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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길을 자세히 보면 우리네 역사를 볼 수 있다.
▲ 한양도성길 한양도성길을 자세히 보면 우리네 역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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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대입구에서 심우장쪽으로 가다보면 만해 한용운과 그의 시를 만나게된다.
▲ 만해 한용운 한성대입구에서 심우장쪽으로 가다보면 만해 한용운과 그의 시를 만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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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니 벌써 짧은 옷을 꺼내 입어야 하는 여름이 되어버렸다. 작은 여유마저도 사치인 것처럼 살아온 한참의 시간들을 뒤돌아보니 오늘 당장이라도 세월의 끝을 붙잡고 여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와 빌딩들이 가득한 서울에서 과연 세월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언제가 들어봤던 '한양도성'길이 생각이 난다. 혹시 그곳에 가면 지나가 버린 세월의 흔적들을 찾고 잠깐이나마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성대입구역'을 나와 '성북초등학교'로 방향을 잡고 올라가다 보면 좌측으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한양성곽'의 흔적을 보게 된다. 조금 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만해 한용운'의 좌상과 만난다. 시 '님의 침묵'이 새겨있는 석판과 함께 앉아 있는 '만해 한용운'의 모습은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고 독립을 염원하던 그의 결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뒤편으로 올라가면 '만해 한용운'의 마지막 거처였던 '심우장'을 방문할 수 있다. 그리고 이곳과 함께 역사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성북동의 숨은 모습을 만나게 된다.

화려한 빌딩 숲이 상징인 서울, 하지만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성북동은 우리네 마음을 차분하게 감싸준다.
▲ 성북동 화려한 빌딩 숲이 상징인 서울, 하지만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성북동은 우리네 마음을 차분하게 감싸준다.
ⓒ 손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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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1949년 오늘의 이름을 얻게된 성북동은 그 어느 때 보다 큰 변화를 걷게 된다. 북한산의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지식인과 예술인들의 마을이 생겨났고, 또 다른 골짜기에는 한국전쟁을 피해 내려온 '함경도 함청'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한다. 이렇게 생겨난 마을은 수많은 피란민들이 움집을 짓고 살게 된다.

전쟁 후에는 지방에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 마저 모이게 된다. 이렇게 우리네 성장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성북동이다. 새로 들어선 건물들이 과거 풍광을 바꿔버린 듯하지만 조금 더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태준이 이야기한 시골과 같던 모습도, 집집마다 감나무들이 서 있던 모습도, 길가에 흔하디 흔한 달맞이 꽃과 백합꽃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된다.

성북동을 통해 한양도성을 오르면 묘한 콜라보를 보여준다.
▲ 성북동과 한양도성 성북동을 통해 한양도성을 오르면 묘한 콜라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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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기억들을 간직한 '성북동'의 골목골목을 다니다 보면 언덕 뒤편으로 웅장하게 서있는 '한양도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성북동 마을카페'에서부터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면 드디어 '한양도성'을 눈앞에 목도하게 된다. 600년이 지나는 긴 시간 동안 수도를 지키기 위한 역할을 다해온 곳,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슬픔과 한국전쟁의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지켜온 한양도성은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한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한양도성의 돌들을 보면 다양한 크기인 것을 볼 수 있다.
축조 시기에 따른 기술의 발전을 엿볼 수 있다.
▲ 한양도성 한양도성의 돌들을 보면 다양한 크기인 것을 볼 수 있다. 축조 시기에 따른 기술의 발전을 엿볼 수 있다.
ⓒ 손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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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은 조선이 건국되는 태조 이성계의 시대부터 시작되어 세종과 숙종시대로 나누어져서 도성건축이 이루어지게 된다. 태조시대에는 각 도에서 12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도성을 쌓았다. 이때 공사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해 공사구간과 공사자들의 이름을 돌에 새기게 하였고 아직도 '곤자육백척' '강자육백척'등의 글들이 새겨진 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도성이 처음 쌓아지고 20년이 지나자 성곽이 군데군데 허물어지게 된다. 이런 이유에 세종 3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고, 조선 중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한양도성의 취약점들을 인식한 숙종 때 도성 보수공사와 함께 북한산성을 추가로 쌓게 된다. 이렇게 시기에 따라 다르게 건축과 보수가 이루어진 도성은 각각 다른 모양의 돌들을 보면서 성곽의 역사를 다시 한번 유추해 볼 수 있게 된다.

태조 5년에는 모양이 다소 들쑥날쑥 하지만 메주만한 자연석을 이용해서 쌓았다, 세종 4년에는 직사각형의 돌들을 기본으로 하여서 쌓는 작업이 이루어졌고, 숙종 30년에는 2x2자의 돌을 정사각형에 가깝게 다듬어서 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석공기술의 발달이 어떻게 건축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어 이곳 한양도성을 바라보며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다.

성북동을 지나며 만난 한양도성은 말바위를 지나는 가벼운 산책길 코스로 지친 도시인을 안내한다. 신분증이 있다면 성곽을 따라서 계속해서 '성곽종주'를 해도 좋을 것이고, 신분증이 없더라도 가볍게 '북악 팔각정' 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가 북악 팔각정에서 잠시 쉬고, 백사실 계곡과 세검정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반나절 정도 도심을 벗어난 짧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성북동과 한양도성을 걷고나면 한성대입구 쪽은 많은 식당들이 즐비하다. 목이나 축이고 가자
▲ 성북동 저녁길 성북동과 한양도성을 걷고나면 한성대입구 쪽은 많은 식당들이 즐비하다. 목이나 축이고 가자
ⓒ 손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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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양도성, #부암동, #만해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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