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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복을 입은 남자 셰프의 모습은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이제 너무나 자연스럽다. "아내에게 사랑받으려면 요리를 잘해야 한다"며 아들에게 요리와 부엌살림을 가르치는 엄마들도 있고, 은퇴 후 요리 배우는 재미에 홀딱 빠졌다는 60세를 훌쩍 넘긴 남자 몇도 내 주변에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 요리는 '아녀자 또는 천것들이나 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이 같은 그릇된 인식은 현대에까지 이어져 "남자는 처가와 부엌을 멀리해야 한다"와 같은 말까지 생겨날 정도로 남자들의 부엌 출입이 제한되기도 했다. 지금도 종종 어떤 드라마에서는 앞치마 두른 아들의 모습을 속상해하는 엄마들의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조선시대 남자 셰프가 있었다면? 그것도 양반 셰프라면? 그 주인공은 서유구(1764∼1845)다. (아마도) 한국사 교육이 부실한 세대인 요즘 청소년들이나 20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우리 역사 교육을 좀 더 받은 30대 이후 세대들은 <임원경제지>란 책을 쓴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을 그 서유구 말이다.

조선전기 대표적인 지식인인 서거정(1420∼1488)의 후손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물론 그의 아버지도, 자신도 벼슬을 지냈다. 외할아버지는 정조의 스승으로, 규장각 설치를 일선에서 지휘한 인물이다. 게다가 대대손손 한양에서 살았던 경화세족이다. 흔히 말하는 뿌리 깊은 명문가로 양반의 생활이 몸에 배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는 당시 양반들의 상식을 벗어난 삶을 살았다고 한다.

풍석선생은 조선 주류층인 양반의 허위의식을 극도로 경멸했다. 자신이 먹는 밥 한 톨, 입는 옷 한 벌, 집 짓는 흙벽돌이나 쓰는 도구 하나 생산하지 못하는 주제에 양반이라는 신분에 집착하여 세상 경륜을 논하고 시를 읊는 것을 밥버러지나 하는 짓으로 여겼다. 오죽하면 "흙으로 빚은 국이요, 종이로 만든 떡"이란 표현을 썼을까! - <조선 셰프 서유구>에서.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경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제 입에 들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일상의 사소한 것들마저 남의 손을 빌리는 양반들을 경멸한 그답게 당시의 상식 있는 양반들이 꺼렸던 요리를 직접 했으며 레시피까지 남긴 것이다. 혹자들이 백과사전으로 유명한 <브리테니커 백과사전>를 들먹이며 그 가치를 높게 치는 <임원경제지>란 방대한 책. 그중 요리에 관한 기록인 7권의 <정조지>는 이렇게 나왔다.

 <조선 셰프 서유구> 책표지와 저자(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 곽미경 소장) 5월 18일 풍석문화재단에서 만났다.
 <조선 셰프 서유구> 책표지와 저자(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 곽미경 소장) 5월 18일 풍석문화재단에서 만났다.
ⓒ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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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셰프 서유구>(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펴냄)는 풍석 서유구가 <정조지>에 기록한 요리들을 복원, 그 과정과 레시피를 담은 책이다. 동시에 <임원경제지>라는 방대한 백과사전을 남겼음에도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서유구의 삶을 조망한다.

책은 서유구의 삶을 소설 형식으로 들려주는 한편, 그가 <정조지>에 기록한 요리들을 복원,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 레시피도 실었다. 책을 통해 접하는 요리들이 흥미롭다. 뼈대있는 양반 서유구가 왜?, 어떻게 요리를 했는지도, 음식 복원 이야기도, 책도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다. 저자를 메일로, 그리고 지난 18일 직접 만나 물어봤다.

