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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학 전문의와의 점심식사'는 대화의 형태를 빌려 보다 알기 쉽게 암 예방 및 통계에 대한 지식과 갑상선·유방·대장·간 등 각각의 암 종에 대해 알아보는 연재입니다. 한 신문사의 의학·건강기자이자 암 환자 보호자이기도 한 K기자와 한 종합병원 의사 Q의 대화로 구성해봤습니다. - 기자 말

5월도 중순이 넘었고, 후텁지근한 공기가 몸을 스쳐 여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끼게 한다. 저녁이 돼가는 시간이었지만, 대낮처럼 밝던 5월의 어느 늦은 오후, K는 Q를 찾았다.

K :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정말이지 너무 덥네요!"
Q : "그러게 말이에요. 이제 정말 여름이 왔나 봅니다."
K : "선생님, 오늘은 날도 더운데 시원하게 치킨에 맥주 한 잔 어떠세요?"
Q : "저는 술을 못 합니다."
K : "…."
Q : "하하, 농담입니다. 날도 더운데 좋은 생각입니다. 제가 안내할게요. 가시죠."

근처의 호프집을 찾은 K와 Q. 바깥 공기가 선선해 둘은 노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Q : "그런데,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K : "네? 왜요?"
Q : "K씨는 술을 안 좋아하시는 줄 알았거든요."
K : "아니에요. 가끔 마셔요. 그리고 요새 기분이 좀 별로라서요."
Q :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K : "그냥, 사는 게 별로 재미가 없어요. 결혼·육아 등 해결해야 할 문제는 쌓여있고. 갚아야 할 학자금대출과 집세랑 관리비 내고 나면 통장은 금세 며칠 굶은 사람 배처럼 쪼그라들고요. 친구들을 만나도, 남자를 만나도 예전처럼 재미도 없고…. 친구들은 그래도 저는 취직이라도 했다고 배부른 소리라고 하네요."

Q : "그렇군요."
K : "선생님은 행복하신가요?"
Q : "네."
K : "…."
Q : "하하, 농담입니다."
K : "…."
Q : "…."
K : "…, 한잔하시지요."
Q : "네. (잔을 받아 술을 마심)"

의사들은 술을 잘 마신다면서요?

술이 몸에 나쁘다고요? 왜죠?
 술이 몸에 나쁘다고요? 왜죠?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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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선생님은 농담을 정말 못하시는 것 같아요."
Q : "네? 저는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K : "(단호하게) 아니에요."
Q : "…, 하하."

K : "선생님, 그런데 의사 선생님들은 술을 잘 드신다면서요?"
Q : "뭐…, 많이 마시는 사람들도 있지요. 안 그런 사람들도 있고요."
K : "왜 그런 인식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Q : "글쎄요…. 아무래도 수직적 조직문화가 발달한 사회이기도 하고, 업무량도 많고 늘 긴장해야 하는 일이다보니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K : "무엇보다 술·담배가 몸에 나쁜 걸 잘 아시면서, 술을 즐겨 드신다니 신기해서요."

Q : "(웃으며) 술이 몸에 나쁘다고요? 왜죠?"
K : "네?"
Q : "하루에 2잔 이하로 마시는 여성, 4잔 이하로 마시는 남성 중 사망률이 비교군보다 18% 정도 낮아진다는 보고가 있는 거, 혹시 못 들어보셨나요? 여기저기 보도가 많이 된 연구인데…."
K : "네에? 술을 마시는데 사망률이 낮아진다고요??"

음주량과 사망률의 역설

Q : "네, 2006년에 발표된 메타분석(여러 연구를 통합하여 분석하는 연구)에서 여성은 하루에 2표준잔, 그리고 남자는 4표준잔(1표준잔은 대략 맥주 한 캔(330ml), 소주 4분의 1병에 해당한다) 이하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사망률은 비음주자에 비해 18% 낮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K :  "그러면 술을 마실수록 건강해진다는 이야기인 건가요?"

술과 생존율,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술과 생존율,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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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렇지는 않고요. 위에 언급된 양 이상으로 술을 마시는 경우에는 오히려 사망률이 비음주자에 비해 높아졌습니다. 이것은 소량의 음주가 주로 심장질환이나 뇌졸중의 발병률을 낮추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추정되는데요.

관상동맥(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 질환과 음주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일주일에 2~7 표준잔의 음주를 하는 경우 여성은 49%, 남성은 38% 관상동맥질환의 위험이 낮아졌다고 합니다.

또, 뇌졸중과 음주와의 관계를 연구한 메타분석에서는 하루에 1표준잔 정도의 음주를 할 경우, 뇌졸중이 17% 낮아졌다고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4표준잔 이상의 음주를 하는 경우 오히려 위험이 64%나 높아졌다고 합니다."

K : "소량의 음주가 오히려 득이 되기도 하네요.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서 조금씩 술을 마셔야 하는 걸까요?"

