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6일 오후 7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관련한 여성단체와 전문가의 긴급 집담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가 주최한 이 집담회는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라는 부제목을 달고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실태와 대응책에 대해 짚었다.
 26일 오후 7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관련한 여성단체와 전문가의 긴급 집담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가 주최한 이 집담회는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라는 부제목을 달고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실태와 대응책에 대해 짚었다.
ⓒ 유지영

관련사진보기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가락동 살인 사건'으로 딸을 잃은 엄마입니다. 딸에게 해줄 게 없어 이곳에 왔습니다. 범인은 '우발적'이라고 했지만 칼과 로프, 심지어 염산까지 준비해 가냘픈 딸의 몸을 여러 번 찌르고 갔습니다. 해줄 수 있는 게 탄원서밖에 없어서 이 자리에 서명을 받으러 나왔습니다. 제가 딸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없습니다. 동참하다 보면 딸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 왔습니다."

지난 4월 딸은 '이별을 고했다'는 이유로 죽었다. 억울하게 죽은 딸이 떳떳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엄마는 탄원서를 들고 같은 아픔을 말하는 집담회를 찾았다.

우연히 '살아남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26일 오후 7시, 서울시청 활짝라운지에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과 관련 긴급 집담회가 열렸다.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라는 주제로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가 주최한 이 행사에선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실태와 대응책을 짚었다.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집담회는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 최지은 <아이즈> 선임기자가 패널로 참여했다. 400여 명의 시민도 함께 했다. 주최 측이 예상한 150여 명의 배가 넘는 인원이다. 행사는 2시간 30여 분 동안 진행됐다.

패널마다 15분씩 주어진 발표에선 우리 사회 '여성혐오'의 보편성과 특수성, 혐오표현과 증오범죄, 여성운동 현장에서 본 여성폭력·살해 실태와 운동 등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 "함께 논의해보고 싶은 쟁점들"이라고 소개한 질문을 기반으로 집담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리했다.

26일 오후 7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관련한 여성단체와 전문가의 긴급 집담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가 주최한 이 집담회는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라는 부제목을 달고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실태와 대응책에 대해 짚었다.
 26일 오후 7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관련한 여성단체와 전문가의 긴급 집담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가 주최한 이 집담회는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라는 부제목을 달고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실태와 대응책에 대해 짚었다.
ⓒ 유지영

관련사진보기


① 이 사건은 정신질환자의 단순 묻지마 살인인가 
-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 혐오, 폭력이 문제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초기, 논란이 됐던 건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할 수 있느냐였다. 가해자가 범행 동기를 밝히며 "여성들이 나를 무시했다"고 말했고, 여성을 기다려 살해했다는 점을 들어 여성혐오 범죄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반면 '묻지마 살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경찰 또한 지난 22일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날 모인 전문가들은 '여성혐오 범죄로 보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나영 교수는 "이번 사건은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을 일상 속에서 무시해 온, 무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의 무의식적 리액션"이라며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 혹은 증오범죄'(hate crime)'이자 '여성살해 범죄'(femicide)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여성들에게 이 사건은 남성중심사회 속에 오랫동안 존재해 온, 일상의 편견, 무시, 비하, 멸시, 조롱, 대상화, 괴롭힘, 혐오발언, 제도적 차별, 폭력, 강간, 살해라는 젠더폭력의 징후적 표출"고 설명했다.

홍성수 교수는 "증오범죄(혐오범죄)의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혐오표현은 특정한 집단 전체를 향하는데, '김치녀'로 대표되는 한국의 여성혐오는 '집단으로서의 여성' 문제를 애써 피해 나가는 경향이 있다"며 "양적 다수성과 내부 이질성 때문에 여성을 '집단 정체성'을 가진 소수자 집단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강남역 사건 이후의 징후는 일반적인 증오범죄, 즉, 집단적 정체성이 공고한 소수자 집단에 대한 증오범죄의 파급효과와 유사하다"며 "많은 여성이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힌) 추모 메시지에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여성이 '사회적 소수자'로서 집단적 정체성이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증오 범죄 여부를 판단할 때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 초기 이런 것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과 일부 전문가들이 '혐오범죄 아니다'라고 단언한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범죄에 대한 기준이 부재하고, 범죄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성급했다는 설명이다.

홍 교수는 "범죄학적, 형사법적 관점에서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사회적 의미에서 여성 혐오라는 맥락을 따로 떼어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범죄"라며 "여성 혐오의 맥락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선을 그어야 한다"고 정리했다.

② 여성 대 남성, 동등한 구도가 존재하는가
- 끝없이 타자화되며 생존에 대한 불안을 느껴야 하는 여성들

강남역에 피해 여성을 위한 추모 장소가 마련되자,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애도를 표했다. 추모제에선 범죄의 불안을 느끼는 여성들의 증언도 터져 나왔다. 이번 사건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 불안, 두려움은 지나친 것일까.

송란희 사무처장은 "과거 오원춘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할 당시 '우리는 생존 외에 다른 꿈을 살 수 있는 세상 원한다'는 구호를 내걸었는데, 이건 현재도 유효하다"며 "여성 폭력은 우리 사회 만연"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세계 145개국 중 우리나라 성평등 지위가 115위라는 것은 단순히 여성이 남성에 비해 임금을 덜 받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폭력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미경 소장은 "2004년에도 이 사건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며 20여 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유영철 사건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유영철도 방송에서 '여자들이 몸을 함부로 굴려서 그랬다'고 말했다"며 "유영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문제지만, 유영철의 입을 빌려 사회가 여성들에게 '밤길 조심해, 정조가 있는 여자만 보호할 거야'라고 말한 것이 더 문제"라고 짚었다.

