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안 국제공항
 서안 국제공항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인천공항을 9시 15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11시 30분에 서안/함양공항에 도착한다. 시차가 1시간이니 3시간 15분 정도 걸린 셈이다. 어제 인터넷 상으로 확인하기는 서안에 비가 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날씨가 좋다. 현지 가이드 얘기로는 어젯밤까지 비가 많이 왔는데, 아침에 그쳤다고 한다. 그 덕분에 대지가 깨끗해졌고 공기도 상쾌해졌단다. 그래서 그런지 하늘이 파랗다. 자외선 지수가 높아 모자를 써야 할 판이다.

답사인원이 24명인지라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어 입국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나서 함양공항을 나오다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우리 회원 중 하나가 사과를 가지고 오다가 엑스-레이 체크에 걸린 것이다. 생과일이 국가간 유통금지 품목이기 때문이다. 여행사 사장에게 과일을 가지고 가도 된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과를 안전요원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무난히 입국할 수 있었다.

무릉 입구
 무릉 입구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입국장에는 현지가이드 한정남씨가 나와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 자체단체 시장과 아이돌 그룹이 오는 바람에 입국수속이 조금은 길어진 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 1시간 정도에 공항을 빠져 나오면 보통 수준은 되는 편이다. 일본은 지문날인 때문에, 인도는 도착비자 때문에, 러시아는 아직도 사회주의 구태가 남아 있어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또 우리가 단체로 움직이다 보니 늦어질 수밖에 없다. 공항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무릉(茂陵)으로 향한다.

먼저 무릉의 배장묘를 만나다

서안과 함양을 잇는 북쪽 외곽고속도로를 타다 남위진(南位鎭) 나들목으로 나온다. 그곳에서 105번과 040번 지방도를 따라 도상촌(道常村)에 있는 무릉박물관을 찾아간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무릉이 먼저 보인다. 무덤 위에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서양에서 사이프러스 나무는 죽은 자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나무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걸 일부러 심었을까? 조경의 개념으로 심은 것 같다.

무릉박물관 안내지도
 무릉박물관 안내지도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우리는 무릉보다는 무릉박물관을 먼저 보기로 한다. 무릉박물관에 도착하니 집표처(集票處)가 있다. 우리의 매표소에 해당하는 곳이다. 여기서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니 무릉박물관 현판이 보인다. 우리는 먼저 입구에 있는 박물관 안내지도인 도유도(導游圖)를 살펴본다. 정면에 곽거병묘(霍去病墓)가 있고, 왼쪽에 무릉박물관이 있다. 우리는 곽거병묘를 보고 내려와서 무릉박물관을 보기로 한다.

이들을 보려면 남문인 주작문(朱雀門)으로 들어가야 한다. 문안으로 들어서면 앞으로 인공연못인 임지(琳池)와 돌로 만들어진 인공섬 석도(石島)가 나타난다. 그런데 돌의 형상이 코끼리를 닮았다. 그리고 연못에는 물이 없다. 아직 장마철이 오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이곳을 지나면 돌로 만든 동물조각을 보호하기 위한 석각정(石刻亭)이 좌우로 서 있다.

마답흉노상
 마답흉노상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곳에 그 유명한 마답흉노(馬踏匈奴)상이 있다. 이 석조물은 흉노를 짓밟는 말의 형상으로, 곽거병(기원전 140~117)의 전공을 찬양하는 물건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의 석각은 뛰는 말의 형상을 하고 있는 요마(跃馬)다. 탄력있게 뛰어오르는 전투마의 모습이다. 이것을 보고 북쪽으로 향하면 1962년 섬서성 인민위원회에서 세운 곽거병묘 표지석을 볼 수 있다.

표지석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76년(丙申)에 세운 '한(漢) 표기장군(驃騎將軍) 대사마(大司馬) 관군후(冠軍候) 곽공거병묘(霍公去病墓)'라는 지붕 있는 묘비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을 지나면 다시 계단이 시작되어 높이 18.38m의 묘 정상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묘 정상에 남승정(覽勝亭)이라는 정자가 만들어져 있다. 말 그대로 주변의 경치를 바라보는 정자다. 이곳에 오르면 서쪽으로 무릉을 조망할 수 있다.

곽거병묘에서 바라 본 무릉
 곽거병묘에서 바라 본 무릉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무릉이 마치 산처럼 보인다. <관중기(關中記)>에 보면 무릉의 높이가 14장(丈)이고, 사방이 140보(步)로 나와 있다. 그렇다면 높이가 46.62m고, 사방의 길이가 1㎞ 정도라는 얘기다. 현장의 자료를 보니 무릉의 높이가 46.5m로 서한의 황제릉 중 높이가 가장 높다고 한다. 무릉 앞으로는 사과나무 과수원과 밀밭이 조성되어 있다. 중국도 밀 같은 곡물 농사로는 살기가 어려워, 과수와 축산 등으로 농업을 다양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서북쪽으로 위청(衛靑, 기원전 ?~106)의 묘를, 동쪽으로 김일제(金日磾, 기원전 135~86)의 묘를 가까이 볼 수 있다. 위청은 출생이 미천했으나, 건장하고 박력이 있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영민했다고 한다. 그런데 용모가 뛰어나고 악가무에 능한 누이 위자부(衛子夫)가 황후가 되면서 궁궐에 들어가 태중대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원전 129년 한무제로부터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되어 흉노족 토벌에 나섰다. 그 후 10년 동안 그는 북쪽의 흉노를 물리치는 큰 성과를 거뒀다.

