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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가 경제민주화를 위한 조세개혁안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조세제도는 좌파에게 여전히 자유와 평등 세상으로 가는 핵심 수단이자 경로인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이 창립기념 행사로 지난 5월 25일(수) 오후 2시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개최한 심포지엄 '조세개혁과 경제민주화'는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탐색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해외 초청 인사로 발제를 맡은 베르너 래츠 씨는 독일 금융과세시민연합(ATTAC, 아탁)의 창립 발기인이자 코디네이터이다.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아탁의 "모두에게 충분하다"(Genug für Alle) 캠페인의 핵심 활동가이기도 하다. 아탁은 기본소득, 조세개혁, 사회보장, 연금개혁, 세계화 비판 등의 활동을 하는 독일의 대표적인 좌파 시민단체이다.

신자유주의 자본 회로에서 탈출하기 위한 아탁의 조세개혁 제안

<자본순환으로부터 삶을 탈환하기>. 래츠 씨의 발제문 제목은 독일과 유럽 정치 지형에서 그의 정치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레츠 씨는 아탁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신자유주의 조류 속에서 사람들이 물질적인 공포 없이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는 사람들의 삶을 사회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조직하는 문제였고, 삶을 자본순환의 회로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탈출하고 탈환하는 문제"였다고 요약한다.

아탁의 3가지 조세개혁안, 즉 금융거래세, 콘체른 합산과세(Unitary Tax), 연대적 간편세는 독일과 유럽, 나아가 지구적 차원에서 사람들의 삶을 조세 개혁을 통해 신자유주의 회로에서 끌어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독일 금융과세시민연합(ATTAC)의 설립발기인이자 코디네이터인 베르너 래츠(Werner Ratz)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창립기념 심포지움 ‘조세개혁과 경제민주화’에서 ‘자본순환으로부터 삶을 탈환하기’라는 주제로 발제하였다.
 독일 금융과세시민연합(ATTAC)의 설립발기인이자 코디네이터인 베르너 래츠(Werner Ratz)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창립기념 심포지움 ‘조세개혁과 경제민주화’에서 ‘자본순환으로부터 삶을 탈환하기’라는 주제로 발제하였다.
ⓒ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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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거래세는 '토빈세'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외환만이 아니라 증권이나 채권 및 파생상품거래도 포괄"하여 금융자산 거래마다 0.05∽0.5%의 세율을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다. 레츠 씨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세율의 편차는 거래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세율을 탄력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물품거래, 중앙은행 공개시장개입, 임금 지불 등이 금융거래세의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금융거래세는 궁극적으로 투기적·단기적 금융거래 대신 생산적·장기적 투자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아탁 금융거래세에서 특별한 점은 세수의 용처이다. 레츠 씨는 "금융거래세는 금융중심국가의 세수가 될 것이지만 금융자본의 피해는 전 지구적인만큼 일정 부분을 펀드로 적립해 지구적 기아 퇴치나 온난화 방지 등에 쓴다"고 설명했다.

콘체른 합산과세는 특별히 조세도피처를 이용한 탈세 방지를 겨냥하고 있다. 이 제도는 콘체른의 모든 자회사, 지부를 종합하여 하나의 과표 단위로 파악하고, 모든 자회사와 지부가 각각 속해 있는 국가에 기업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콘체른 단위로 전체 세원을 파악한 뒤 세원을 어떤 국가에 귀속시킬 것인가를 정한다. 귀속된 세원에 대해 각국이 자기 나라의 세율로 과세하는 것으로 과세 절차는 완료된다.

레츠 씨는 "콘체른의 기업 활동 전체를 하나의 과표 단위로 보는 과세 방식은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일국 범위에서 이미 시행 중"임을 강조한다. 의지만 있다면 지구적 차원의 과세 방식으로 정착시키는 데 기술적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콘체른 합산과세는 조세도피처를 이용한 탈세와 자금세탁, 차명 투자 등을 막는 데 유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연대적 간편세는 독일 조세제도에 대한 아탁의 개혁안으로, 분리과세를 일체 없애고 모든 소득을 합산한 후에 누진적으로 종합과세하여 조세의 누수를 막자는 제안이다. 연대적 간편세는 세 가지 기본원칙을 갖는다. 첫째, 세금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차등 부과되어야 한다. 따라서 소득뿐만 아니라 자산도 부담률에 반영되어야 하고, 일정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는 누진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둘째, 모든 소득이 동일한 원칙에 따라 과세되어야 한다. 독일의 과세제도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근로소득, 자영업소득, 자본소득, 임대소득 등을 다른 방식으로 과세하고 있다. 소득 내용별로 다른 방식의 과세를 없애자는 것이다. 셋째, 감면제도를 없애고 총소득에 대해 하나의 세율로 과세한다.

