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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이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17일 강남역 근처 건물 화장실에서 처음 보는 여성을 칼로 찔러 살해한 30대 남성 A씨가 밝힌 범행 이유다. 처음 이 사건은 언론에 "묻지마 살인"이라는 보도로 등장했다.

이에 트위터 계정 '강남역 살인사건 공론화(@0517am1)'는 18일 오후 4시경 이 사건이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혐오 범죄'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한 추모 행동을 제안했다. 이 계정은 "23살 대학생이 여성혐오 묻지마 살인으로 살해당하였습니다"고 올리며 "강남역 10번 출구에 국화꽃 한 송이와 쪽지 한 장, 이젠 여성폭력과 살해에 사회가 답해야 할 차례입니다"라고 글을 게시했다. 그의 말처럼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는 시민들의 포스트잇과, 죽은 피해자를 애도하기 위한 국화꽃과 초가 쌓여갔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은 밤늦게까지 여성범죄의 피해자를 애도하는 사람들로 지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붐볐다. 이날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국화꽃이나 촛불을 놓고 추모를 하거나, 자신의 의견이 담긴 포스트잇을 강남역10번 출구 앞에 붙이는 등의 추모 행렬을 이어갔다. 어떤 여성은 현장에서 포털사이트에 달린 '여성 혐오' 댓글들을 읽어 시민들에게 박수를 받기도 했고 또 어떤 남성은 "남자라서 죄송하다"고 계속 소리쳤다. 한편, 어떤 시민들은 목에 피켓을 걸고 추모 행동을 넘어 내일 이 자리에서 촛불 집회를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이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이날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무엇보다 "'여자가 무시' 목사 꿈꾸던 신학생 묻지마 살인" 등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에 분노했다. 현장에 남아있는 포스트잇에는 "(피해자인)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알려주는 기사는 하나도 없네요"라고 적혀 있었고, 박00씨(여, 24)는 "여성혐오 범죄인데 기사들이 모두 사이코패스라 치부해 버리더라,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분노했다. 임선아(여, 24)씨 역시 "'묻지마 살인'이라고 기사가 많이 나갔더라, 만만한 여성을 골라서 죽인 것이지 않나"고 되물었다.

"근처 동네에 살고, 사건 현장도 친구들끼리 자주 나와 노는 곳"이라고 말한 김00씨(여, 25)의 말처럼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사건 현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강남역 대로에서 한 블록 떨어진 데 위치한 건물, 누구라도 드나들 수 있는 공중 화장실 중 한 곳이었다. '강남 유흥가'로 명명된 보도가 잘못됐다는 건 현장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 말은 결국 '유흥가'가 아닌 강남역을 방문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이번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뜻했다.

이날 현장에는 대체로 20대 여성들이 많았다. 17일 벌어진 강남역 살인 사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이 20대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김은채(여, 23)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나랑 같은 나이라 들었다, 그 여자 분이 살해당하면서 '왜 나인지'를 계속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고 그래서 두렵지만, 당신이 묻지 못한 왜라는 물음에 내가 대신 묻고 싶다는 글을 남겼다"고 말했다. 교복을 입고 학교를 마친 후 현장을 찾아왔다는 유00씨(여, 17)는 "저희가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포스트잇에 적으려 했다"고 현장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김유리(여, 20)씨 또한 "며칠 전까지 화장실 몰래카메라에 찍힐까봐 조심해야 했다면, 지금은 살해당하는 일을 걱정해야 한다"며 "단지 어린 나이에 여자라는 이유로 걸렸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계속 벌어지는 '여성혐오 범죄'를 걱정했다.

현장에 온 남성들 또한 착잡해했다. 글을 쓰기가 무섭게 눈물부터 터진 배00(남, 29)씨는 "포스트잇에 미안하다고 적었다"면서 "그냥 같은 남자라는 게, 가해자라는 게 미안하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정의(남, 28)씨는 "일단 추모를 하는 게 우선인 것 같다"면서도 "이 사회가 여성분들에게 안 좋은 사회라는 건 인정한다,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추모 메시지 남기는 예비역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이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태그:#강남역 10번 출구,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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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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