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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스턴트맨은 불타는 차량과 부딪히고, 폭파하는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그러고 나서 고개를 돌리면 그는 사라지고 유명 배우가 영상을 가득 메운다. 스턴트맨은 배우의 그림자다. 한편으로는 영상에서의 존재감에 대해 회의를 느낄 법도 한데 김철준(38)씨는 서로의 직업이 다를 뿐이라고 일갈한다. 그는 최근에 흥행한 <태양의 후예> 무술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스턴트맨으로 시작해 지금은 무술감독이 된 그는 어려서부터 스턴트맨이란 꿈을 가슴에 간직했다. 가족에게는 비밀로 하고 무작정 상경한 서울에선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서울역에서 노숙인들과 노숙도 하고, 하루에 라면 한 끼로 근근이 버티면서 운동을 했다. 현재 성한 곳 하나 없는 그의 몸도 그에게는 문제되지 않았다. 그에겐 너무나도 간절한 꿈을 이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8일 '열혈남아 체육관'에서 김철준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송중기·진구, 둘 다 무척 열심히 했죠"

<태양의 후예> 무술감독 김철준.
 <태양의 후예> 무술감독 김철준.
ⓒ 남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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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턴트맨과 무술감독은 현장에서 무슨 일을 하나요?
"영상에서 상상했던 것을 만드는 사람이죠. 대본에는 '창고에서 싸운다' '치열하다' '의자로 내리찍는다' '피한다' 이런 거밖에 없어요. 저희는 배우의 캐릭터가 어떤지, 군인이라면 어떻게 싸울지 연구하죠. 카메라는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찍어야 더 리얼하게 나올지도 봐요. 스턴트맨은 영상에서 몸으로 보여주고, 무술감독은 영상 밖에서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 <태양의 후예>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요?
"너무 재밌었어요. 좋은 글이라는 게 읽다 보면 빠져서 장수가 막 넘어가잖아요. 이 시나리오는 단숨에 읽었어요. 무술감독이면 너무 남성적이고 셀 거란 생각에 그런 감성도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저는 읽다가 눈물도 나고 그랬어요. 드라마 반응이 되게 좋았는데 사실 더 이상일 줄 알았어요."

-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중기나 진구나 액션을 찍는 배우의 자세가 너무 좋았어요. 그전부터 이 친구들이랑 작품을 많이 하긴 했었는데, 그땐 작은 역할이라 잘 몰랐어요. 이번에 보면서 이 친구들이 이 작품으로 뜨겠구나 싶었는데 그렇게 되더라고요. 저보다 어리지만 둘 다 너무 열심히 해요. 위험한지 아는데도 열심히 해요."

- 억울하지 않으세요? 위험한 일은 스턴트맨이 다 하고, 드러나는 건 배우잖아요.
"그런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오히려 남들이 못하는 불 신(Scene), 수중 신, 와이어, 폭파, 차량 스턴트를 했을 때 거기서 오는 희열이 엄청나요. 위험한 일을 위험하게 찍었을 땐 아무도 박수치지 않아요. 걱정돼서 병원을 보내지. 하지만 다치지 않고 그림도 훌륭하고 효과는 만점이잖아요.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박수쳐요. 주인공들은 결과물을 가지고 무대인사, 기자간담회 같은 데서 박수를 받지만, 현장에서 그런 박수를 받을 순 없죠."

무작정 상경... 스턴트맨의 길을 걷다

- 어렸을 땐 어떤 학생이었나요?
"싸움만 했으면 교도소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정신차려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전 항상 적당히 했어요. 보통 애들이 많이 싸운다 하면 20번, 적게 싸운다 하면 4번, 그럼 전 적당히 열 몇 번 싸웠던 것 같아요. 근데 완벽하게 이중생활을 했어요. 부산에서 홀어머니 홀로 절 키우셨거든요. 동네에선 인사 잘하고 착실하고 바른 학생이었는데 거길 벗어나면 완전 쓰레기(?)처럼 놀았어요. 당시에는 그게 멋인 줄 알았죠."

- 어머니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전 이 일을 하고 싶었어요. 특이하게 전 때렸을 때 맞는 사람이 되고 싶더라고요. 어머니한테 스턴트맨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가 혼나고 맞았어요. 기껏 운동 가르쳤더니 왜 그런 일을 한다고 하냐고….

그 이후로 스턴트맨에 대한 꿈을 가슴 속으로만 품고 입 밖으로 꺼내질 않았어요. 나중에 제 진로를 정해야 될 때가 왔을 때 어머니께 서울에 실내 인테리어가 유망직종이기 때문에 그거 배우러 간다고 하고 서울 올라왔어요.

