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 다시 더그 아웃으로 24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6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2회 말 1사 2, 3루 때 한화 투수 로저스가 넥센 박동원의 투수 앞 땅볼 때 3루에서 홈으로 향하던 넥센 대니돈을 공이 들어 있지 않은 왼손 글러브로 태그한 뒤 김성근 감독이 항의하다가 더그 아웃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 김성근 감독, 다시 더그 아웃으로 24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6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2회 말 1사 2, 3루 때 한화 투수 로저스가 넥센 박동원의 투수 앞 땅볼 때 3루에서 홈으로 향하던 넥센 대니돈을 공이 들어 있지 않은 왼손 글러브로 태그한 뒤 김성근 감독이 항의하다가 더그 아웃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 연합뉴스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유행한다. 말 그대로 지옥같이 살기 힘든 대한민국이란 의미를 비꼰 것이다. 본래는 온라인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퍼진 신조어지만 최근에는 언론에서도 심심찮게 언급될 정도로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다. 어쩌다 이런 자조적인 표현까지 등장했는가 하는 안타까움을 넘어, 그만큼 꿈과 희망마저 박탈하는 현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하여 많은 대중이 문제 인식과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의미인 셈이다.

스포츠도 곧 사회의 또 다른 축소판이라고 했을 때, 대한민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헬조선이 보여준다면, 야구에는 '헬한화'가 있다. 암울한 현재의 한화 이글스를 상징하는 헬한화는 알고 보면 헬조선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모순과 원리를 야구라는 세계 속에 압축해놓은 듯한 데자뷔다. 단기적인 고속성장과 성과지상주의의 판타지 속에 구성원들의 소모적인 무한 희생만을 강요하면서, 정작 조직 자체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부적으로 곪아간다. 헬한화를 보면 바로 헬조선이 보인다.

마리한화는 회광반조였나

한화, 시즌 서른 번째 패배 지난 24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6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가 2-1 넥센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를 마친 한화 선수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더그 아웃으로 들어오고 있다.

▲ 한화, 시즌 서른 번째 패배 지난 24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6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가 2-1 넥센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를 마친 한화 선수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더그 아웃으로 들어오고 있다. ⓒ 연합뉴스


43경기를 치른 현재 11승 1무 31패 승률 2할 6푼 2리. 지금 프로야구에서 2할대 승률 팀은 한화뿐이며 불과 한 계단 위인 9위 kt와도 무려 7게임 차이다. 이는 2위 NC에서 9위까지의 격차(6게임)보다도 더 멀다. 하루 전 올 시즌 최소 경기 30패의 수모를 당했던 한화는 최근 3연패와 함께 드디어 승패 마진이 5할 승률에서 -20까지 추락했다. 그냥 꼴찌도 아니고, 바로 올 시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며 프로야구 구단 총연봉 1위까지 등극했던 한화의 충격적인 반전이다.

불과 약 1년 반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2014년 겨울 김성근 감독이 부임할 때만 해도 한화의 미래에 대한 기대는 장밋빛으로 가득했다. 야신으로 칭송받던 김 감독은 만년 하위권을 전전한 한화를 구원할 유일한 구세주로 보였다. 다수의 한화 팬도 김성근 감독의 영입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지난 2015시즌 중반까지 한화 야구가 매 경기 치열한 승부를 거듭하며 돌풍을 일으킬 때는 중독성이 강할 만큼 매력적이라는 의미에서 '마리한화'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다분히 중의적이고 아이러니한 표현이 됐다. 마치 짧은 쾌락에 영혼을 판 대가로 갈수록 엄청난 고통과 후유증을 동반하는 마약처럼, 마리한화는 결국 헬한화로 가기 직전의 회광반조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복선은 이미 지난 시즌 후반기 한화의 무기력한 급락에서부터 충분히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끝없이 반복되는 지옥훈련, 벌떼 야구, 희생번트, 선수 혹사 등 소위 '김성근식 야구'를 대표하는 키워드들은 사실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바뀐 것이 없다. 그 핵심은 전지전능한 리더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관리하고 통제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며, 개인보다는 조직(국가, 팀)을 우위한 헌신, 대의를 위한 작은 희생(혹사, 지옥훈련) 등을 합리화한다. 오로지 철저한 효율성과 성과지상주의에 기반을 둔 리더론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1960~1970년대 한국이나 아프리카 독재국가들의 개발독재형 성장론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김 감독을 처음 영입할 때만 해도, 한화는 지긋지긋한 만년 꼴찌를 벗어나기 위해서 '특수한 방식'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공감대를 얻었다. 이는 곧 현장과 프런트의 전문화-분업화, 자율성과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프로의식 등, 현대야구의 상식에는 다소 역행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팀의 성공을 위해서는 용납될 수 있다는 다소 위험한 도박이었다. 여기에는 당시 야신으로 칭송받으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김성근 감독이라면 가능할 수 있다는 막연한 판타지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신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었다. 인간이면서도 야구에 관해서는 전지전능한 신의 영역을 꿈꿨던 만용은, 오히려 현대야구의 흐름에 역행하는 여러 가지 시대착오적인 야구관을 양산했다. 이는 그동안 실제 성과 이상으로 부풀려진 이미지 메이킹과 언론플레이의 힘으로 '만들어진 신'의 한계이기도 했다.

