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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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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20대 여성이 일면식도 없는 한 남성에 의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강남 한복판이었고, 누구나 들를 수 있는 공용화장실에서 벌어진 사건이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가해자는 '평소에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이 사건은 낯설지 않다. 여성만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사건들은 최근까지 빈번하게 발생해왔기 때문이다.

2주 전인 지난 2일 대전에서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10대 청소년이 20대 여자의 머리를 벽돌로 내려친 사건이 발생했다. 이유는 '화가 나서'. 지난 4월 3일에는 키 185cm, 몸무게 130kg의 20대 남자가 여성을 상대로 폭행·절도를 하다 3개월 만에 붙잡혔다. 그 역시 "여자만 보면 때리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 "여자라서 죽었다" 등 추모객들의 소리 없는 절규가 벽면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저런 문구들이 '남성혐오적'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거나, 몇몇 '이상한'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전체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매도하지 말라며 억울해한다.

강력범죄 피해자 중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전체 강력범죄 피해자 2만6962명 중 2만3150명, 85.86%, 경찰청, 2013)을 그들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어째서 그들은 여성이 죽었다는 사실보다 '애먼 남성이 범죄자로 모욕 당하는 것'에 더욱 열을 내는 것일까?

이러한 대응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여성혐오(misogyny)'에 대한 문제를 깊이 인식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마음 깊이 공감하지 못해서일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남성들은 밤길을, 공중화장실을, 집에 가는 골목길을, 엘리베이터 안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일상적 공간임에도 혹시 모를 누군가 때문에 겪을지도 모를 죽음의 공포를, 강박적으로 느껴지는 그 감정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너무 단순한 이유 아니냐고? 그렇다면 그들에게 한 가지 사건을 상기해보라고 제안하고 싶다. 지난 2014년 5월에서 일어났던 '파주 모텔 살인사건'을 기억해보자.

똑같이 잔혹한 범죄, 왜 언론의 태도는 다른가

 <그것이 알고싶다 : 검정 미니스커트 여인의 비밀>편.
 <그것이 알고싶다 : 검정 미니스커트 여인의 비밀>편.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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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그해 6월 <그것이 알고싶다 : 검정 미니스커트 여인의 비밀> 편으로 방영되어 유명해졌다. 한 30대 여자가 채팅으로 만난 50대 남자를 경기도의 한 모텔에서 잔인하게 살해하여 시체를 유기했다. 그들이 만난 이유는 성매매를 하기 위해서였다.

파주 모텔 살인 사건은 평범한 가부장·중년 남성이 성노동자 여성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살해당한 사건이다. 가해자는 경제적 지원을 해주던 남성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정리하자 다른 남성(피해자)에게 분풀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재판 과정에서는 인격장애를 주장해 정신감정을 받기도 했다.

사건을 접한 남성들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서웠을까. 나는 감히 가부장-중년 남성들의 충격과 공포를 짐작하지 못하겠다. 대신 한 페이스북 페이지의 남성으로 추정되는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며 남성들이 느꼈을 당혹감과 두려움을 헤아려볼 뿐이다. 댓글은 "하다하다 성매매하는 창녀가 살인까지 하는 세상", "무섭다", "조심해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성에게, 그것도 최하위 계층인 성노동자 여성에게 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발생했다.

 한 페이스북 페이지의 <그것이 알고싶다-검정미니스커트 여인의 비밀>편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
 한 페이스북 페이지의 <그것이 알고싶다-검정미니스커트 여인의 비밀>편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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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치즈코의 책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 따르면, 근대는 일부일처의 단혼 가족과 매매춘이 동시에 확립된 시대다. 때문에 남성은 여성을 이중으로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 아내·어머니와 매춘부, 연애하기 좋은 여성과 결혼하기 좋은 여성, 요부와 숙녀 등. 여성은 성녀와 창녀라는 프레임에 갇혔고 그러한 이분법은 여성을 억압하고 성적으로 착취했다.

남성들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성매매 문화에 남성 자신이 희생된 사건이 파주 모텔 살인 사건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편리하도록 만들어놓은 제도가 부메랑이 되어 그 해악이 남성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가해자가 철저히 남성만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위의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과 닮아 있다. 가해자들은 계획적으로 '성별 선택적' 살인을 저질렀다. 두 사건은 모두 젠더 불평등적인 사회구조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두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온도는 너무나 다르다. <조선일보>와 <아시아경제>는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에 각각 <"여자가 무시" 목사 꿈꾸던 신학생 묻지마 살인>, <강남역 묻지마 살인범, 목사 준비하던 신학생 노숙하며 아르바이트>라는 제목을 달았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현재 수정된 상태다.

