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전북 전주에서 전투경찰로 군복무하던 김상회(59)씨는, 당시 접한 광주 소식을 고향에 편지로 알리려다 징역형을 받았다. 그의 편지는 국가에 의해 검열당했고, 국가는 그에게 '포고령, 반공법 위반'이란 죄명을 덧씌웠다. 이후 36년을 움츠린 채 살았던 그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으려 한다. 13일 서울 서초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났다. 아래는 김씨와 나눈 대화와 자료를 토대로, 그의 시점에서 쓴 글이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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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당시 전경으로 광주 소식을 편지로 알리려다가 포고령·반공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산 김상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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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나는 대한민국 전투경찰(아래 전경)이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위대와 수도 없이 대치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전북도경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포고령 위반, 반공법 위반. 너무도 무서운 죄목이 내 이름 앞에 나붙었다. 헌병의 주먹과 군홧발이 내 전신을 강타했고, 이후 징역을 살았다. 36년이 지난 지금, 나는 1980년 5월의 내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고자 한다.

강원대학교를 다니다 군입대한 나는 1979년 10월 부마항쟁에 긴급파견될 임시 기동대원으로 차출돼 전북도경 제 2기동대에서 복무 중이었다. 10.26 사건 이후엔 1980년 5월까지 전주에 남아 대학생들의 시위를 막았다. 당시 전주에서도 비상계엄 철폐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1980년 5월 14일, 전북대 학생들이 전경 기동대의 저지선을 뚫고 전주시내로 진출했다. 전주시청 앞 광장에선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때 나를 포함한 전경대는 최루탄을 쏘고, 경찰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진압했다. 그날의 현장은 차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5월의 봄햇살 아래, 하얀 셔츠가 피범벅이 되도록 경찰봉에 맞은 학생들, 신발이 벗겨진 채 맨발로 유리조각을 밟으며 건물 안으로 도망치는 학생들…. 지금도 그 모습은 내 뇌리에 생생히 눌어붙어 있다.

처참했던 광주, 가슴이 쿵쾅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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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호를 마친 뒤 오후 10시 30분 경, 나를 비롯한 분대원 10여 명은 광주 소식을 더 알아보기 위해 당시 고○○상경이 갖고 있던 트랜지스터 라디오 앞에 모였다. 하지만 평소 듣던 KBS, MBC 등 어떤 방송에서도 낮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광주의 참상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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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인 5월 21일, 나는 휴교령이 내려진 신흥고등학교 주변에서 순찰 근무를 마치고 부대 내로 복귀했는데, 이때 광주 소식을 처음 접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구내식당으로 막 들어섰을 즈음, 식당 내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통해 5월 18일 광주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짧은 시간 봤던 그 영상은 뒷날 국회 5.18 청문회 등을 통해 알려진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뉴스는 민간인과 군경이 맞붙었다는 등 광주를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종철 박사(전 5.18 기록물유네스코 등재 추진단장)를 통해 자료를 뒤져보니, 5월 21일 언론은 "광주 소요 6명 사망, 군경 5명 민간 1명, 건물 13채 파괴·소실, 유언비어로 상황 악화, 평온대책 강구" 등의 내용을 보도했다. 계엄사가 발표한 프레임이었다.

하지만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특히 현장에 있는 전경의 입장에서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전주에 계엄군이 배치됐을 때도 느꼈지만, '광주의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공수부대까지 배치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상식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광주의 상황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무반으로 돌아온 나와 동료들은 점호준비를 하며 각자 가족, 친구에게 연락해 광주 소식을 모았다. 익산 출신 남○○ 상경은 금마 공수부대(익산)가 광주로 출동했다고, 남원 출신 양○○ 상경은 남원에서 광주로 들어가는 길이 막혔다고, 임실 출신 임○○ 일경은 담양과 광주를 잇는 길이 끊겼다는 정보를 알려왔다. 우리는 5월 18일 이후 광주가 완전히 고립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점호를 마친 뒤 오후 10시 30분 경, 나를 비롯한 분대원 10여 명은 광주 소식을 더 알아보기 위해 당시 고○○상경이 갖고 있던 트랜지스터 라디오 앞에 모였다. 하지만 평소 듣던 KBS, MBC 등 어떤 방송에서도 낮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광주의 참상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 주파수를 이곳저곳 맞추던 중, 라디오에서 '치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생소한 방송이 흘러나왔다. 평소 듣지 못했던 말투였다. 북한방송이었다. 당시 북한에서 우리 방송국과 비슷한 주파수로 대남방송을 송출하곤 했다. 더군다나 그 방송에서 광주 소식을 내보내고 있었다. 다소 과장되긴 했으나, 분명 광주 소식이었다.

가족에게 쓴 두 통의 편지,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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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엔 이곳 전주에서도 굉장했었는데 우리 부대가 얼마나 살벌하게 죽여놓았는지,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고나 할까? 정말 처참하고 비극적인 광경들이 벌어지고, 또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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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북한방송을 듣게 된 직후인 5월 22일 오전 1시, 나는 불침번을 서며 누나와 동생에게 각각 편지를 썼다. 평소처럼 안부를 묻는 내용과 함께, 광주 소식을 편지에 담았다. 이 편지는 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지금 편지는 남아 있지 않지만, 최근 찾게된 당시 판결문을 토대로 편지 내용을 더듬어 볼 수 있다.