위청묘
 위청묘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기원전 123년에는 대장군이 되어 공손오, 이광 등과 함께 10만 기병을 이끌고 출병해 정양(定襄) 북쪽의 흉노족을 토벌했다. 그리고 119년 조카 곽거병과 함께 다시 흉노 토벌에 나서 흉노족의 근거지를 바이칼호 북쪽으로 쫓아내 버렸다. 그 후 흉노 토벌의 주도권이 곽거병에게 넘어갔고, 위청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또 자식들마저 봉록을 잃게 되어 말년운은 없는 편이었다. 그리고 106년 병으로 죽어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

김일제는 흉노족의 태자로 곽거병에게 포로로 잡혀 장안에 오게 되었다. 그때 나이 14세였다. 무제는 그의 능력이 출중함을 알고 중용해 벼슬이 시중(侍中)에 이르렀다. 그는 무제가 죽으면서 후사를 맡긴 네 명의 훈신(勳臣) 중 하나다. 한때 신라왕실의 한 축인 김씨의 중시조로 알려져 연구되었으나, 지나친 비약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제 무덤의 높이는 12m 정도다.

곽거병은 어떤 인물일까?

무릉박물관과 곽거병묘
 무릉박물관과 곽거병묘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우리가 오른 무덤의 주인공 곽거병은 대장군 위청의 조카다. 곽거병의 엄마가 위청의 누이인 위소아(衛少兒)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한무제(기원전 156~87)의 처조카다. 이모인 위자부가 한무제의 황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처음부터 출세의 조건을 타고난 행운아였다. 그는 또한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해 무인으로서의 자질도 갖추고 있었다. 그런 곽거병에게 공을 세울 기회가 온 것은 18세 때인 기원전 123년이다. 표요교위(剽姚校尉)라는 벼슬을 받고 흉노 공격의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그는 관군후로 승진하고, 많은 식읍을 받게 된다. 그리고 121년에는 표기장군에 임명되어 기련산맥의 동북쪽 하서주랑을 따라 현재의 주천(酒泉)까지 진출, 서쪽의 흉노를 완전 섬멸했다. 그 후 북쪽의 흉노까지 섬멸하기 위해 나선 전투가 119년 위청과 함께 출정한 막북(漠北) 전투였다. 막북은 고비사막 너머 외몽골 오르혼강 상류로, 이 전투에서 곽거병은 7만이 넘는 흉노족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공으로 곽거병은 대사마가 되고, 위청보다 더 인정받는 장수가 되었다.

곽거병묘
 곽거병묘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2년 후인 117년 곽거병은 병으로 갑자기 죽고 만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무제는 그의 시신을 철갑군으로 하여금 장안에서 무릉 동북쪽까지 운구하도록 하고, 그곳에 기련산을 본뜬 무덤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그에게는 경환후(景桓侯)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묘 앞에는 마답흉노상을 설치했다고 한다. 이 석상은 그가 세운 불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남승정에서 북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간다. 이 길은 곽거병의 업적을 기리는 사당인 백령산묘(柏靈山廟)로 이어진다. 내려가는 길 초입에 제단 형식의 돌무더기가 있다. 이곳에는 삼와신석(三窩神石)이 있어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곳에 동전을 던지며 복을 빌면, 자식을 얻고 재물을 얻을 뿐 아니라 운수대통한다는 전설이 있다. 우리는 이곳을 지나 백령산묘까지 내려간다. 그 앞에도 거병석(去病石)이 있어 소원을 적어 이곳에 빌면 가정의 평안과 건강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와우(臥牛)
 와우(臥牛)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야저(野猪)
 야저(野猪)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곳을 지나면 길은 무덤의 동쪽으로 돌아 다시 곽거병 묘비 앞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가는 길 중간 수 많은 석상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유명한 돌조각군(石刻群)이다. 형태가 분명한 것으로, 앉아있는 소 와우(臥牛), 앉아있는 코끼리 와상(臥象), 멧돼지인 야저(野豬), 양을 잡아먹는 괴수(怪獸吃羊), 돌로 만든 사람(石人)이 있다. 이들은 모두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명문이 새겨진 돌도 둘이나 있다. 하나에는 좌사공(左司公)이, 다른 하나에는 평원낙릉숙백아곽거익(平原樂陵宿伯牙霍去益)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이제 임지 양쪽에 있는 무릉박물관으로 향한다. 무릉박물관은 동서 양쪽 건물에 4000점이 넘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무릉 주변에서 출토되거나 발견된 것으로, 금은기, 청동기, 옥기, 도자기, 벽돌과 와당으로 나눠진다. 이 중 금은기와 청동기, 도용은 서쪽건물에, 옥기, 벽돌과 와당은 동쪽 건물에 나눠 전시되고 있다. 우리는 이 중 서쪽의 금은청동기, 도용 전시실을 먼저 살펴본다.


태그:#무릉박물관, #곽거병묘, #마답흉노상, #위청, #김일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