 타인에게 초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닌 오로지 타인을 경유한다라는 것에 맞춰져 있는 거죠. 저는 오히려 거꾸로 자기 고백, 내면 탐구 평가를 많이 들어서 지금 말씀하신 것도 새롭습니다."

- 일상적인 테마보다는 죄, 죽음, 신 등 고전적 사유에 대해 더 파고드는 것 같은데요? 동서고금의 영원한 질문이지만요.
"별로 일상하고 멀지 않는데 일상하고 멀다는 자의식을 너무 전면화시킨 게 한국 시단의 메인 스트림이라고 할까요? 굉장히 자의적이기 때문에 한국시의 협성을 드러내는 어두운 일면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일면을 쇄신하는 역할을 예전에는 이성복, 송재학 선생님, 가깝게는 함성호, 강정, 조연호 선생님이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작업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식의 작업에 대해서 동경하고 지원하고 응원하는 한 사람이다 보니까 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런 지점에 배어든 게 있겠죠. 일상이냐, 추상이냐, 너무나도 이분적인 투박한 구도에 대한 어떤 합리적인 문제 제기가 되었던 선배님들을 본받으려는 것 같아요. 실제로 추상이라는 건 일상하고 멀다는 게 아니라 하나의 경향인 것이고, 일상과 멀다는 것 자체도 시 안에서 나쁜 경향이 아닌데 한국시에서 도외시했죠."

시인의 시쓰기

이이체 시인의 시집
 이이체 시인의 시집
ⓒ 문학과지성사

관련사진보기

- 삶은 어떤가요? 시 세계와 유사한가요?
"(웃음)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시를 씀으로써 제가 쓰려는 삶이 바뀌기도 하고 시를 씀으로 제가 담아내려는 삶이 시 안에서 달라지기도 하죠."

- 시 쓰기의 출발점은 어떤가요?
"메모를 자주 해놓습니다. 단상, 시상 노트를 시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하나로 엮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일필휘지로 나오기도 합니다. 숙고해서 오랫동안 퇴고한 시들을 발표하려고 합니다."

- 얼마나 퇴고하나요?
"토씨 하나 안 바뀌었어도 반년 동안 매일매일 강박적으로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달라지기도 하고, 왕왕 손으로 쓰기도 해요. 퇴고할 때 손으로 한 번 더 쓰는 작업은 실제적으로 시 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손으로 먼저 쓴 시라고 해도요."

- 어떤 도움이 있을까요?
"문법적인 숙고를 하게 되는 과정이죠. 조사 하나의 차이도 엄청나니까요. 김훈 선생님의 유명한 일화가 있잖아요? <칼의 노래>에서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주격조사 하나로 의미상의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에 한참 고민하셨다고 하잖아요."

- 시집에 '기형도' 제목의 시가 있던데요.
"기형도 시인의 이름을 따서 제목으로 삼은 시고요. 제가 읽은 첫 번째 시집이 기형도 시인의 시집이라서 생각한 것도 있지만 처음에는 기형화에 대해서 생각을 한 거죠. 기형의 그림. 말놀이도 아닌 수준의 생각으로 '기형도로 해도 되겠다' 했어요. 기형도와 어느 정도 제가 의도했던 것이 겹쳐진다는 판단이 들어서요. 각별히 기형도 시인을 염두에 두고 쓴 시는 아닙니다.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지요. 시가 대체로 그런 것 같아요.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 시에 대한 열린 해석, 시인의 생각은 어떤가요?
"자명한 것 같아요. 그중에서 '얼마나 미적인 해석이 있느냐' 혹은 '합리적이고 합당한 해석이 있느냐'는 별개의 것이죠. 개별마다 해석이 당연히 공존해야하는 것이 독서와 읽기의 세계인 것 같아요."

- 이 시집은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읽는 분 들이 자유롭게 읽었으면 좋겠어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 자체가 그런 것이긴 한데,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좋은 것을 대개 같은 것으로 놓으려는 어떤 감정적인 착각을 저지르는 것 같아요. 그런 것만 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겠습니까? 책 읽기라는 과정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 시집 한 권을 추천해주겠어요.
"저와는 세계가 다르지만 최근에 나왔던 백은선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가능세계>를 시 읽는 분들에게 추천을 드리고 싶어요. 시 읽기라는 것에 대하서 편견을 많이 갖는 분들은 편견을 깨기에도 좋은 시집이라고 생각해요.

유행, 전위에 대해서 작위적인 강박을 갖지 않아도 훌륭하게 전위를 유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유형들을 한 가지 또 발굴을 해낸 게 백은선 시인의 첫 시집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 자신도 재미있게 읽은 시집이지만 기법적으로도 훌륭한 시집이기 때문에 추천할만한 시집이라고 생각해요. 워낙 좋은 시집도 많지만 근작을 생각하자니 그분의 시집이 떠오르네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버린 사랑

이이체 지음, 문학과지성사(2016)


태그:#이이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