최지은 기자는 "이번 추모 집회 현장에서 언론중재위원회에 성평등 관련 시정권고 심의기준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았다"며 "'대장내시경녀', '트렁크녀' 등 가해 남성보다 피해 여성을 부각시키면서 언론이 확산시켜온 'OO녀' 프레임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는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가로수 버팀목 폭행 사건의 경우에도 굉장히 많은 언론이 '또 여성을 상대로 묻지마 폭행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며 "(여성) 선별적 폭행이라는 게 '또'라는 표현으로 드러나는데 왜 '묻지마'라는 말을 쓰는가, '묻지마'라는 표현은 도대체 무엇을 지우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여성혐오 풍토와 범죄에 대해 언론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③ 공용화장실 없애고, 정신질환자 가두면 문제가 해결되나 
- 차별, 혐오를 규제하는 법 등 근본 대책 마련하고 사회구조 바꿔야

6월부터 8월까지 세 달간 여성범죄특별대응 치안 활동, 신변 위협이 있는 여성에게 스마트워치 제공, 타인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정신질환자를 발견할 경우 행정입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매뉴얼 마련. 지금까지 경찰이 내놓은 대책들이다. 이날 집담회에선 이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이나영 교수는 "경찰은 이 사건을 조현병 환자의 비의지적 행위, 특별한 종자의 개별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며 "3개월간 여성범죄대응 특별 치안활동을 한다거나,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것, 정신질환자를 관리대상에 넣는다는 것은 '안전 프레임'에 기반한 제한적 대책"이라고 평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대책이 "'보호의 대상-여성, 보호하는 국가'라는 정형화된 젠더 역할과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며 "질병을 가진 사람들을 감금, 관리하며 차별적 구조에 대한 질문을 봉쇄하고, 위장된 평화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러한 대책은 한마디로 "성차별 사회의 분열증적 칼춤"이라고 표현했다.

송란희 사무처장은 "여성 살해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통계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여성이 얼마나 죽어가는지 알고 싶어 국정감사 때 법무부에 질의했지만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2009년부터 언론에 보도된 여성 살해를 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송 사무처장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7년간,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던 자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657명이며 미수를 포함하면 1051명이다, 최소 2.4일에 여성 한 명이 살해됐거나 살인미수 사건을 경험한 셈"이라며 "이 여자들이 왜 정말 죽게 됐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건 정말 묻지마 살해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수많은 포스트잇 중에 CCTV를 확충해 달라거나 화장실을 바꿔달라는 말은 본 적 없다, 그런데 정부는 그런 하드웨어 바꾸는 것을 개선책이라 이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들이 말하는 것은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건 개인적인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걸 심각하게 자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래 걸리더라도 1차원적 대책이 아닌 성평등 정책이나 여성폭력근절기본법 등의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성수 교수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혐오범죄법'(증오범죄법) 도입에 대해서는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국가가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지 보여줄 수 있"지만 "환상을 가지는 건 곤란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증오범죄를 처벌한다는 명목으로 감시국가가 되어 도·감청, 수색을 벌이는 등 시민의 자유를 전반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다"며 "증오범죄법의 제정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범죄예방 효과가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 정도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굳이 법적인 대응으로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이 훨씬 중요하다"며 "모든 것에 근간을 이루는 차별금지법은 인권과 민주주의 이루는 나라의 당연한 상식이다, 여성혐오에 근거한 폭력 범죄 근간을 규제하는 것이기에 가장 필요하고 우선으로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정리했다.

26일 오후 7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관련한 여성단체와 전문가의 긴급 집담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가 주최한 이 집담회는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라는 부제목을 달고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실태와 대응책에 대해 짚었다.
 26일 오후 7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관련한 여성단체와 전문가의 긴급 집담회가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가 주최한 이 집담회는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라는 부제목을 달고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실태와 대응책에 대해 짚었다.
ⓒ 유지영

관련사진보기


④ 여성들은 '연약한 피해자', 그뿐인가
- 은폐된 부당함에 목소리 내며 연대하는 여성들, 새로운 흐름이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이 공론화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여성단체도, 언론도 아니었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 뒤인 18일,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강남역 10번 출구에 피해자를 애도하는 메모와 국화꽃을 남기자"는 게시글이 돌았다. 해당 사건을 공론화하기 위한 계정도 여럿 등장했다. 온라인에서 여론이 모이고, 오프라인에서 행동이 나타난 셈. 이전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흐름이다.

이나영 교수는 새로운 여성주의 흐름에 대해 "오랜 여성운동의 성과로 가꾸어진 토양도 있지만, 가족주의의 역설이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젊은 여성들은 과거에 비해 가정 내의 성 불평등이 덜하다, 대학에 진학하여 처음 불평등과 마주하게 된다"며 "이러한 차별의 체감을 '메갈리아' 등 온라인 공간에서 분출하고 지지와 연대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인지하지 못한 부당함의 영역을 확장하고, 이에 제동을 거는 능력을 키워 오프라인에 나와 맞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미경 소장은 "강남역 추모의 벽에서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을 때는 여자로 사는 것이 두렵고 겁이 났다. 하지만 이곳에서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가져보고 싶다.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더는 약자이지 않도록 저도 설치고 떠들겠다, 여자라서 자랑스럽다'는 글귀를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며 20년 전 성폭행을 당해 자살한 여성의 소식을 전하며 정조 관념을 들먹인 보도 사례를 설명했다.

이 소장은 "이 20년 전 사건과 비교하면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기존 여성단체 중심의 운동에서 개인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바로 참여를 이끌어내고 실천하는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도 자신의 피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용기를 내고 힘을 가졌다"며 "그 반작용으로 여성 혐오에 대해 엄청난 목소리가 표출되고,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추모자들에 대한 비난과 위협에 강력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태그:#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강남역, #살인, #여성혐오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