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현대 이철근 단장과 최강희 감독(왼쪽부터)이 24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구단 관계자의 심판 매수과 관련한 사과 회견을 하고 있다.

전북현대 이철근 단장과 최강희 감독(왼쪽부터)이 24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구단 관계자의 심판 매수과 관련한 사과 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축구 디펜딩챔피언 전북 현대가 '심판 매수' 스캔들로 창단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부산지검은 지난 23일 전북 스카우터 차아무개씨가 심판 2명에게 경기 때 유리한 판정을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이들을 모두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두세 차례에 걸쳐 경기당 100만원씩 총 500만원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해 경남 FC가 심판매수 사건으로 징계를 받으며 충격을 안긴 바 있지만, K리그 챔피언인 전북마저 같은 혐의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과 파급효과에서 차원이 다르다. 전북은 2009년 이후 최근 7시즌간 K리그를 4번이나 제패한 명실상부한 현재 국내 프로축구 최고의 팀이다. 이는 곧 전북을 넘어 K리그 역사의 정통성에도 심각한 오점을 남기는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현재 프로축구가 수많은 경고와 우려의에도 불구하고 아직 승부조작과 부정한 뒷거래의 관행에서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는 추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축구계와 팬들은 이번 사태가 '한국판 칼치오폴리(Calciopoli)' 사건으로 확대될 가능성에 전전긍긍하며 수사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판 칼치오폴리, 최악의 위기 자초한 전북

칼치오폴리는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지난 2006년 벌어진 대규모 승부조작 사건을 의미한다. 이는 90년대 초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벌어진 '탄젠토폴리(Tangentopoli:뇌물의 도시) 스캔들'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뇌물, 매수, 청탁, 카르텔을 통한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이탈리아 정치·사회 구조의 어두운 이면이 프로스포츠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이탈리아 검찰의 수사 결과 다수의 세리에 A클럽들이 적극적으로 심판을 매수한 정황이 드러났고 심지어 여기에는 유벤투스, AC 밀란 등 이탈리아와 유럽을 대표하는 명문구단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유벤투스는 앞선 두 시즌의 리그 우승이 취소된 뒤 세리에B로 강등당하며 차기 시즌 승점 9점이 삭감됐다.

나머지 AC 밀란, 라치오, 피오렌티나, 레지나 칼초 등도 강등은 면했지만 경중에 따라 승점 삭감의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그나마도 거대 구단들의 반발과 로비로 인하여 징계 수위가 완화됐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축구계가 칼치오폴리 관행을 완전히 단절시키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은 스페인, 잉글랜드와 함께 유럽 최고의 빅리그 중 하나로 꼽히던 이탈리아 세리에A의 명성을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실제로 이때부터 이탈리아 축구는 서서히 암흑기로 접어들며 아직까지도 예전의 영광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칼치오폴리 사건 이후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축구계에 공공연히 만연해 있던 승부조작의 실체가 공론화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이탈리아 축구계 승부조작 의혹은 최근에도 잊을만하면 다시 제기될 만큼 세리에A의 뿌리깊은 관행이자 흑역사로 남아있다. 

이제 국내 팬들의 관심은 논란의 중심에 선 전북의 미래에 쏠린다. 이미 심판 매수 혐의가 공공연하게 드러난 이상 전북도 징계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혐의가 입증될 경우, 과연 어느 윗선까지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하는지도 민감한 문제다.

스카우터의 일탈이라는 전북, 꼬리자르기?

전북은 심판 매수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도의적인 책임을 인정하며 사과하기는 했지만, 사건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해당 스카우터 개인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인한 과실'로 선긋기에 나섰다. 하지만 전북의 공식 입장이 밝혀진 이후 팬들의 반응은 오히려 더 싸늘해졌다. 이미 적발된 스카우트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려는 꼬리자르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칼치오폴리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때 당시 연루된 구단들의 초기 대응도 대부분 비슷했다.

상식적으로 구단의 일개 직원에 불과한 스카우터가 아무런 사전 논의도 없이 단독으로 심판을 매수하려했다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물론 구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포츠도박 등을 통한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승부조작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전북의 변명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않고 궁상맞다. 심판 매수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은데 돈의 출처가 어디인지도 불명확하다. 계좌추적 등을 통한 철저한 추가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전북도 인정했듯이, 어찌됐든 구단 직원이 연루된 일이고 구단 역시 그 부정한 심판 매수의 방법으로 직접적인 이익을 얻었다면, 사전에 의도했든 몰랐든 간에 어떤 핑계로도 전북 구단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최강희 전북 감독과 이철근 단장은 지난 24일 멜버른과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16강 2차전이 끝난 후 이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북의 수뇌부인 두 사람은 이 사건에 대하여 팬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수사 결과에 따라 모든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들이 언급한 책임은 사실상 '자진사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고작 이들의 사퇴 정도로 수습되기에는 이미 사건이 너무 커졌다. 최 감독과 이 단장이 책임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직접 사퇴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심판매수 사건 자체에 대하여 '우리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사전에 몰랐다, 결백하다'는 전북의 공식적인 입장을 반복했다.

심지어 최 감독은 '구단 스태프들이 사전에 제대로 보고만 해줬어도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뉘앙스의 발언으로 오히려 관리부실의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전북에서만 무려 10년 가까이 감독직을 역임하며 팀의 상징이자 K리그에서도 베테랑 감독으로 꼽히는 인물인데, 팀이 돌아가는 상황에 너무 무관심하거나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었던 게 아닌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최 감독과 이 단장이 사전에 이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수사결과가 조금 더 나와봐야 알 수 있다. 알았다면 거짓말을 한 것이고, 몰랐다고 해도 관리부실로서 구단 이미지를 실추시킨 책임이 크다. 물론 최 감독의 경우 심판매수 의혹을 샀던 2013년 당시 상반기 전북을 떠나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었다는 변명거리는 있지만, 그 이전이나 이후에 심판 매수 관행이 더 이상 없었다는 보장도 없다.

프로축구연맹, 축구계 악습 뿌리 뽑을 수 있을까

프로축구연맹이 전북에게 어느 정도 수위의 징계를 내릴지도 주목된다. 경남 FC 사건의 경우, 심판만 영구제명을 당했을뿐 정작 구단은 올 시즌 승점 10 감점과 제재금 7000만 원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하면 경미한 수준이었다. 당시에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경남 자체가 그리 화제성이 높은 구단이 아니었기에 그대로 넘어가고 말았다

연맹의 행정력은 전북에 대한 징계를 놓고 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전례를 감안할 때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형평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경남과 비슷한 수준의 징계를 내리는 것이다. 전북 구단이나 그 모기업인 현대가 어쨌든 현재 K리그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무시할 수 없고, 전북은 올 시즌 ACL에도 8강에 올라있다. 정황상 다분히 정치적인 고려와 판단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이번에도 그렇게 적당히 넘어가려 했다간 이미 극도로 악화된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축구계의 심판매수와 승부조작 근절에 단호한 의지 없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다.

전북을 둘러싼 심판매수 파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반드시 그에 합당한 징계가 따라야한다. 필요하다면 시즌 중에라도 디펜딩챔피언의 2부리그 '강등'같은 단호한 결단도 필요하다. 이 상태에서는 올 시즌 전북이 리그 3연패와 ACL 우승을 넘어 트레블까지 달성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전북이 K리그에서 이뤄놓은 숱한 역사, 올 시즌 K리그 시즌 판도가 한꺼번에 엉망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축구계의 어두운 관행을 뿌리뽑고 원칙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다. 이게 K리그와 전북이 모두 추문의 오명에서 벗어나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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