이러한 제목들은 '착하고 선량한 남학생이 오죽이나 화가 났으면 여자를 해쳤을까' 싶은 느낌을 자아낸다. 그에 비해 파주 모텔 살인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입장에 편향된 제목은 눈에 띄지 않는다. 또한 피해자의 성구매에 대해 비난이나 책망하는 내용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에서는 '여성이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았다'며 피해자 탓을 하거나, '남성을 무시한 여성은 죽어도 마땅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 제목이나 댓글이 넘쳐난다.

'미모의 전기톱 살인녀'... 본질은 이게 아니다

 조선일보와 아시아경제 기사 제목. 해당 기사들의 제목은 현재 수정된 상태이다.
 조선일보와 아시아경제 기사 제목. 해당 기사들의 제목은 현재 수정된 상태이다.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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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 화장실 살인 사건 가해자의 정신병력을 강조한 기사들의 제목이다.
 강남 화장실 살인 사건 가해자의 정신병력을 강조한 기사들의 제목이다.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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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언론이 두 가해자를 대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의 경우, 언론은 유독 가해자의 정신 병력을 강조한다. 언론은 경찰 발표를 토대로, 가해자가 심각한 조현병 증상을 보이고 있으며 치료약 복용을 중단한 것이 살해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파주 살인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외모와 여성이라는 섹슈얼리티를 부각시키는 기사가 많다. '파주 전기톱 토막살인녀'라는 식으로 가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해 사건을 명명하거나 제목에 '범상치 않은 외모', '미모의 용의자'란 표현을 넣는 식이다. '팜므파탈', '꽃뱀', '마녀' 등 성적으로 남성을 타락시키는 '악녀'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하나의 가십거리로 소비된다. 사건의 사회적 맥락은 축소되고 피해자는 '여자 하나 잘못 만나 신세를 망친 운 없는 남자'가 되어 버렸다.

피해자들은 그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서 재수 없게 죽은 게 아니다. 그들의 죽음을 그렇게 헛되게 할 수는 없다. '왜?'라는 물음과 사건의 본질이 사라진 자리에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살인'과 '미모의 전기톱 토막살인녀'만 남게 해서는 안 된다.

 파주 살인 사건 가해자의 외모를 부각시켜 보도하는 언론들.
 파주 살인 사건 가해자의 외모를 부각시켜 보도하는 언론들.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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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살인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외모와 여성이라는 섹슈얼리티를 부각시키거나 '토막살인녀'로 사건을 명명한 기사들이 많다.
 파주 살인 사건의 경우 가해자의 외모와 여성이라는 섹슈얼리티를 부각시키거나 '토막살인녀'로 사건을 명명한 기사들이 많다.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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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살해당하는 사회는 남성에게도 안전하지 않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이 뒤바뀌었을 뿐이지만, 사건마다 언론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범죄의 피해자가 남성일 때, 언론은 당연하게도 가해 여성의 잘못을 지적한다. 심지어 가해 여성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이투데이, 2014년 6월 30일 보도, <파주 토막살인 사건, 유력 용의자 몇 달전까지 성매매…시민들 "쉽게 살았네">). 그러나 피해자가 여성인 대다수의 사건을 다룰 때는 다르다. 초점은 항상 피해자에게 맞춰지며, 그 원인 또한 피해자에게서 찾아내려 한다.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도 이슈화되지 않았더라면 남성을 무시한 여자가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강남 화장실녀 사건'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사회에서 사건 자체뿐 아니라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작태 또한 여성혐오적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생존 자체를 '구걸'해야 하는 지경까지 사태가 악화된 것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젠더 불평등 사회라는 것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남녀 출생 성비 불균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남녀가 결혼 적령기를 맞이한 현재 남성 6명 중 1명은 짝이 없을 정도로 남성이 많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남성과잉사회>의 저자 마라 비슨달은 잉여 남성이 증가할수록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사회가 된다고 경고한다. 남성과잉사회란 남성의 숫자뿐 아니라 남성성 또한 과시적이고 과열된 양상을 보인다는 뜻이다.

많은 남성들이 더욱 '남자다운' 남자가 되기 위해 폭력과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남성들이 남성과잉사회의 약자로 전락할 것이다. 대로변의 화장실에서 죽는 사람이 이제는 여자가 아니라 서열싸움에서 패배한 남자가 될 수도 있다.

약자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한 지금의 상황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예고편이 아닐까. 여성은 이미 너무나 많이 살해당했다. 어떤 남성들은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을 위시한 많은 증오범죄가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회는 남성에게도 더 이상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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