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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0번 출구에서, 17일 새벽 강남역 근처 한 건물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한 남성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를 추모하는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17일 새벽 강남역 근처 한 건물 화장실에서 일면식도 없는 한 남성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를 추모하는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 정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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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새벽,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 한 건물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 건물 화장실에서 20대의 한 여성이 한 남성에 의해 '묻지마 살인'을 당한 것이다. 살해 혐의로 체포된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살인의 동기를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해서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혐오 범죄라고?

"XX년이 일찍 집에나 들어가지"
"무슨 이게 여성혐오야. 메갈리아 또 한 건 했네."
"새벽에 쳐 돌아다니니까 뒤지지."

내가 한 말이 아니다. 해당 사건 관련 기사가 온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된 후 그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이다(일부 댓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어떤 사람들은 한 사람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기는커녕 이번 사건에 많은 사람이 '여성 혐오 반대'라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비난한 것이다.

그 후 추모의 물결은 '여성 혐오 반대'라는 주장과 함께했다. 강남역 10번 출구를 가득 채운 포스트잇과 그 곳에 오랜시간 머물며 피해자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을 통해 우리는 이번 사건이 단순히 '묻지마 살인' 또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죽인 사건' 만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위에서 본 이 살인사건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만 아니라, 평소 '페미니스트' '남녀 차별' 등의 이슈가 포함된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끔찍한 살인사건 이전부터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있어왔던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특이하게도 한국에는 많은 남자들이 듣기만 해도 질겁하는 단어들이 몇 가지 있다. 페미니스트, 메갈리아, 여성부, 남녀평등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인데, 이는 분명히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남성우월주의와 더불어 현재에도 내재되어 있는 약자에 대한 차별, 여성과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 등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여성들이 범죄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사회. 우리는 지금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가 되고, 여성들은 잠재적 피해자가 되어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여성들이 범죄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사회. 우리는 지금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가 되고, 여성들은 잠재적 피해자가 되어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 정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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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애도한다. 그 날의 '여성' 피해자를"

이번 추모의 물결은 SNS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공론화'라는 페이지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 국화 한 송이와 애도의 글을 남기고 오자는 누리꾼들의 의견이 이어졌고, 오늘 새벽까지도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추모의 물결 가운데,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에서 꽃집을 운영중인 김희연씨를 인터뷰 했다.

- 강남역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있었고, 그 추모의 발길이 이어진다는 걸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살인사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무서웠다. 특히 강남역 근처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더 그랬다. 추모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기 꽃을 사러 오는 것을 보고 젊은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즈데이에도 장미꽃 한 송이 사는 것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살인사건 피해자가 살해당한 것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10번 출구에 꽃이 쌓여가는 것을 보고 슬픔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요즘은 워낙 사건사고가 많아서 그냥 묻혀버릴 수도 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애도의 뜻을 전하는 게 참 놀라웠다. 그리고 꽃을 팔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숨진 그 분에게도 미안했다."

- 이번 추모의 물결에 '여성 혐오 반대'라는 구호가 등장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저도 기사에 달린 안 좋은 댓글들을 봤는데, '내 여동생이고, 누나고, 엄마가 저런 일을 당했다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추모행사를 한다고 할 때는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가까운 데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계속 보면서 나도 안타까움이 더해갔다. '여성에게 무시당해서 그랬다'는 내용의 가해자 진술을 보면서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피해자가 내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이 서로를 더 조심해야 하고, 여성으로서 이번 살인사건이 남의 일이 아니란 걸 실감했다."

"이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애도한다. 한 사람으로서, 한 남성으로서. 이번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한 여성과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끔찍한 일을 겪었던 수많은 여성들을 애도한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인해 한 여성은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도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살인사건을 '여성 혐오'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한 사람이 한 사람에 의해 살해된 사건'이라고만 여기더라도 살인사건 보도 기사에 대한 댓글과 이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조롱하는, 이 살인사건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혐오하는 SNS글에서 보인 일부 누리꾼들의 태도는 많은 사람에게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는 감정을 느끼게한다. 그리고 그런 댓글을 단 사람의 인간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 삶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비롯한 수 많은 인간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 존중이다. 이것들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여성 혐오 반대'라는 구호가 올바르게 작동할 수 없을 것이다. 부디 좋지 않은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지 않기를 바란다. 이 땅에서 '여성 혐오'가 없어질 때까지 아니, 인간성 회복이 이루어질 때까지 나는 외칠 것이다. "이런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 정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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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dm012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강남역살인사건, #여성혐오반대,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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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미래학을 기반으로 한 미래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어떻게 변하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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