어머니한테 말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2년 뒤쯤 어머니가 먼저 아셨어요. '너 요즘 뭐하니? 영화 <낭만자객> 보는데 너 나오더라.' 정말 깜짝 놀랐어요. 어머니가 영화를 좋아하셔서 자주 영화관에 가시거든요. 영화 보신 어머니도 얼마나 놀라셨겠어요."

김철준 감독이 스턴트맨들을 지도하고 있다.
 김철준 감독이 스턴트맨들을 지도하고 있다.
ⓒ 남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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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턴트맨 시작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가방 하나 들고, 밤기차 타고 부산에서 서울 올라왔는데 막상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호주머니에는 돈 5만 원밖에 없고…. 그래서 서울역에서 노숙인들하고 같이 노숙했어요. 낮에는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고요. 체육관 가서 '여기서 이런 거 합니까?' '어디로 가야 돼요?' 묻고….

수입이 없으니까 1년 동안은 일을 했어요. 호프집이나 식당 같은 데 트럭에 술을 싣고 차로 날라주는 일이요.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일하러 뛰어가요. 오후 7시까지 일을 해요. 끝나면 다시 뛰어서 집으로 와요. 한강고수부지에서 새벽 2시, 4시까지 운동했어요. 하루 3~4시간 자면서 라면 한 끼 먹으면서 1년을 버텼어요. 집에선 도와줄 수가 없으니까…. 하고 싶은 게 분명히 있어서 그래도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주말엔 촬영장 가서 뭐만 하면 다 손들고 '제가 하겠습니다!'. 칼 맞아 죽고, 찔려 죽고 다했어요. 나중에 방송 보면 활도 제가 쏘고 그 활도 제가 맞고 죽더라고요. 나중엔 무술감독 선배님들이 나이도 어린 게 잘한다고 계속 불러주셨죠. 그 뒤부터는 라면 한 끼가 두 끼가 되고, 두 끼가 세 끼가 되고, 끼니가 늘어났죠.(웃음)"

- 많이 다치셨을 것 같은데, 건강 상태가 어떤가요?
"1년 12달 중에 6개월은 병원 신세를 졌어요. 발목, 무릎, 어깨, 머리 다친 적도 있고, 목, 허리 안 다친 데가 없어요. 무술감독 하면 굉장히 무술을 잘하고 건강한 철인 28호 같은 느낌인데 사실은 환자예요, 환자…."

"70살 먹어도 무술감독으로 현장에 있고 싶다"

- 목숨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매력을 얘기한다고 이 기분을 알 수 있을까요? 혼자만의 희열 같은 게 있어서…. 너무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라 그런 것일 수 있겠죠.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어떡하냐도 하는데, 하지만 전 죽는다고 해서 두렵거나 무서운 건 없어요. 희한하게 그럼 더 멋있는 거 아냐? 자기 일을 사랑하니까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거잖아. 죽고 다치고 이런 거에 대해선 고민이 없었어요."

-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
"제가 120번 정도 본 영화가 있어요. 주성치의 <서유기>인데 '월광보합' '선리기연' 이렇게 1, 2로 이어가는 영화거든요. 지금 봐도 안 질려요. 너무 좋아하다 보니까 이젠 대사까지 다 외워요. 저는 할리우드에서 작품 하고 그런 욕심 없고요, 주성치 한 번만 보고 싶어요. 사인 한 번 받고, 사진 찍고 그게 제 소원이에요. 이연걸, 성룡 하는데 저한텐 주성치가 최고예요."

- 스턴트맨 하면서 속상했던 적도 있었을 것 같아요.
"배우랑 같이 액션을 했어요. 배우가 "아!"라고 소리쳤어요. 모든 스태프들은 배우가 다친 줄 알고 다 걱정해요. 사실 제 손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거든요. 같이 다쳐도 배우를 걱정하지 절 걱정해주진 않아요. 계속 잠을 못 잘 정도로 아프니까 병원에 가니 부러졌다고…. 발도 마찬가지예요. 발목 수술하고도 붕대 감고 촬영장에 갔어요. 끝나고 나니 발이 코끼리 발처럼 부어있더라고요. 그것도 모르고 일을 한 거죠. 당시에는 제가 다쳤다 하면 다음에 안 불러줄 것 같더라고요."

- 감독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제 목표가 나이 70살 먹어도 무술감독으로 현장에 나와 있는 거거든요. 저는 이 일이 천직이에요.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이거 아니면 갈 데 없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런 거 있잖아요. 그렇게 끝났으면 좋겠어요.(웃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http://snsmedia.wix.com/snsmedia)> 6월호에 먼저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태양의후예, #무술감독, #스턴트맨, #김철준, #송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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