 연한 연방의 속을 파낸 후 간장으로 양념한 가자미살을 채워 찐 연방만두.
 연한 연방의 속을 파낸 후 간장으로 양념한 가자미살을 채워 찐 연방만두.
ⓒ 조선 셰프 서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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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브샤브와 비슷한 '전립투'부터 '국화차'까지 책으로 접한 <정조지> 요리들. 조만간 꼭 해먹어 보고 싶은 '구면'과 '산삼떡' 등, '이렇게 좋은 요리들이 왜 묻혔을까?'란 생각을 할 정도로 구미를 당기는 요리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 싶은 요리는?
"'구면'이나 '산삼떡'이 인상 깊다. 맛있다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누구나 쉽게 해먹을 수 있는 그런 요리 맞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연방에 가자미 살을 채워 넣고 찐 '연방만두'를 추천하고 싶다. 연은 심장을 튼튼하게 해 신경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고, 빈혈에도 좋다. 소화기가 약한 사람에게도 좋고 섬유질도 풍부해 비만방지나 다이어트에도 좋다. 게다가 흰 살 생선은 고단백식품이라 누구에게나 도움 되는 그런 건강한 음식이다. 이 음식이 향기도 매우 좋고, 모양도 참 예쁜 데다가 맛도 담백해 아이들도 매우 좋아할 그런 요리다. 아이들과 함께 먹으며 연에 깃들어 있는 상징이나 생명의 진리, 순환 그런 것들을 이야기한다면 참 좋을 것 같다."

 - <정조지>에는 모두 몇 가지 음식이 나오는가. <정조지> 요리 복원 계획이 궁금하다.
"모두 1200가지다. <수운잡방>이나 <음식디미방>에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레시피다. 조리법이 어렵고, 생략된 레시피도 많아서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나 반드시 모든 요리를 복원할 계획이다. 한 책에 40-50여 개의 요리로 소개할 예정인데, 각 요리를 주제별로 묶을 생각이다. 예를 들면 '사위를 위한 밥상', '생일을 위한 음식' 등처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현대인의 눈으로 분석한 <정조지>의 요리법 등으로. 이렇게 두 가지 형식으로 쓸 예정이다. 자세한 조리법과 영양학적인 부분까지 써서 실용을 높이고 싶다. 이 책을 포함 모두 13권, 3년을 계획하고 있다. 두 권의 책을 쓰던 중이었는데, 함께 추진해오던 '전라북도 향토 레시피' 개발 때문에 잠깐 중단된 상태다. 그런데 가급 빠른 시일에 다시 써나갈 계획이다. 그래서 2권이 언제 나올지는 현재로선 장담 못한다."

- '전라북도 향토 레시피' 개발?
"옛날 기록들을 보면 그 지역마다의 특성이 있는 고유 음식들이 발달해 그 지역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꼭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어느 지역을 가나 음식이 거기서 거기, 다 비슷하다. 그래서 전라북도 내 향토색도 많이 남아있고 문화적 특성과 음식 특성이 두드러진 13곳을 선정, 그 지역만의 레시피를 개발해주고 스토리까지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시작 단계지만 좀 지나면 그 지역 경제나 문화에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 '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선생은 매우 혁신적이며 창의적인, 그리고 실용을 추구한 인물이다. 당연히 비생산적인 양반들의 삶을 경멸했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것들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이것(<임원경제지>와 같은 저서나 기록, 선생과 관련된 생산 활동 등)을 계기로 발전해야 한다.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보다 많은 수확을 바라며 72세 무렵부터 볍씨를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재배 하는 등 선생 스스로 언제나 다양한 시도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 등의 문물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소비하는 것으로 그치고 마는 사람들을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정조지>에 그게 잘 나타나 있다. 우리 고유 음식과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여온 요리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선생은 다른 나라 음식들을 그대로 해먹지 않고 우리의 실정이나 생활에 맞게 다양한 시도를 했다. 선생은 레시피로 그치지 않고, '내가 이렇게 해보니 안 되더라. 어떻더라.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해보라'는 의견까지 남겨놓고 있다. 대략 200여 년 전 인물인데 요즘 시대에도 요구되는, 배울 것이 참 많은 분이다. 풍석문화재단은 선생의 이런 실험정신과 실용사상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선생의 저서들을 복원하거나 자취를 발굴해 일반인들과 접목시키는 곳이고, 음식연구소에선 그중 요리들을 복원한다."

