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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추모현장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현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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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것은 남성혐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남자로서 살면서 겪었던 일들을 말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느껴온 것들

저는 평범하게 살아왔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특별하기 보다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겪은 일들은 많은 남성들이 느꼈을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할머니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할머니집에 갈 때면 항상 '내 새끼'라며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먹을것도, 입을것도, 용돈도 저에게는 많이 주시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자였던 제 동생은 조금 달랐습니다. 같은 놀이를 하더라도 동생은 "여자가 얌전하지 못하게"라는 말을 들으며 얌전하지 못한 여자가 되어야 했고, 싸우기라도 하는 날에는 동생은 크게 혼이 났습니다. 할머니는 똑같이 사랑한다고 하셨지만 동생은 서운해하곤 했습니다.

어느새, 저는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군대는 정말 충격적인 곳이었습니다. 훈련소의 어느날 밤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20살, 21살의 청년들이 모이자 많은 대화가 오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이 '여자'였습니다. 여자를 만나본 횟수, 여자와의 스킨십은 자랑거리가 되었고 흔히 말하는 '안마방(성매매업소)'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흥미진진한 곳으로 둔갑되었습니다.

훈련소의 생활을 마치고 배치를 받아 간 곳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병장의 계급을 달고 있던 사람은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원치 않는 야한 이야기들을 계속 들어야만 했습니다. 또한, 누군가는 자신의 여자인 친구에게 술을 먹이고 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것을 마치 스릴이 넘치는 상황이었던 것처럼 묘사했습니다. '여자'라는 존재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계속 소비되었습니다.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때, 저는 '김치녀'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데이트 비용을 제대로 나누지 않는 여자들이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여자들을 '된장녀'라고 부르며 웃기도 하였습니다.

저도 사실은 '여성혐오'를 만들어가는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성혐오'가 단지 여성을 싫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성을 좋아하는 나는 '여성혐오'를 하지 않고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틀렸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남순 교수는 '여성혐오'가 단지 여성을 싫어하고 괴롭히는 일이 아니라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것, 위험한 존재로 보는 것의 두가지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은 저도 '여성혐오'에 동조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관련기사: 여성혐오인가, 아닌가... 이분법 벗어나야 하는 이유)

떠나간 그녀를 애도하며...

먼저,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인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그녀에게 애도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과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죽게 만든 '여성혐오'를 퍼트리는 사람 중에는 저도 있었습니다. 잘못된 믿음으로 했던 행동들이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던 '여성혐오'를 드러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는 여성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화장실에서 여성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건은 '여성'이었기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경찰에서는 정신질환으로 인했기 때문에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경찰의 사건분류를 떠나서 많은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이라고 하더라도 '여성'에 대한 망상이 생성되게 된 계기가 있을 것이며, 분명 여성을 노린 범행이었음을 지적합니다.

또한,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를 강력하게 밖으로 드러나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살해사건이 발생한 이후 많은 남성들은 "모든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지 말라", "페미나치들의 수작이다", "남혐을 그만하라", "추모만 해라"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로부터 '여성혐오'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남녀갈등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저는 세월호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그때에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던 유가족들은 빨갱이가 되었습니다. 순수하지 못한 유가족이 되었습니다. 이번도 다르지 않은것 같습니다. '여성혐오'를 문제시하고 고치려는 사람들은 남녀갈등을 부추기는 사람들로 폄하되고 있습니다.

문제를 제시하는 것은 싸움을 부추기는 것이 되고, 계속되는 남녀갈등의 논란은 소모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성혐오' 문제는 결국 가라앉게 될까봐 걱정이 됩니다. 적어도 '여성'이었기에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시는 여성이기에 살해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저의 고백이 얼마나 위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작은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억울하게 떠나간 그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태그:#강남역,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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