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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하면서 읽는 게 대가의 고전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유년 시절 읽은 세계명작전집 이후 끝까지 읽은 고전 작품이 별로 없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10년 넘게 독서 중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에세이에서 감명 깊게 읽었다는 책 <위대한 개츠비>도 딱히 와 닿지 않아 '난 왜 이럴까, 혹시 난독증이 있나' 자책하기도 했다. 영화나 영상에 익숙한 세대인 이유도 있겠지만, 고전하며 책을 읽는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글의 구조가 전혀 다른 외국어를 번역하다보니 문장이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한 경우가 많았다. 더 큰 문제는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많은 책을 읽으면서 체득한 습관이 내 글을 쓸 때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는 점이다.

부자연스럽지만 습관이 된 문장, 표현이 얼마나 흔하고 중독성이 강한지 이 책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읽으며 깨달았다. 저자 김정선(남성)은 20년 넘게 교정, 교열 일을 하며 남의 문장을 다듬었다. 누군가의 문장을 읽고 왜 이렇게 썼을까 생각하고 다시 써 보는 것이 일이자 유일한 취미란다.

자신이 오래도록 작업해 온 원고들에서 숱하게 발견되는 어색한 문장의 전형과 문장을 이상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추려서 뽑고, 어떻게 문장을 다듬어야 하는지 읽기 편하게 정리했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혹은 게으르게) 쓰는 어색한 문장을 훨씬 보기 좋고, 우리말다운 문장으로 바꾸는 사례를 조목조목 설명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 크기도 손에 쏙 들어오는 문고판 크기라 가볍게 소지하고 다니면서 읽기 좋다.  

어색한 문장과 표현을 자꾸 쓰는 이유

책 표지.
 책 표지.
ⓒ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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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지루하고 딱딱해질 수 있는 글쓰기 강의를 기억에 쏙쏙 남도록 흥미롭게 설명했다. 책을 펼치면 나오는 첫 장 "적·의를 보이는 것들"은 그 가운데 하나.

접미사 '-적(的)'과 조사 '-의' 그리고 의존 명사 '것', 접미사 '-들'을 주의하라는 내용이다. 모두 문장을 진부하고 어색하게 하는 주범이다. 실제로 고전하며 읽은 고전작품 중엔 '적, 의, 것, 들'이 잡초처럼 숱하게 끼어 있었다.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적적적' 하는 게 영 보기 싫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다 빼 버릴 수도 없다. 다만 안 써도 상관없는데 굳이 쓴다면 습관 때문이리라. 가령 다음과 같은 표현처럼.

사회적 현상, 경제적 문제, 정치적 세력, 국제적 관계, 혁명적 사상, 자유주의적 경향'에서 '-적'을 빼보라. 훨씬 깔끔해 보인다. 그렇다고 뜻이 달라진 것도 아니잖은가. 그러기는커녕 더 분명해졌다. - 본문 가운데

위 사례처럼 문장이 어색하거나 불필요하다고 여기면 점차 쓰이지 않을 텐데 왜 이런 불필요한 표현이 계속 남아있는 걸까? 저자는 한 번 쓰면 그 편리함에 중독되어 자꾸 쓰게 되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아예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편리함의 중독자인지 글을 쓴 후 찬찬히 살펴보라 권한다.

'-적'이나 '-의'를 빼도 아무 문제가 없는 문장에까지 굳이 집어넣는 건 중독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내 경우를 떠올려보니 저자가 지적한 습관에다가, 다른 표현을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서 생긴 게으름 때문이 아닐까싶다. 저자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사례를 들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좀 더 다양한 표현을 담을 수 있고 더불어 문장력도 향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음악 취향의 형성 시기 → 음악 취향이 형성되는 시기
부모와의 화해가 우선이다. → 부모와 화해하는 일이 우선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를 배려한다는 것이다. → 사랑이란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게 하는 표현들

'문장은 손가락이 아니다' 편에서는 재밌게도 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누리꾼 사이에서 '박근혜 번역기'가 나올 정도로 난해한 발언과 관련이 있어서다. 흔히 문장 속에서 남발하게 되는 '그, 이, 저,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에 대한 내용으로, 유난히 '이렇게(이런), 그렇게(그런)'를 자주 쓰는 대통령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어졌다. 더불어 저자는 일체의 삿된 접속사를 쓰지 않는 '김훈체'로 유명한 작가 김훈의 소설도 좋은 처방전으로 추천했다. 

'지시 대명사는 꼭 써야 할 때가 아니라면 쓰지 않는 게 좋다. '그, 이, 저' 따위를 붙이는 순간 문장은 마치 화살표처럼 어딘가를 향해 몸을 틀기 때문이다. 특히 한 문단에 섞여 여러 번 쓰이면 그 문장은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게 된다.' - 본문 가운데

이밖에 "굳이 있다고 쓰지 않아도 어차피 있는", "당하고 시키는 말로 뒤덮인 문장",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 등 문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어쩐지 어색해 보이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장들을 곰곰이 살펴보게 해준다. 저자는 써서는 안 되는 낱말이나 표현이 반드시 제거해야할 바이러스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다만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엉뚱한 자리에 끼어들어서 문제가 될 뿐.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표현 같은 건 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적·의를 보이는 것들'등이 문장 속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읽는 데 방해가 된다면 빼는 것이 낫다.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면서 습관처럼 붙였던 군더더기 표현을 빼보니 글이 술술 읽힌다. 어떤 문장은 흡사 일본의 하이쿠(아주 짧은 정형시)처럼 검박하면서 여운이 느껴졌다. 글도 사람처럼 군살을 빼야 건강히 오래갈 수 있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볼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다가 문득 "Less is more"라는 말이 떠올랐다. '간결한 것이 더 좋다(혹은 아름답다)'라는 의미로 디자인이나 건축 분야의 격언 같은 말인데, 글을 쓰는데도 무척 유용한 글귀다. 문장이 늘어지려고 할 때마다 떠올려야겠다.

덧붙이는 글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글 | 유유 펴냄 | 2016년 1월 | 12000원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유유(2016)


태그:#김정선, #내문장이그렇게이상한가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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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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