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은 10시에 나와서 6시에 퇴근했다. 아침 일찍 실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나왔고, 오후에는 실험기구 설거지를 했다. 중간중간 학과수업도 빼먹지 않았다.

집에 가서 얼마 없는 휴식 시간에 페이스북 새소식 체크를 했다. 나와 같이 병역특례를 계획했었다가, 포기하고 입대한 친구에게서 페북 문자가 왔다.

너 어카냐(어떡하냐) 전문연구요원 줄인다는데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자주 있던 일이니까.

필자는 과거에 병역특례폐지와 관련된, 주변 친구의 걱정을 받은 일이 몇 번 있다. 맨 처음 걱정을 받았을 때는 황급히 인터넷 뉴스를 검색했다. 최근 소식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2010년의 기사가 가장 최근 기사였다. 당시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또한 직감했다.

'몇 년 단위의 연례행사구나.'

이번에도 별일 아닐 거다. 나는 가볍게 잊어버리고 내일의 실험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그날은 10시에 나와서 7시에 퇴근했다. 아침 일찍 실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나왔고, 오후에는 실험기구 설거지를 했다. 공강이었지만 내 실험은 오래 지속되었다. 평소보다 1시간 늦게 잔류하면서 실험을 꼼꼼히 마무리했다.

집 가는 지하철 안이었다. 지하철 안에서는 공부를 할 수 없기에 합리적으로 쉴 수 있다. 그런데 대학교 1,2학년 동안 같이 즐겁게 지내다가 입대한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하이요 휴가 나옴. 뉴스에서 안타까운 이야기가 나오던데?
강남?
아니, 이공계 대채(체)복무 감축소식인가 그거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이건 걱정해야 한다.

핸드폰으로 즉시 검색해봤다. 관련기사가 좀 많았다. 글들을 훑어내리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감축? 경쟁률이 높아지는건가? 폐지면 없앤다는 뜻이군. 단순히 없앨 수 있는 제도가 아닐텐데. 어떻게 감축하는거지? 이제라도 군대를 갔다와야 하나?'

국방부가 발표한 병역특례 선발인원 감축안도 찾았다.

국방부가 발표한 병역특례 선발인원 감축안도 찾았다.
▲ 병역특례제도 폐지 계획 표 국방부가 발표한 병역특례 선발인원 감축안도 찾았다.
ⓒ 국방부

관련사진보기


가장 고학력자부터 순서대로 특례인원이 0이 되는 도표다. 결국 보고 말았다. 이번엔 친구들의 걱정이 타당하며, 필자가 여태까지 생각해놨던 7년에 걸친 대학원 수료 계획에 중대한 변화가 생긴다는 뜻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걱정이, 학사 때부터 대학원 진학을 계획한 필자의, 7년짜리 과다한 예측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인생이란 변화무쌍한 것인데, 혼자 멀리 바라봤다가 혼자 고꾸라졌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필자 같은 대학생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병역특례대상자들은 박사 또는 석사를 하다가 시험 치고서 운 좋게, 다시 말해 누군가가 토익을 준비하듯이 병역특례를 받지 않는다. 병역특례 대상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는데 그것은 '석사 또는 박사 과정까지 군대를 가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를 포함한 병역특례희망자들은 현재 사회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군입대 시기인 21살부터, 석사는 26살까지, 박사는 30살까지 늦은 군입대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면서, 각자의 인생계획을 실천한 사람들이다.

만일 학사 때 다니던 학교가 병역특례 TO가 없는 학교라면, 군대를 마친 동갑내기들과 선배들의 무수한 시선도 견뎌내야 한다. 필자는 2~3학년 동안 악의없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이 'OO이는 군대 언제가니?'이다. 이제 와서 글로 밝히지만 미치는 줄 알았다.

(군대는 서열이 강하게 작용하는 공간이고, 서열에는 나이보다는 군대에 들어온 순서가 중요하다고 한다. 늦게 군대를 가면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오랫동안 명령을 듣고 하대 받아야 하니 아주 괴롭다고 한다. 이것이 늦은 군입대에 대한 공포이다.)

병역특례제도 폐지계획을 찾아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다. 먼저 국방부의 병역특례 선발인원 감축 계획은 연례행사가 맞았다. 거기다가 국방부 나름의 논리로는 정말로 명확한 목적의식과 근거를 가지고 실행해왔었다. 국방부 홈페이지의 전문연구, 산업기능요원 페이지를 보면, 이 감축계획이 2002년부터 공식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까지 특례 선발인원이 17000명이었던 것이 보인다.
▲ 2002년도 병특폐지 계획 당시까지 특례 선발인원이 17000명이었던 것이 보인다.
ⓒ 국방부

관련사진보기


당시까지 특례 선발인원이 17000명이었던 것이 보인다. 이것이 현재는 6000명까지 줄어든 것이다. 병역특례제도 감축은 분명히 계속 진행되어 왔다.

인원감축에 대한 국방부의 근거는 이러하다. 2002년의 첫 계획 근거에는 1980년도부터 이루어진 저출산 추세로 이루어질 병력 자원 감소를 대비하기 위해 특례인원을 감축한다고 쓰여있다. 이번 발표대로 2018년의 병력자원을 걱정하고 있다면, 그 근거는 1998년의 저출산율일 것이다. 찾아보았다(1998년생이 2018년이면 필자가 적절한 군입대시기라고 말한 21살이 된다.)

그림에는 없지만, 성비는 대략 5:5의 비율이 유지되고 있으므로, 성비 오차는 무시해도 된다.
▲ 출산율 그림에는 없지만, 성비는 대략 5:5의 비율이 유지되고 있으므로, 성비 오차는 무시해도 된다.
ⓒ 통계청

관련사진보기


확실히 출산율이 움푹 줄어든 것이 보인다. 그래프만으로 추측하면, 지금 국방부가 말하는 군 병력 손실은 2015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손실은 2020년까지 지속될 것이다. TV와 각종 SNS매체에서 말하는 만큼 국방부가 어처구니없고 생각없는 계획을 발표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공계 박사과정 인원들이 우리나라 R&D 산업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2년의 공백이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겪지도 않았고, 필자는 누군가의 지도교수도 아니니까. 6000명의 R&D 인원 손실과 6000명의 군 병력 추가가 절대 대등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걱정은 좀 다른 곳에 있다.

필자의 걱정은 아까 말했던 대로 인생계획이다. 군 입대와 병역특례의 특징상 7년간의 인생을 계획하고 이미 시작했는데, 국방부에서 낸 계획은 3년의 유예기간밖에 없는 것이다. 그 유예기간에도 전문요원 선발인원 수는 충실히 줄어들고, 사실상 그 계획이 실행되면 필자는 30살의 나이에 군에 입대해야 한다.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현재의 대학원 준비과정이 상당히 힘들고,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든다. 우리는 이런 급작스러운 변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만큼 여유로운 삶을 살지 않는다.

이제 막 대학원 진학에 첫발을 내딛는 필자는 이 급작스러운 변화의 최대 피해자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국가정책이 정책변화에 의한 피해자를 최소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면, 이번에 발표된 3년의 유예기간은 타당하지 않다. 현재 여러 대학에서 진행되는 병역특례폐지 반대 의견을 국방부에서 듣고, 합당한 변경이 발표되기를 희망한다.


태그:#교양과제, #병특폐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