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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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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새벽 1시, 나는 학교 근처에 있는 원룸에서 발표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각, 어떤 여자는 서울 강남역 근처의 한 건물에서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건물 화장실에 갔다가 '여자'를 죽이기 위해 숨어 기다리던 '남자'에게 살해 당했다. 그녀가 죽어가고 있을 때, 나는 방충망과 잠금장치가 있는 안전한 원룸에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우연히, 나는 그녀가 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수없이 쏟아진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23살이라고 하니, 시간을 좀 거슬러 1994년으로 가볼 수도 있겠다. 나는 1994년에 태어난 여자이므로 나의 23년을 되짚어보면, 여자로 태어나서 여자로 살다가 여자라서 죽어야 했던 그녀의 삶에 대한 나쁘지 않은 복기가 될 것이다.

남아선호사상과 성추행을 지나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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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생 여성만큼은 아니겠지만, 1994년 역시 어머니의 배 속에 있던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지 못한 채 생물학적 '여자'라는 이유로 죽어야 했던 때다. 태어나보지도 못한 채 죽는 것도 죽는 것이라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다행히도 나는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려왔던 부모를 만났기에 태어날 수 있었다. 나와 비슷한 이유에서건 아니건, 그녀 역시 어쨌거나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녀와 나는, 운이 좋게도 태어났다. 만약 그녀가 나처럼 경상도에서 태어났다면 그녀는 출생에 좀 더 많은 운을 썼을지도 모른다.

나는 중·고등학교 모두 남녀공학을 나왔다. 중학생이 되어서 교복을 입게 되었을 때 나를 포함한 여자아이들은 브래지어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끈나시를 입고도 다시 그 끈나시의 흔적을 남들 앞에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조신하게' 행동했다.

노력이 무색하게 남자아이들은 우리가 팔을 들어 올리는 순간 같은 때를 놓치지 않고 낄낄댔다. 만약 그녀가 나처럼 남녀공학이 아니라 여중·여고를 나왔다면 나와 같은 경험은 없었겠지만, 대신 막다른 골목길에서 '바바리맨'을 만난 경험이 그녀에겐 있었을 것이다.

남아선호사상에서 고개를 끄덕거리던 당신은 브래지어와 바바리맨에 이르러 고개를 갸우뚱했을 수도 있다. 고작 그걸로 무슨 '살아남음'을 운운하냐는 의미일 줄로 안다. 그러나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여자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일련의 부정적인 경험들을 공유한다면, 그것은 세상 절반의 살아남음을 운운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아무 일 없기를 소망하는 날들

살인 피해자 추모하는 시민들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 살인 피해자 추모하는 시민들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지난 17일 새벽 노래방 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남역 살인'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인파가 몰리고 있다. 추모를 위해 강남역을 찾은 시민들은 추모의 글을 적은 메모지를 붙히거나 헌화를 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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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 교복 대신 원하는 옷을 입고 자유롭게 밤늦게까지 술을 마실 수도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자유의 대가로 수많은 날을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소망해야만 했다. 평소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지인이 술에 취해 나를 만질 때,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두울 때, 날씨가 더워 반팔을 꺼내 입은 날 내 상반신을 빤히 쳐다보는 할아버지를 마주쳤을 때, 나는 오늘 하루 행운까진 없어도 되니 나쁜 일만은 일어나지 말라고 소망했다. 최근엔 내가 가는 화장실에 '몰카'가 없기를 소망하기도 했다.

나는 특별히 '예쁘거나 매력 있는' 여자가 아님에도 자주 이렇게 소망했다. 그러니까 나와 같은 나이의 그녀 역시 비슷했을 것이다. 호들갑 떠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서 말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여자라는 이유로 자유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이상하다.

이런 식으로 나는 23년을 살아남아 왔다. 그녀의 23년이라고 뭐가 그렇게 크게 달랐을까.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아 왔던 그녀가 죽었다. 17일 새벽 1시, 번화가에서 남자친구를 만나다 잠시 들른 화장실에서 '여자라서' 죽었다. 내가 방충망과 잠금장치가 있는 안전한 원룸에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잘 준비를 할 때,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로 죽어 버리고 말았다. 죽임 당하고 말았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삶을 살고 있다.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던 한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요인으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내가 안전한 원룸에서 잘 준비를 하던 17일 새벽 1시의 일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지난 겨울, 방충망과 잠금장치가 있는 바로 그 안전한 원룸의 입구에서 나를 자신의 여자친구로 오인한 남자에게 붙잡힌 적이 있다. 그러므로, 참으로 우연히, 나는 그녀가 되지 않고 살아남는 중이다. 참으로 우연히.

그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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