아탁의 조세개혁안은 물론 독일 정치권과 유럽 각국에 의해 수용되지 않았다. 레츠 씨는 "정치적 대안이 없다는 그 문제에서 아탁은 우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아탁은 조세개혁안의 제도화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투쟁'에서 성공적이었다. 2012년 프랑크푸르트 소재 유럽중앙은행 앞에서 열린 '블로큐파이'(Blockupy)가 대표적이다. 블로큐파이는 2011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뉴욕의 '오큐파이'(occupy)와, 2007년 아탁이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을 저지했던 공동행동을 뜻하는 '블록 G8'의 합성어로서 공공공간의 점거, 행진시위, 토론회가 결합된 형태를 일컫는다. '블로큐파이'는 독일 여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처음 언론의 관심은 경찰의 과잉진압과 민주주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매년 개최된 이러한 항의시위는 2015년에야 비로소 반긴축 항의시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금융자산에 부유세를 부과해야"

유종일 KDI 정책대학원 교수의 발제문 '경제민주화와 조세개혁'의 출발점은 경제민주화이다. 유 교수는 경제민주화를 '기회의 평등'으로 보고, '기회의 평등'은 "형식적인 권리가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조건"이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보편적 접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나친 불평등은 기회의 평등을 훼손"하며 재벌체제는 "이러한 문제를 낳는 주요한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경제민주화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개혁이 필요하며, 복지국가 프로그램의 확충을 위해서는 조세부담률을 높이고 사회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유 교수는 "돈이 없이 복지를 못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고 이것은 단지 분배의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이 연금제도, 사회보장제도 도입한 시점은 경제적 호황기가 아니라 미국 경제가 바닥을 기고 빈곤이 만연한 시기"였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소득세와 상속세의 최고한계세율을 올리고, 각종 비과세감면 조항을 개혁해야 한다"면서 "법인세도 이런 원칙에 따라 개편해야 하며, 나아가 부유세 도입, 해외 조세피난처에 숨긴 자산들의 철저한 조사, 상속증여세 강화, 일감몰아주기 과세의 실효성 제고 등의 조치가 요구된다"고 구체적인 조세개혁 방향을 설명했다.

유 교수가 특별히 강조한 부분은 금융자산에 대한 일종의 부유세이다. 부동산에 대해서는 종합부동산세가 있고 한국에서 중산층 이상 정도가 부담하는데 금융자산에 대해서는 보유세가 없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진짜 부자들은 금융자산가들"이라며 "토마 피케티가 얘기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자산을 물려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격차가 심각한 문제라서 부유세 도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지난 총선에서 노동당이 일정 규모 이상의 주식과 채권 등 금융자산에 대한 보유세를 도입해 기본소득과 금융사회화의 재원으로 쓰자는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경제민주화와 조세정의를 위한 3단계 조세개혁 방안

인하대 경제학과 강병구 교수의 발표문 「복지국가와 조세개혁」은 한국의 경제, 노동, 복지 현황과 한국 조세체계의 특징을 구체적인 수치로 살펴보고 '경제민주화와 조세정의'를 위한 개혁과제를 도출한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은 경제성장률의 등락과 무관하게 취업계수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으며, 1998년 이후 노동소득분배율은 경제성장률과 괴리를 보이면서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한국은 소득불평등과 자산불평등이 심화되었고, 복지지출도 적고 조세부담도 적은 저부담 저복지 유형이며 복지급여의 관대성도 낮고 사회지출도 적다. 한편, 낮은 개인소득세수, 낮은 소득세 최고세율, 큰 비중의 비과세자와 탈세, 낮은 노동소득분배율 때문에 명목상 법인세수는 높지만 세율은 낮은 점 등이 한국 조세체계의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2013년 기준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이 OECD의 끝에서 세 번째로 낮고 평균에 훨씬 못 미치며, 재분배 기능도 취약하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창립기념 심포지움 ‘조세개혁과 경제민주화’에서 발제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베르너 래츠 아탁(ATTAC) 코디네이터, 유종일 KDI 국책대학원 교수, 금민 「대안」 소장(사회), 강병구 인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창립기념 심포지움 ‘조세개혁과 경제민주화’에서 발제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베르너 래츠 아탁(ATTAC) 코디네이터, 유종일 KDI 국책대학원 교수, 금민 「대안」 소장(사회), 강병구 인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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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여기에 더해 세원을 확충하지 않으면서 세율을 낮추어 2008∼2012년 사이 63.8조 원의 세수 감소로 재정건전성을 악화시켰으며,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로 재정건전성을 더욱 악화시켰다. 자본소득과 재벌 대기업에 대해 소극적으로 과세하면서도 '거위털을 뽑는 은밀한 방식'으로 증세하여 증세 환경을 악화시켰다.

