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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채식주의자> 스틸 컷
 영화 <채식주의자> 스틸 컷
ⓒ 블루 트리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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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세계적인 상을 받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은밀하고도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폭력과 그에 두려워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상을 받았다. 언론은 기사들을 쏟아냈고 사람들은 그 소식을 전하며 축하하고 기뻐했다. 한국의 문화와 정신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 자랑스러워했다.

살인 사건은 같은 날 새벽에 일어났다. 범인은 '여자라서 죽였다'고 말했다. 이후 며칠 동안 많은 여성이 두려워했다. 자신이 그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에 치를 떨며 무서워하고 있다. 경찰과 언론은 곧 미치광이나 정신병자라는 면죄부를 주는 표현으로 그를 정의했다.

전문가들은 '한 미치광이를 사회적으로 관리하지 못해 생긴 범죄'가 문제의 본질이며 자신이 여자라서 살해당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은 피해망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이제 그만 하라고,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를 수 있으니 모든 남성을 싸잡아 범죄자로 몰아가는 행태를 그만두고 우발적인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살자고 말한다.

어렵다는 이유로, <채식주의자>에 은밀하고 당당하게 담겨 있는 폭력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고 우리의 삶과 일상에서 체감하지 못했다. <채식주의자>는 단지 '우리'라는 허구적 정체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도구로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책의 한 구절을 기억하고 현실에서 생각하며 사람들과 고민을 제대로 나눈 적이 없다.

7년 전 '여성의 날'에 특집을 만들었던 한 예능 프로에서 한 중년의 부인이 가슴이 터질 듯 소리쳤다.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안전하게 나다니는 것"이라고. "여성들이 위험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7년 전에도, 그리고 그보다 한참 오래 전부터 여성들은 두렵지 않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리고 조심해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그들을 쓸데없는 공포에 떤다면서 피해망상 환자로 치부하며 살고 있다.

두렵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있다. 두렵다고 외치는 것을 들으면 그렇다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왜 두렵다는데 두렵다는 것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가? 그 두려움은 결국 그들이 이겨내야 할 개인적인 것인가? 공포는 개인적인 감정일 뿐이니, 그래서 외치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을 그만두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할 참인가? 그게 아니라면 설마 '무서우니까 여성이다'라고 할 참인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폭력... 여성에겐 절박한 문제다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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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살인범이 정말로 미치광이라 하더라도, 그는 여자를 기다려서 살해했고 "여자가 나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많은 여성이 이 사건을 접하고 무서워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감수성이 철저히 여성에게는 단절되어 있고, 그들의 감정과 표현에 무심하다.

전체 남성들이 범죄자인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렇다.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고, 저지른 적도 없으며, 저지르지도 않을 선량한 남성들에게 살인자라는 누명을 씌우는 것은 분명 억울하다. 그러나 남성은 언제나 여성에게 위협이 될 수 있고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살해, 강간, 폭력, 위협 등과 같은 강력 범죄나 법적으로 처벌을 받을 정도의 범죄가 아니라, 언제나 우리 곁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이 존재하는 일상적인 폭력에 관한 것이다.

사람을 만날 때는 화장을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 예의이다. 하이힐에 올라선 탄탄한 다리를 훔쳐보면서도 절벽에 올라서지 말라며 여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운동화를 신으라고 한다. 친근하게 지내고 싶으니까 오빠라고 부르라고 한다. 식사를 먼저 끝낸 뒤에는 '고맙게'도 '친절하게' 기다려준다.

긴 생머리가 예쁘다는 칭찬을 한다. 대학 졸업한 여자가 혼자 지내는 것이 안 되어 보였는지 결혼은 했는지, 몇 살인지, 아직 장가 못 간 건실한 청년이 있다며 소개해주려 한다. 늘씬한 여자가 광고하던 음료수를 고르고 마트의 남자 캐셔를 신기한 듯이 바라본다.

'뭘 그런 걸 다 신경 쓰냐'고 할 정도의 것들이다. 오히려 몇 가지는 여성을 위한 훈훈한 배려가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문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나서 어떤 부분들이 폭력에 관한 이야기였는지 공감하기 어려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남성들은 직접 경험하지 못하고 실감하지 못하는, '뭘 그런 걸 다 신경 쓰냐'고 하는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수많은 것들이,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너무나 절박한 폭력이나 위협들이다.

우리는 남한이라는 이유로 언제 테러를 당할지 모르는 사회에 살고 있고, 집값이 언제 폭락할지 모르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회사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사회에 살고 있고, 언제 대기업들이 줄도산해서 대한민국이 망하게 될지 모르는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의 감수성은 그런 쪽으로는 대단히 발달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그렇게 살아온 '관행'에는 대단히 무딘 감수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여성을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고 폭력을 저질렀는데도, 전도유망한 학생이니 정상을 참작해준 사건도 그리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런 이상한 감수성으로 실제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무죄가 되는 판에, 법적으로 무죄라고 해서 범죄자가 아니라는 보장이 어디 있나. 설령 실제 범죄 위협보다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가 지나치게 크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여성들의 공포가 확대되고 증폭되도록 자각하지 않은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러한 사건들을 접하기 며칠 전에 영화 '곡성'을 보았다. 영화 내내 무서움에 떨다가 잠깐 화면이 그냥 평범한 동네 남정네를 비추었고 나는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놀라거나 무서워할 만한 장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뒤에서 한 여성이 '헉'하고 놀라는 소리가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들렸다. 몇몇 사람들이 그쪽을 보자 남자친구인 듯한 목소리가 창피해하면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왜 그렇게 무서워해."

그 여성은 지금도 무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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