김성근식 리더십의 오류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예전에 성공했던 방식이 지금도 똑같이 통할 수 있다'는 착각이고, 둘째는 '다른 사람은 틀린 방식이라고 해도 내가 하면 가능하다'는 오만이며, 그리고 셋째는 '실패하면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다른 데서 원인을 찾거나 책임을 떠넘긴다'는 현실 도피적인 자세다. 이는 1인 리더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한 조직일수록, 매너리즘에 빠진 리더가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상들이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이 한화 사령탑 부임 이후 줄곧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1인 독재형 리더십은 리더 본인이 유능하고 깨어있다면 분명히 더 효율적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리더 한 명의 독단과 전횡 때문에 조직 전체가 순식간에 망가질 수도 있다. 합리적인 시스템과 원칙에 운영되는 조직들과 리더 혼자서 조직과 구성원 전체를 장기판의 말처럼 좌우하려고 하는 방식의 차이다.

한화, 또 한 번의 골든타임을 놓치다

김성근 한화 감독 복귀 허리 디스크 수술로 입원했던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20일 kt와의 경기에 복귀, 감독석에 앉고 있다.

▲ 김성근 한화 감독 복귀 허리 디스크 수술로 입원했던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20일 kt와의 경기에 복귀, 감독석에 앉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 한화의 가장 큰 문제는 방향성의 상실이다.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한화는 막대한 투자를 통하여 단기간의 성적 향상에 모든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1년 반이 흐른 현재 한화는 원하는 성적을 얻지도 못했고 선수단의 연령대와 평균 연봉만 해마다 급격히 치솟고 있다. 정작 즉시 전력감 선수들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몇 년간 공들여 모았던 유망주들까지 대거 유출되며 구단의 중장기적인 미래까지 위협받고 있다. 우승이나 포스트시즌 진출을 기준으로 했을 때 김성근 리더십의 실험은 현재까지 명백한 실패다.

더구나 팀을 둘러싼 상황이 점점 악화하고 있음에도 정작 개선 의지나 새로운 노선 설정을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화는 부상에서 복귀한 로저스나 허리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김성근 감독의 가세에도 불구하고 성적은 전혀 반등시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미 5할 승률에서 -20이나 벌어진 상황임에도 똑같은 방식의 팀 운영을 고집하다가 똑같은 방식으로 패배하는 것도 변함이 없다.

한화는 25일까지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24차례의 선발 퀵 훅(Quick Hook)을 단행했고, 승률 6승 1무 17패 1무(2할 6푼 1리)로 올 시즌 전체 팀 승률과 큰 차이가 없다. 지난 25일 넥센전에서 선발 장민재의 퀵 훅 이후 한화는 총 6명의 불펜투수를 투입하고도 8-9로 이틀 연속 1점 차 역전패를 당했다.

장민재는 20~21일 kt 전에서 불펜 2연투로 3.2이닝을 63구를 소화한 뒤 불과 3일 휴식만의 선발등판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혹사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필승조 권혁-박정진-송창식은 올해는 아직 5월임에도 자책점이 급격히 증가하며 벌써 현저한 구위 저하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경기에서도 한화 필승 조는 투입 때마다 돌아가며 자책점을 내주거나 승계 주자의 실점을 허용하는 등 부진했다.

그나마 호투하던 마무리 정우람을 8회부터 마운드에 올리는 강수에도 마지막 9회를 버티지 못하고 동점적시타에 고의 4구, 몸에 맞는 볼, 끝내기 폭투로 어이없는 역전패를 허용하며 '헬한화'표 패배공식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참고로 지난해 SK 시절만 해도 1이닝 마무리로 활약했던 정우람은 올 시즌 1이닝을 초과한 등판이 벌써 10차례나 된다.

심지어 한화는 퀵 훅을 단행했던 경기에서도 승률이 5승 17패로 좋지 못하다. 2~3일 연속 퀵 훅이 반복된 경기도 수두룩하다. 그만큼 마운드 소모가 지속해서 누적되면서도 경기는 경기대로 지다 보니 선수들의 피로도와 패배주의는 더 극심해진다. 마운드 분업화와 휴식일 원칙이 없는 김성근의 '하루살이 야구'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각종 데이터가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물론 작금의 헬한화가 모두 김성근에게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한화의 암흑기는 장기적으로 보면 2000년대 중후반부터 누적된 구단의 무성의한 투자와 세대교체 실패에 그 뿌리가 있다. 전임 한대화-김응용 감독 등은 모두 한정된 조건 속에 망가진 팀의 뒷수습만 하다가 임기를 마쳐야 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정작 역대 한화 사령탑 중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파격적인 지원과 전권을 보장받았음에도,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야구관과 독선으로 한화의 미래를 이전보다 더욱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성적에 대한 조급증과 포퓰리즘에 휘둘린 잘못된 선택으로 한화는 팀을 재건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골든타임을 그렇게 허비했다.

야신의 거짓 신화는 이미 무너졌다. 한화에 필요한 것은 아직도 근거 없는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야구관만을 주장하는 사이비 교주가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병을 치유하고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의사다. 진정한 헬한화를 만드는 것은 꼴찌라는 지금의 성적이 아니라, 꿈도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암울한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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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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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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