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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된 일인지 점심시간 급식실이 한산하다. 어제만 해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100m 달리기하듯 뛰어오는 아이들로 급식실 입구가 위험할 정도로 북적였다. 그런데 오늘은 배식구 앞의 줄도 그다지 길지 않고 호시탐탐 새치기를 노리던 아이들도 없다. 다들 심드렁한 얼굴이다. 밥을 먹고 돌아서면 곧장 배가 고플 아이들인데 말이다.

"생선과 나물이 나오는 날은 원래 그래요."

영양사는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듯 외려 넘쳐날 잔반 걱정만 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식단에 생선을 넣지만, 아무리 맛깔스럽게 요리를 해도 고스란히 잔반통에 버려지기 일쑤란다. 족히 손이 수십 번은 가야 할 정도로 요리하기 까다로운 나물 요리가 젓가락을 댄 흔적조차 없이 버려질 때는 속이 너무 상해 자식 같은 아이들이라지만 크게 혼을 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단다.

아무리 '고기반찬'스럽게 조리를 한다지만...

전날 그렇게 북적이던 급식소가 한산해진 이유는 단 하나, 불고기냐 삼치냐 차이였다.
▲ 비교 체험, 극과 극 전날 그렇게 북적이던 급식소가 한산해진 이유는 단 하나, 불고기냐 삼치냐 차이였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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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함께 급식지도를 하던 동료 교사가 몇몇 아이들의 뒷덜미를 잡은 채 급식실로 들어왔다. 스캐너에 학생증을 읽힌 후 교사의 눈을 피해 급식실 밖으로 줄행랑을 치던 아이들을 기어이 따라가 붙잡아온 것이다. 급식실에서는 매일 학급별 급식 통계를 내서 각 학급에 통보를 하는데, 담임교사는 누가 점심을 걸렀는지 파악해 따로 생활지도를 하고 있다.

걸리지만 않았다면 그 아이들이 모두 통계에는 오늘 점심을 먹은 걸로 잡혔을 텐데... 아이들 얼굴마다 근심이 가득했다. 호랑이 같은 담임교사에게 혼날 일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한 것이다. 그들은 매점에 가던 길이었다며 순순히 자백했다. 메뉴가 '변변찮은' 날이면 매점은 아이들에게, 그들의 천진난만한 표현을 빌자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다.

언제부턴가 급식지도 업무가 아이들을 '줄 세우고 감시하고 단속하는' 일이 돼버렸다. 새치기를 막고, 퇴식구의 잔반통 앞에 서서 누가 잔반을 남기는지 감시하며, 오늘처럼 '맛없는' 급식을 피해 도망치는 아이들을 단속하는 게 주된 업무가 됐다. 본디 급식지도는 '밥상머리 교육'이라 하여 아이들의 식습관을 바로잡는다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었다.

식판을 강제로 받아든 아이들의 표정은 떨떠름하다 못해 일그러져 있었다. 태도로 봐서는 기꺼이 한 끼 굶을지언정 생선은 죽어도 못 먹겠다는 얼굴이었다. 숫제 입속의 음식을 뱉어낼 기세였다. 그토록 생선을 싫어하는 이유를 그들에게 물었다. 말 꺼내기가 무섭게 한 아이는 넉살 좋게 대답했다. 곁에 서있던 다른 아이들도 서로 키득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일단 맛이 없잖아요. 전 태어날 때부터 생선을 싫어했던 것 같아요. 음식 중에 제일 싫은 게 생선이고, 그다음이 쓴맛 나는 나물이에요."

메뉴에 적힌 이름만으로도 아이들은 기겁하지만, 사실 식단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들을 '배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단백질과 칼슘 등 성장기 중요 영양소에 대한 일일권장량을 꼼꼼하게 챙기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의 입맛에 맞도록 최대한 '고기반찬스럽게' 요리하는 것이 언뜻 처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적어도 급식실에서 아이들의 입맛은 '절대선'이기 때문이다.

생선은 무조건 굽거나 튀기는데, 그나마 달달한 소스를 그 위에 뿌려놓지 않으면 그조차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콩도 고기로 '변장시켜' 요리해 내놓는데, 모양이나 식감도 영락없는 고기라, 이름하여 '콩고기'라 부른다. 국물도 등뼈감자탕이나 육개장, 짬뽕이라면 모를까, 두부 된장국이나 콩나물국처럼 밋밋한 거라면 잠시 숟가락을 담그게 될 뿐 그대로 버려진단다.