먼저 누나에게 쓴 편지에 텔레비전, 라디오, 내무반 동료들을 통해 수집한 광주 소식을 담았다. 그와 함께 5월 14일 전주에서 벌어졌던 시위 상황도 덧붙여 언급했다.

"지난 14일엔 이곳 전주에서도 굉장했었는데 우리 부대가 얼마나 살벌하게 죽여놓았는지,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고나 할까? 정말 처참하고 비극적인 광경들이 벌어지고, 또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냈었어."

관동대학교 학생이던 동생에게 쓴 편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겼다. 특히 동생에게는 몸조심하라는 내용을 강조했다. 신문을 통해, 비상계엄 확대조치 이후 강원도에서도 민주화를 열망하는 대학생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 동생은 소속학과 2학년 과대표였기 때문에 형으로서 동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때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1929)을 언급하며 광주의 저항정신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12.12 사태 이후 등장한 신군부 세력이,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할 군인이, 그것도 특수훈련을 받은 공수부대가 광주시민들을 짓밟았다는 걸 나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때문에 편지에 마키아벨리즘을 거론하며 당시 신군부 실세 전두환을 은연 중에 비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추신 형식으로 "북한방송을 들으면 왜곡, 과장한 사실도 있지만 사실적 근거는 있는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썼다. 이 두 통의 편지를 5월 22일 아침 부대 앞 인근 우체통에 넣었다.

정원 넓던 2층 양옥집, 그곳은 대공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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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당시 전경으로 광주 소식을 편지로 알리려다가 포고령·반공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산 김상회씨의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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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 같으면 일주일 안에 가족들의 답장이 왔는데, 이 편지에는 유독 답장이 없었다. 그런데 6월 5일 오전 11시쯤 부대 상황실에서 나를 호출했다. 내무반과 5m 거리도 안 되는 상황실로 즉각 뛰어갔더니 중대장이 "잠시 시내에 다녀오자"고 말했다. 중대장과 함께 지휘차에 올라 정원이 넓은 2층 양옥집에 도착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최○○ 실장이라는 사람이 대뜸 "너 어디 머리가 잘못된 거 아냐"라고 소리를 질렀다. 내 허리띠를 빼고, 군화를 벗기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된 건데, 그곳은 전북도경 대공분실이었고, 자해 방지를 위해 허리띠와 군화를 빼앗아간 것이었다.

다른 사무실로 이동하자 그는 내게 편지 사본 두 통을 내밀었다. '아, 편지가 검열됐구나.' 그때서야 내가 이곳에 끌려온 까닭을 알게 됐다. 곧바로 조사가 시작됐다. 나는 편지를 쓴 사실을 인정하고 숨김 없이 편지를 쓴 이유를 진술했다. 편지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두 곳이었다. 먼저 북한방송을 왜 청취했고, 동생에게 청취를 권유했냐는 것이다.

나는 광주 소식을 알고자 라디오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북한방송을 듣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현 시국이 위험한 상황이니, 대학생 동생의 시위 참가를 자제시킬 목적으로 광주 상황을 전하고, 북한방송 내용을 거론했다고 진술했다.

그들은 누나에게 쓴 편지 중 전주 시위 상황을 거론하며 "죽여놓았다"라는 표현을 쓴 부분도 문제삼았다. 내가 유언비어를 날조했다는 것이다. 나는 "죽여놓았다"라는 말은 평소 전경들 사이에서 "진압했다"는 말을 조금 과장해 쓰는 속된 표현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이후 최 실장을 비롯한 백○○ 경사, 김○○, 김○○, 심○○, 이○○ 경사 등 대여섯명의 수사관에게 밤낮없이, 시도때도 없이 조사를 받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없이 똑같은 심문을 반복했다. 내게 적용된 혐의는 포고령, 반공법 위반이었다. 나는 반공법은 간첩에게나 적용되는 법으로 알고 있었다. 특히 전주로 차출되기 전, 나는 간첩 침투를 막기 위해 8개월 이상 해안초소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반공법 위반이라니,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이었다.

또 당시엔 연좌제(1981년 3월 25일 폐지)가 존재했다. 아버지와 누나가 강원도에서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었기 때문에 나 때문에 가족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대공분실 옆을 지나는 철길을 보며 '저기로 뛰어들까' 상상도 자주 했다.

대공분실에 끌려온 지 15일 쯤 지나, 나는 전북 계엄합수단(보안대)을 거쳐 육군 35사단 헌병대 영창으로 옮겨졌다. 현병대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헌병 중사가 들어닥쳤다. 그는 "전경대 현역 놈이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북한방송을 듣고, 편지질을 했다"며 주먹으로 내 얼굴과 가슴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는지, 군홧발로 무릎과 정강이를 수도 없이 걷어찼다.

그 자리에서 고꾸라진 나는 왼쪽 무릎을 크게 다쳤다. 지금도 극심한 통증을 못 견뎌 자주 잠에서 깬다. 심할 때는 계단을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할 정도다. 가끔 산에 오르곤 하는데, 가방에 막걸리 두 병까진 담을 수 있지만, 세 병을 넣으면 걸을 수가 없다.

*<5.18, 어느 전경의 편지 (중)>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