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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 관함식.
 일본 해상자위대 관함식.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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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승천기(욱일기)' 논란이 또 다시 재연되고 있다. 나이키 운동화의 욱일기 디자인 파문에 이어 다시 한 번 욱일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욱일기를 단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지난 24일 경남 진해항에 입항한 것이 논란의 시발이 됐다.

25일부터 6월3일까지 진해-제주 인근 해역에서는 '2016 서태평양 잠수함 탈출, 구조훈련(Pacific Reach 2016)이 펼쳐진다. 이번 훈련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6개국 해군 함정이 합동구조훈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2차 세계대전 전범기인 욱일기를 달고 이 훈련에 참가한다.

문제는 일본의 해상자위대가 한반도에 욱일기를 단 채 입항했다는 점이다.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사회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단 해상자위대 함정이 버젓이 우리나라 영토에 입항하는 모습에 여론이 크게 술렁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만행을 경험한 피해 당사국으로서 시민사회의 거부와 반발은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하물며 아베 내각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을 거부한 채 군국주의의 부활을 공공연하게 부르짖고 있는 실정이다. 끔찍하고 치욕스러운 역사의 상흔은 아직까지 치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욱일기를 단 일본 해상자위대가 당당하게 진해항에 입항했으니 시민사회가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일본 자위대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군의 인식이다. 그들은 자위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시민사회와 마찬가지로 경계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을까.

정부와 군의 인식, 국민정서를 완전히 역행

지난해 10월 국회 대정부질문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 이 때 황 총리는 '필요하다면 한반도 내 자위대 파견을 허용할 것'이라고 답해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대정부질문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 이 때 황 총리는 '필요하다면 한반도 내 자위대 파견을 허용할 것'이라고 답해 논란이 일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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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자위대를 향한 정부와 군의 인식은 시민사회와는 달라도 한참은 다르다.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정부의 야욕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정부와 군은 오히려 일본 정부가 반길 만한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 그들이 국민정서를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9월 22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정호섭 해군 참모총장의 발언이 의원들을 자극했던 것이다. 정 총장은 이날 "대북 억제 차원에서 키 리졸브 훈련에 일본도 참여해 합동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해 한반도의 자위대 진출을 용인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 총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시민사회는 강력하게 반발했고, 이에 해군은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라며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정 총장의 발언이 원론적인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그 바통을 이었다.

황 총리는 지난해 10월 14일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했다. 당시 강창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발효해서 자위대를 파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질문했고, 황 총리는 "구체적인 결단이 필요하면 허용할 것"이라고 답해 국민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야당은 황 총리의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했고, 시민사회는 황 총리의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했다. 당시의 논란은 행정부를 이끌고 있는 총리와 해군 수뇌부의 수장이 국민정서와 완전히 동떨어진 안보와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욱일기를 게양한 일본 해상자위대의 진해항 입항 논란 역시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해군은 논란이 일자 "군함은 국제법상 자국의 영토로 간주된다, 항구에 들어갈 때 자국기와 자국군기를 다는 것은 관례"라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해명했다. 나아가 "우리도 외국 항구에 들어갈 때 태극기를 달고 가는데 일본만 이를 못하게 막는 것은 맞지 않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예견된 일이었다

물론 해군의 해명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의 해명이 적절해 보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해군의 해명 속에는 욱일기에 짙게 투영되어 있는 군국주의의 잔재와 우리민족이 겪었던 참혹한 역사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는 이제 겨우 7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과 능욕을 당한 것이 불과 100여 년 전의 일이다. 더구나 위안부 문제에서 드러나듯 식민지배 36년 동안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아픔과 상처는 아직까지 아물지 않고 있다. 일제의 야만적 폭력과 수탈의 악몽이 국민정서 속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의미다.

묻고 싶은 것은 이 같은 국민정서를 감안해 정부와 군이 욱일기를 단 해상자위대의 한반도 입성을 막기 위해 어떤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느냐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이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역사성과 특수성을 도외시 한 채 '관례'를 들먹이고, 태극기와 욱일기를 동일하게 인식하는 해군의 어이없는 행태 속에서 손쉽게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위대 한반도 진출에 대한 정부와 군의 인식, 그리고 이번 욱일기를 게양한 해상자위대의 한반도 입항 논란은 외따로이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깝게는 박근혜 대통령의 위안부 문제 합의와 멀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발언 의혹도 마찬가지다. 때맞춰 활개치고 있는 뉴라이트도 예사롭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흐름들은 어쩌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점점 기억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그 시절 그 때처럼.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국민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 일본 해상자위대 욱일기, #해상자위대 진해항 입항, #욱일승천기, #박근혜 뉴라이트, #자위대 한반도 진출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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