남아있는 식판 수로 미루어, 위험을 무릅쓰고 오늘 점심 급식을 거부한 아이들이 족히 50명은 돼 보인다. 그나마 급식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예상대로 잔반통 두 개가 가득 찼다. 잔반통 안에는 두부 된장국에 둥둥 뜬 삼치들이 가득 차 있는데, 차라리 배식을 받지나 말지, 그야말로 젓가락 자국 하나 남아있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왜 다 먹어야 하나요?"라며 반문하는 아이들

고등학생 체험에 나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014년 10월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신고등학교를 찾아 학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
▲ 조희연 교육감 "매일 먹는 학교 급식 마음에 들어?" 고등학생 체험에 나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014년 10월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신고등학교를 찾아 학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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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오늘 점심 메뉴가 많은 아이들로부터 '버림받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뿌리채소 영양밥에 김치와 두부 된장국, 과일 샐러드와 미역무침, 거기에 삼치구이까지, 이 정도면 웬만한 가정에서는 차릴 수 없는 영양 만점 최고의 식사 아닌가. 그런데도 대부분 아이들은 "먹을 거라곤 그나마 과일 샐러드 정도"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심지어 뿌리채소 영양밥을 보더니 "왜 밥에다 잡초 같은 걸 넣었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는 여태껏 김치와 단무지 외에는 그 어떤 채소 반찬을 먹어본 적이 없다면서, 분식집에서 김밥을 주문할 때도 채소가 들어간 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손꼽은 최고의 메뉴는 마요네즈 위에 치킨을 얹은 '치킨 마요'와 불고기 함박스테이크였다. 1년 내내 그 두 가지만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급식실 벽에 게시되어 있는 월 식단표를 보니, '채식의 날'로 지정 운영되는 금요일을 제외하면 고기반찬이 빠진 날을 찾기가 힘들었다. 생선도 고기로 포함시킨다면 1년 365일 고기반찬이 아이들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어떤 날은 닭강정과 육개장이 함께 올라오고, 김치를 제외한 반찬 모두가 고기인 경우도 있다.

식단에 고기반찬이 지나치게 많고 나물 등 채소가 부족하다는 건 영양사도 인정한다. 고기 대신 생선이나 조개를 올리면 대부분 버려지기 일쑤니 아이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자면 어쩔 수 없다는 거다. 나물은 거의 생각조차 못하고, 비타민과 무기질은 차라리 요거트나 푸딩 등 후식을 통해 제공하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십수 년 동안 길들여진 고등학생 아이들의 입맛을 학교 급식을 통해 고치려 드는 건 욕심이라고 봐요. 어릴 적 가정에서부터 부모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패스트푸드와 외식으로 매 끼니를 때우게 해놓고선, 익숙하지 않은 나물과 비린 데다 뼈까지 발라야 하는 생선을 주니 아이들이 먹겠어요? 적어도 아이들의 잘못된 식습관은 학교가 아닌 가정의 책임이에요."

영양사는 그저 잔반이라도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게 현실적인 급식 지도라고 말했다. 또, 이는 아이들만의 문제도 아니란다. 교사들도 '채식의 날'인 금요일을 마뜩잖게 여겨, 급식하지 않고 부러 밖에 나가 점심을 해결하고 오는 경우가 알게 모르게 많다고 귀띔해주었다. 특히 30대 이하 젊은 교사들의 입맛은 아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마다 급식 관련 설문조사를 할 때마다 '채식의 날'을 없애 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영양사에게 부러 찾아와 대놓고 건의하는 당돌한 아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때마다 '채식의 날'이 아니라 공식 명칭이 '건강의 날'이라며 눙치지만, 몇몇 학부모들까지 가세할 때는 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쯤 되면 아이들이 고기반찬 없이 밥을 먹는 건, 어른들 담배 끊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집에서도 안 먹는 걸 왜 학교에서 강제로 먹으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먹고 싶은 것만 먹게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 먹어본 적도 없고 맛도 없는 음식을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는 건 '학교폭력' 아닌가요?"

뿌리채소 영양밥을 한 숟갈 뜨다 말고 그대로 잔반통에 버리려는 아이가 있어 따끔하게 나무랐더니 그는 되레 이렇게 대꾸했다. 장난 섞인 말이었을지언정 급식 지도에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를 연결시키는 아이 앞에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이들의 잘못된 식습관을 바로잡는 것, 그것은 더 이상 우리나라 교육에 있어 사소하거나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매점을 향해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은 신이 나 보였다.


태그:#급식 지도, #밥상머리 교육, #채식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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