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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새벽 1시경, 서울 서초구 한 건물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피의자 김아무개씨(34)를 긴급 체포했습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와 아는 사이가 아니며, 여성에게 자주 무시당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건 발생 장소와 가까운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추모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시민들은 국화꽃과 메모로 애도를 표했습니다.

메모에는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누구나 혐오를 기반으로 한 무차별적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네가 운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내가 운이 좋았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 15일에 왔었기에 운 좋게 살아남았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 이 운이 따라줄지 알 수 없다."
"어젯밤 저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했고 '운 좋게' 살아남았습니다. 여자들이 '운 좋게' 살아남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일인지, 담담히 적어낸 글도 있었습니다.

"엄마 사실은 나도 집에 늦게 들어가면 죽을까 봐 무서워. 집에 무사히 들어가면 감사해. 거짓말 같지? 난 매일 이야. 엄마 사실 난 엄마가 집을 나설 때도 무서워. 매일 무사히 집에 들어오길 기도해."
"내가 친구에게 화장실 좀 같이 가달라고 하자 남자 일행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화장실에 갈 때도 살해당하거나 강간당하거나 몰카에 찍힐 것을 두려워 해야 한다. 그녀는 나일 수도 있었다."
 "여자인 나는 매일 현관문을 열고 안전히 집에 들어 갔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여자라 살해당할 수 있는 지금, 여기. 저 오늘도 안 죽고 집에 갈 수 있을까요?"

이런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전체 흉악범죄 2만8097건 중 2만3544건, 즉 83.8%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였습니다.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과 활동가는 지난 18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이것이 어떤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나의 문제, 나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 공감하고 추모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나는 '조신'하지도, '조심'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여성으로서 살아남고 싶다."

'조신'하지도, '조심'하지 않아도 살아남고 싶다는 당연한 외침이, 누군가의 참담한 죽임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랍니다.



태그:#강남 살인 사건, #여성 혐오, #강남역, #추모, #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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