 저자와 저자가 복원한 요리 일부분.
 저자와 저자가 복원한 요리 일부분.
ⓒ 풍석문화재단 음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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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삼떡(왼쪽)과 만두과(오른쪽). 수삼으로 대체 복원했다. 둘 다 인삼(수삼)을 온전히 이용할 수 있는 요리다. 산삼떡은 수삼을 절구에 찧어 찹쌀가루와 반죽해 지지면 된다. 요리법이 간단한데다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수삼을 아용할 수 있으며 여름 보양식으로 좋아 올 여름 꼭 해볼 생각이다.
 산삼떡(왼쪽)과 만두과(오른쪽). 수삼으로 대체 복원했다. 둘 다 인삼(수삼)을 온전히 이용할 수 있는 요리다. 산삼떡은 수삼을 절구에 찧어 찹쌀가루와 반죽해 지지면 된다. 요리법이 간단한데다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수삼을 아용할 수 있으며 여름 보양식으로 좋아 올 여름 꼭 해볼 생각이다.
ⓒ 조선 셰프 서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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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기록만으로 옛날 사람들이 먹었던 요리를 복원한다? 힘든 것도 많을 것 같다.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고, 왕실 음식도 섞여 있는 데다가, 조리법들이 어렵기도 하고, 생략된 레시피도 많아서 힘들었다. 구황(노란부추)처럼 지금은 거의 재배되지 않아 구할 수 없는 음식 재료를 쓰거나, 재료들의 정확한 개량(양)을 적어놓지 않은 것도 힘들었다. 사진 찍는 것도 힘들었다. 선생이 중앙관리로만 있다가 나온 첫 임지가 순창이다. 아마도 <임원경제지>를 쓰고자 마음먹은 것은 순창군수로 순창에서 목격한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들 때문이다.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쓴 실용서인 것이다.

그 후 18년 간 임원생활을 하며 <임원경제지>를 거의 갈무리 하고 관찰사로 다시 전라도로 간 선생은 작황을 점검하거나 농사 이야기 등을 하며 농민들과 밭두렁논두렁을 헤매다 저녁이면 <완영일록>이라는 관찰사의 일기를 하루도 빠짐없이 남겼다. 이런 선생이 <임원경제지>의 꿈을 키웠던 곳이 전주다. 그래서 모든 사진을 전라도에서, 그리고 백성들과 논두렁밭두렁을 누볐던 선생의 정신을 살려 가급 전라도의 자연과 어울려 음식사진을 담고 싶었다. 이러다보니 짐도 많아지고, 시간도 많이 들고 그래서 힘들긴 했다."

- 25가지 주제로 서유구의 일대기를 소설로, 그 뒤에 요리 이야기를. 사대부 셰프 서유구란 인물이 참 흥미롭다. 요리를 한 이유나 계기는? 선생의 이야기는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
"선생이 남긴 저서들과 기록들, 그리고 그간 아쉽게라도 좀 나와 있는 선생의 위인전을 기본 뼈대로 약간의 상상을 더해 스토리로 재구성했다. 그래서 거의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선생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요리를 직접 해서 부모를 대접하거나 봉양했다. 그것도 어쩌다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계속되는 일상이었다. 선생의 형수는 <규합총서>를 쓴 '빙허각 허씨'다. 이런 집안이라 서유구에게 요리는 어쩌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선생은 아쉽게도 업적에 비해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복원을 하면서, 이 책을 쓰면서 '드라마 소재로도 좋겠다' 생각이 들 정도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분이다. "

- 다른 책 출간 등 계획은?
"10살 때 아버지가 제빵기를 사오셨다. 사람들과 빵을 나눠 먹는 일이 많아졌다. 그때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나눠 먹는 것이다. 많이 나눌수록 행복은 커진다'란 생각을 했다. 요리를 통해 사람들과 나눈다거나 무언가를 얻는 그런 꿈을 막연하게 꾸게 된 계기다. 외국에서 힘들 때 그런 요리에 대한 기억들과 막연한 꿈이 힘이 되곤 했다. <정조지>와의 인연도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음식 나눔을 통해 알게 된 것들 덕분일 것이다. 빵과 관련된 추억, 인연, 사연을 녹여 쓴 '빵'이야기를 조만간 출간할 계획이다. 세밀화로 사진을 대신했는데 현재 그 작업 중이다. 내용은 모두 마무리했으니 세밀화 작업만 마무리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 <조선 셰프 서유구>(곽미경)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6-04-20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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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