Q : "그 질문은 대답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러운 질문인데요. 미국심장학회에서는, '소량의 음주는 심장질환에 유익하나, 여성의 경우 하루 1표준잔, 남성의 경우 하루 2표준잔 정도를 넘지 않도록 권고하며, 술과 다른 질환의 연관성이나 연구의 부족 등을 고려할 때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이 심장질환 예방을 위해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것은 추천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어요.

한편, 국가암정보센터에서는 '소량의 음주가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한다고 알려졌지만, 일부 암은 소량의 음주에도 발생률이 증가하므로 암을 예방하는 최소 음주량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보고하고 있지요. 또한 대부분의 의사들이나 보건종사자들도 건강을 위해 음주를 절제하도록 권하고 있지요."

K : "조금 쉽게 풀어주셔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Q :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자면 소량의 음주가 심혈관계 질환 예방 등을 통해 사망률은 낮추지만, 낮은 용량에서도 암을 높인다는 보고가 있으므로 암 예방차원에서는 권고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지요.

다른 연구를 예로 들면, 영국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어떤 연구에서 하루에 한 잔 정도의 술을 마시는 사람도 6% 정도 암 발병률이 늘어난다고 발표했죠. 구강, 식도, 후두암 등은 이보다 더 늘어났고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 국립암센터에서도 암예방수칙을 '술은 하루 1~2잔 이하로 마시기'에서 '소량의 음주도 하지 않기'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존율이나 암 발생률 증가도 문제지만, 술이라는 게 대개 본인이 원하는 만큼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중독성도 강하므로, 음주 자체를 자제하는 지침의 필요성이 있지요(물론, 소량이 아닌 다량의 음주는 건강을 해칩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음주에 관대한 사회에서는요."

포도주·막걸리가 암 예방에 좋다?

중요한 건 술 종류가 아니라 '양'이다.
 중요한 건 술 종류가 아니라 '양'이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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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 "알겠습니다. 선생님, 이번에는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 '포도주에 있는 항산화 성분이 암을 예방한다' 혹은 '막걸리에 있는 항암물질이 암을 예방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막걸리나 포도주 같은 특정 종류의 술이 건강에 유익한가요?"

Q : "한때 그런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지요. 또 포도주나 막걸리를 생산하는 측에서 그런 주장을 반가워했었고요. 그런데 지금의 의학적 중의(衆意)는, 알코올의 종류보다는 섭취량이 심혈관질환이나 암과의 연관성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와인이 맥주나 다른 술에 비해 심혈관계 질환 예방 등의 유익이 조금 더 높다는 보고도 있지만, 대개의 연구에서는 와인뿐 아니라 다른 주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고요. 포도주에 들어있는 항암성분으로 유명한 리스베라트롤(resveratrol) 이나 막걸리의 항암성분으로 알려졌던 파네졸 등도 동물실험에서는 의미가 있었지만, 실제로 사람에게 적용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지요. "

[참조 : 리스베라트롤이 쥐들의 수명을 늘리고 건강상태를 개선한 효과가 과거 <네이처>(Nature)지에 실렸으나, 70kg의 사람이 이 연구에 사용된 만큼의 수치를 얻으려면 1000리터에 달하는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이후 연구된, 최근의 임상연구에서도 리스베라트롤은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막걸리에서 항암효과가 있다고 보도됐던 '파네졸' 등도 효과를 보려면 750cc 짜리 막걸리 10병 이상을 마셔야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관련 기사 : 약간의 술, 심장에 좋다는데... 사실인가요)]

마시지 않던 사람 일부러 마실 필요 없어

K : "알겠습니다. 무조건 몸에 나쁘다고만 생각했던 술인데,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네요. 그럼 선생님, 마지막으로 술과 건강에 대해서, 알아둬야 할 점을 요약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Q :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소량의 술은 심혈관계 질환을 줄여 생존율을 증가시키나 암에는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술을 마시지 않던 사람이 건강을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은 권장하지 않고, 매일 1~2 표준잔 넘게 과음을 하는 분들은 술을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담배를 끊으셔야 합니다. '술과 담배'는 세트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담배의 위해는 술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큽니다. 특히, 술을 마시면서 피우는 담배는 그 해악이 몇 배가 됩니다. 술과 암에 대한 연구에서 암 발병률이 높아지는 이유가 술을 마시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아서라는 설도 있고요."

K : "네, 알겠습니다. 마시지 않던 사람이 술을 일부러 마실 필요는 없고, 과음하는 사람은 줄일 필요가 있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네요. 지금 저희 앞에 있는 맥주를 마셔야 할지 고민이 되는데요?"

Q : "하하, 기왕 마시는 건 기분 좋게 마셔야죠. 더운 여름에 시원한 맥주 한두 잔은 저도 즐겨 마십니다. 건배하시죠."
K : "넵, 알겠습니다. 건배!"


태그:#술, #암, #종양학전문의,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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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고통을 수용하지만, 문제는 외면하면 더 커져서 우리를 덮친다. 길거리흡연은 언제쯤 사라질까? 죄의식이 없는 잘못이 가장 큰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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