강 교수는 '경제민주화와 조세정의'를 위한 3단계의 개혁과제를 제안했다. 1단계에서는 개인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을 인상하고 대기업 조세감면을 축소한 후 차츰 중산층과 중소기업에 대한 감면을 축소한다. 2단계에서 사회보장기여금 고용주 부담 비중을 올리고 사회보장사각지대를 축소한다.

마지막으로 3단계에서는 소비세 면세 및 비과세 항목을 축소한다. 소득세 개혁부터 출발하여 사회보장기여금의 확대를 거친 후에 소비세를 확대하자는 제안인 셈이다. 변칙상속과 역외 탈세방지, 부동산 및 금융 순자산에 대한 부유세 도입과 사회복지세 도입도 개혁과제로 꼽는다. 이와 같은 개혁과제는 "시장에서의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시정하고 사회적 관점에서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과세방식"인 "조세정의"를 위해 필수적이며, 조세정의가 확립되어야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의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조세도피처와의 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의 발표문 <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 2016-뉴스타파·ICIJ 공동프로젝트>는 뉴스타파가 2013년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으로 진행한 '역외 탈세 프로젝트'의 결과에 대해 설명한다.

뉴스타파는 이로부터 3년이 지난 올해 5월 4일 파나마의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의 자료가 유출된 후 한국인 170여 명의 데이터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신원 확인 작업에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작했다.(http://newstapa.org/tax-haven -2016-open-data 참조) 2013년 프로젝트에서 뉴스타파가 밝혀낸 것은 유력자들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 등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이 과정에서 대형투자은행과 로펌 등이 중개자가 되어 협력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파나마 자료는 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가 조세도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2013년 프로젝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씨도 페이퍼 컴퍼니와 해외비밀계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역외탈세에 대한 국세청의 대응은 소극적이며, 2013년 뉴스타파의 보도 이후 182명의 관련자 중 조사받은 사람은 48명, 형사 고소된 경우는 고작 3명에 불과하다. 2013년 이후 발의된 역외탈세방지법안도 대부분 무산되었다.

김 대표는 "보통 사람들은 조세도피처에 회사를 만들면 그 조세도피처로 돈을 옮겨가는 것으로 오해"한다 면서 "그게 아니라 법인 명의로, 주로 스위스은행 계좌를 개설하는데, 법인 명의의 해외비밀계좌를 이용해 기업은 비자금 조성을 위한 가짜 거래, 개인은 상속재산 은닉 등의 탈세와 불법거래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수년 간의 조세도피처 취재 과정에서 김 대표가 내린 결론은 "조세도피처와의 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다.

독일 아탁의 조세개혁안과 한국의 진보적 시민사회 인사들의 조세개혁안은 특정 조세개혁안이 다루는 과세의 범위와 과세 방식에서 공통점만큼이나 많은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조류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토대를 지키기 위해서는 조세를 통한 재분배 기능과 사회적 정의의 실현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상호 확인하는 자리였다. 경제민주주의는 조세제도의 개혁을 우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날 심포지엄은 또한 인간의 삶을 자본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사회적 전환을 모색하는 좌파에게 조세제도는 포기할 수 없는 전환의 수단이며 경로라는 점을 재환기하는 자리였다.

심포지엄 사회는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소장이자 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 금민이 맡았다. 한편, 정치경제연구소'대안'은 오는 6월 3일 오후 2시부터 카톨릭청년회관 '다리' 바실리오홀에서 <조세개혁과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로 제2차 심포지엄을 열고 창립기념 대토론회를 이어나간다. 2차 심포지엄에서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대학의 다니엘 라벤토스(Daniel Raventos) 교수가 초청인사로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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