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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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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만 싸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왜 싸울까' 알아보고 머리를 굴리다가 '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익숙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답답한 마음과 불면증을 곁들여 고민하다가 질문을 바꿨다.

'왜 싸울까'가 아니라 '어떻게 싸울까', 그것도 어떻게 '잘 싸울까'로.

싸우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늘상 우리네 다툼은 공허했다. 작은 성취의 경험조차 얻지 못하거나 지난한 시간에 흐지부지 횡과 열을 잃어버렸다. 싸움이란 단어는 죄가 없으나 우리는 지지리도 '못 싸우기 때문에' 늘 허무한 뒤처리만 했다. 쓰린 입이지만 어떻게 말을 건넬지 몰라 끝없는 평행선 위나 DMZ 어디쯤을 헤매며 포기했다. 제대로 잘 싸워본 적이 인생에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특히나 감정이 격한 혼돈 가운데 그 곁을 지켜야 할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아니, 사실 스스로를 위한 의무였지만 나 자신만, 내 자식만 아니면 된다는 맘으로 우린 살아왔다. 내게 있는 작은 책임으로 지금의 싸움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사람을 찾지 못했다. 내게 당장 아무것도 남지 않는 장사에 끼어들어 손해 보느니 잘라버렸다. 나는 그렇게 나와 희미하게 연결됐던 여러 생명과 슬픔과 인권을 내 손으로 미뤄뒀다.

이제야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지만 이대로 이도저도 못한 채, 허공을 때리는 말들만 바라보면 안 된다는 마음에 생각을 정리해본다. 가다듬으며 부족한 부분은 내일이라도, 내일 모레 글피라도 고쳐야 한다. 이대로 멈추면 안 된다는, 뭐든 그치길 바라며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삿된 마음이 앞서고 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이야기다.

여성혐오 살인 피해자의 추모, 시민청은 어떨까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강남역여성살인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피해자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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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공간적 분리가 필요해 보인다. 피해자를 연상케 하는 강남역 10번 출구와 여성혐오 반대를 외치는 운동의 자리를 조금이나마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추모를 위해? 그건 순진하다 못해 실수를 반복하는 발상이다. 추모의 정치적인 요소(누군가를 애써, 형식을 갖춰 기리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의도적인 것이다)를 유지하면서도 피해자를 배려하기 위해선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

분명 지금 이 시간에도 SNS상에서의 설전과 실제 싸움 앞에서 피해자의 주변인들은 굉장한 고통과 피로에 시달릴 것이다. 그녀의 장례를 치르며 넋을 위로하는 일과 이 사건에 공감하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분리해 심적으로 괴로운 이들, 나아가 고인을 존중하는 방식을 좀 더 강구했으면 한다.

또한 여성혐오 반대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 다양한 형태로,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주체가 정해졌으면 한다. 예컨대 여성혐오 사례에 대한 자유발언이 진행됐던 단상에 더 다양한 색깔을 입히는 작업을 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남성들이 군대에서 어떻게 여성혐오를 경험하는지,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여성혐오에 기반을 둔 억압을 받는지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지"라는 진부한 말이 어떻게 군필자·군미필자들에게 심리적으로 영향을 끼치는지 공유하고 싶다. 또한 보편적인 인권에 관한 시민강좌를 열고 여성혐오 반대에 관한 다양한 영상을 보고 토론하는 자리도 좋을 것 같다.

특히나 이번 사례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또한 이번 사건과 연결지어 '강남역'을 강조하는 보도가 이어질수록 피해자 주변인들은 2016년 5월 17일에서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다(이건 언론이 자중해야 하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한다).

묘책은 전혀 떠오르지 않지만 강남역 10번 출구의 추모 자리를 시청 앞으로 옮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시민청 같은 공간에서 지금의 온도를 이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정례화 하고 아이디어 공모를 받아 꾸준히 여성혐오를 낳는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으면 한다. 일부러 시민청을 언급한 건 보안 문제 때문이다. 대구에서 추모 자리에 괴한이 나타나 칼부림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나마 빠른 제압이 가능한 공적 공간을 제공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잘 싸워야 한다, 주저하지 말고 싸우자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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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렇게 쓰고도 민망하다. 이미 여러 문화 집회에서, 사회단체에서 해온 일을 내 생각인 것마냥 그럴싸하게 쓰고 있으니 어색하고 죄송하다. 또한 상징적인 공간을 떠난 채 문제제기가 이어진다면 침체는 가속될 것이다. 분위기는 가라앉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간은 많은 걸 덮을 수 있다.

논란에서 논의로 자라나는 게 이다지도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무엇보다 혐오에 대항해 분노하다가 자칫 혐오를 같은 선상에 놓고 다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무시가 상책일지, 제압하는 게 능사인지 아직 모르겠다). 끊임없는 점검과 성찰은 필수다. 이번만큼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싶다면 더더욱.

잘 싸우는 법에는 분명 감정을 아우르는 구석이 있어야 한다는 걸 1주일도 안 되는 기간에 실감한다. 정말 차갑게 고민하면서도 어떤 감정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걸, 그래서 심지어 혐오를 일삼는 그들에게도 창구를 열어두는 인내심까지 감안해야 세상은 진일보라도 할 수 있다.

오늘 하루 나는, 내 부모님은, 친한 남자애들은 어떤 편견과 여성혐오를 겪었는지, 되돌아보고 그들을 위해 '남 일이 아닌 듯'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다짐도 든다. 소심하지만, 그래서 글 뒤에 숨어 아무 것도 못하고 있지만 내 일상에서라도 작은 변화를 위해 내가 편하게 뱉던 말과 눈빛과 행동을 다시 주워섬겨야지 생각한다.

인간을 그 인간으로 보는 연습. 우리에겐 이게 시급하다는 걸 느낀다. 이걸 위해서라도 우린 '잘' 싸워야 한다. 주저하지 말고 싸우자. 일상에서, 광장에서, 잠들기 전 침대 머리맡에서 여러 번 고민하고 인간을 홀로 두지 않는 연습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진짜 좋은 싸움을 위해 너무 쉽게 체념하지 말자고, 내가 당신에게 부탁하는 말은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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