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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3D 업종' 중 하나인 학생부장 직을 맡게 됐다. 165cm의 작은 키에, 동글한 얼굴에 처진 눈으로 봐서는 불합격, 얼굴보다 더 둥그런 성격으로 봐서도 불합격이다. 하지만 학교를 옮기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절하는 성격도 아닌 탓에 '학생생활안전부장' 업무를 맡게 됐다.

'그래, 이왕 할 거면 내 캐릭터를 살려 친근한 사학(사서교사+학생부장)이 돼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3월부터 위기였다. 공문은 날마다 쌓이고, 흡연학생지도, 소위 말하는 문제학생들 지도까지. 도서관은 새 단장하고, 프로그램 진행까지. 도서관 협력 수업은 생각조차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 원칙은 확실하게 지키려고 노력했다.

'학생들이 내 앞으로 이끌려올 때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지 말자. 내 앞에 학생은 단순하게 하나의 문제로 학생부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윽박지르지 않고 상담과 책 읽기로 행동 개선을 하자.'

어떻게 보면 참 단순하고 명쾌하다. 허나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4월에 원칙이 흔들릴 뻔했다. 학교 선생님께서 급하게 학생을 도서관으로 데리고 오셨다.

"선생님, 유린(가명)이가 청소시간에 지도 불응하면서 제게 '뭔 개소리냐'고 하더라고요."

사람이면 해선 안 될 말

개는 아무런 죄가 없다.
 개는 아무런 죄가 없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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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를 의심했다. 학생이 교사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교사와 학생을 떠나 사람이면 해선 안 될 말이었다. 세상에 쏟아지는 기사들을 보면 별일 아닌 것처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신문 기사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닌 우리만의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이다. '평범한 선생님'도 상기된 얼굴이었다. 선생님을 보내고 도서관에 앉았다. 유린이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쳐다보지 않았다.

"유린아, 선생님 얼굴 보고 이야기합시다."

잠깐 내 얼굴을 보다 머리카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춘다. 먼저 사실 관계를 확인했다. 충격적이지만 모두 사실이었다. 유린이를 데리고 온 선생님이 잘못 들었길 바라는 소망이 깨졌다. 바람이 깨지고 나니 왜 그랬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냥 선생님이 싫어서요."

참 단순한 이유다. 충격과 공포의 순간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다며 위로한다. 위로가 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이 그러면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 선생의 몫이고, 기성세대의 몫이 아니던가? 유린에게 화가 났다. 사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내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싫다고 막말을 해도 되는 건가? 사람이 살아가는데 지켜야 할 기본 도리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겁이 났다. 유린이도 이 정도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고, 그 어떤 것들이 이 생각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을 감추고 유린이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린, 그건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야. 너 후배가 너에게 '무슨 개 소리야'라고 하면 어떨까?"

유린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기분 나쁘겠죠."

귀찮은 듯했다.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말을 돌렸다.

"행복할 게 뭐가 있어요... 노는 거지"

김애란 작가가 쓴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작가가 쓴 <두근두근 내 인생>.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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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하고 싶은 게 뭘까?"
"저요? 놀고 싶어요. 평생."
"평생? 놀고 싶어도 어느 정도 생계가 유지돼야 놀지?"
"그래서 30살까지만 놀다가 죽고 싶어요."

잽, 잽, 어퍼컷이 들어왔다. 두개골이 흔들릴 정도의 파워다.

"넌 사는 게 행복하지 않니?"
"행복할 게 뭐가 있어요? 그냥 노는 거지…."

말끝을 흐리는 유린이를 보자 희망이 보였다.

"유린아. 삶을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들 보면 그렇게 말 못할걸."
"…."

'꼰대'스러운 말을 해버렸다. 뭐 크게 상관없다. 어차피 난 유린이에게 '꼰대'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책까지 추천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두근두근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 본 적 있냐? 강동원·송혜교 주연의 <두근두근 내 인생> 알지? 그 영화의 원작이다."

김애란 작가가 쓴 <두근두근 내 인생>(창비)을 내밀며 이야기했다.

"잘 몰라요."
"그래? 그럼 이번에 한번 알아봐봐. 이 책 읽어봐. 조로증에 걸린 주인공. 아니 나이를 엄청 빨리 먹는 열일곱 살 아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어.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한 아이가 나온다. 꼭 읽어보고 5월 10일까지 반납하면 돼."
"네."

그리고 유린이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임을 알려줬고, 선생님께 용서를 구할 것을 일렀다. 또한, 선생님께 했던 행동보다 삶을 귀찮게 여기는 것이 더 잘못된 일임을 알려줄 <두근두근 내 인생>을 들려 보냈다.

그 뒤에 어떻게 됐을까? 아직 책을 반납하지 않고 있다. 찾아가 볼까 하다가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책 읽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아직까지 읽고 있기를 소망하면서. 제발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청소년문화웹진 킥킥에 중복 송고함. 사서 교사로 처음 발령받았을 때, 예민하고 우둔했던 추억을 되새기며... 사서 교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차근차근 써 내려갈 예정입니다.



태그:#황왕용, #사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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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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