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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만화. 이렇게 잘 어울리는 조합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야구나 축구, 농구를 좋아해 <공포의 외인구단>이나 <슬램덩크> 같은 스포츠 만화에 빠져들고, 거꾸로 만화를 통해 스포츠에 입문하기도 합니다. <마라톤 2년차>에 이어 프로야구를 소재로 한 만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편집자말]
최훈 작가의 야구 웹툰 <클로저 이상용>(RHK)
 최훈 작가의 야구 웹툰 <클로저 이상용>(RHK)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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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아닌 머리로 봐야 알게 되는 진짜 야구."

요즘 야구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뭐든 한번 꽂히면 깊이 파는 성격이라 야구 관련 자료는 인터넷부터 책, 영화, 만화까지 샅샅이 훑었다. 그러다 눈에 띈 작품이 스포츠 웹툰 작가 최훈의 <클로저 이상용>(전 10권, 알에이치코리아)이다.

야구광으로 알려진 최훈씨가 지난 2013년 4월 8일부터 <스포츠동아>에 연재한 이 작품은 지난 4월 8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꼬박 3년에 걸쳐 한 작품을 완성한 작가의 열정도 대단하지만, 단행본 10권에 해당하는 757화를 3년 동안 꼬박꼬박 챙겨본 독자들의 '팬심'은 경이로울 정도다. 특히 인터넷 지식백과 '나무위키' 등에는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특성과 행적들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작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독고탁-오혜성의 '초능력' 대신한 이상용의 '두뇌 피칭'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를 뜻하는 '클로저(Closer)', 이상용은 1980년대 야구 만화 주인공들과는 전혀 다르다.

올해 1월 타계한 고 이상무 화백의 독고탁이 던지는 S자로 휘는 마구와 빠른 발, 이현세 화백의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 오혜성을 무려 8할 타자로 만든 '드라이브 타법'이나 시속 160km를 넘나드는 강속구 같은 '초능력'은 없다.

이상용은 130km/h대 초반 평범한 속구로 2군에서만 10년 넘게 버티며 절치부심하는 그저 그런 무명 선수일 뿐이다. 공교롭게 그의 별명은 '뽀빠이 이상용'과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뽀빠이'다.

이상용은 '시금치' 대신 상대 타자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관찰, 절묘한 볼 배합 같은 이른바 '두뇌 피칭'으로 자신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다. 부상당한 마무리 투수 대신 1군에 등판할 기회를 잡은 이상용은 오랫동안 갈고닦은 필살기까지 더해 꼴찌로 전락한 팀을 위기에서 구한다.

자칫 뻔해 보이는 줄거리지만 실제 KBO 프로야구와 비슷한 팀 구성과 선수 캐릭터, 야구 이론뿐 아니라 구단과 선수들 속사정에 정통한 최 작가의 배경 지식들이 어우러져 작품의 현실감을 높인다.

여기에 야구팬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구단 프런트(운영자)들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 작품의 전작인 'GM(제너럴 매니저)'이나 후속작인 'GM2(드래프트의 날)'도 뛰어난 선수를 영입하려는 구단 스카우터들이 주인공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야구팀과 선수의 실제 주인공을 찾는 것도 색다른 묘미다. 이 작품에는 이상용 선수가 속한 서울 게이터스를 비롯한 9개 구단이 등장한다. 팀의 성격이 서로 뒤섞여 있지만 연재를 시작한 2013년 당시 지역 연고 기준으로, 서울 게이터스는 LG 트윈스, 서울 재규어스는 두산 베어스, 수원 램스는 현대 유니콘스나 넥센 히어로즈, 인천 돌핀스는 SK 와이번스, 대전 블레이져스는 한화 이글스, 광주 호넷츠는 기아 타이거즈, 대구 트로쟌스는 삼성 라이온스, 부산 선데빌스는 롯데 자이언츠, 신생구단인 매드독스는 NC 다이노스를 연상시킨다.

낯설지 않은 캐릭터들, KBO 구단-선수 분석 돋보여

최훈 작가 웹툰 <클로저 이상용> 등장인물들
 최훈 작가 웹툰 <클로저 이상용> 등장인물들
ⓒ 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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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캐릭터도 낯설지 않다. 우선 느린 볼과 두뇌 피칭으로 강타자를 제압하는 주인공 이상용은 두산 베어스 선발 투수로 활약하는 유희관 선수와 비슷하다. 또 메이저리그에서 뛰다 게이터스 불펜 투수로 복귀한 '박찬화' 선수는 누가 봐도 LA 다저스 등에서 활약하다 고향팀 한화 이글스에서 은퇴한 박찬호 선수다.   

이상용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부산 선데빌스의 강타자 김성욱은 롯데 자이언츠와 일본 재팬시리즈 MVP를 거쳐 현재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대호 선수, 대구 트로쟌스 소속 MVP 이현은 '양신' 양준혁 현 MBC스포츠 해설위원을 떠올린다. 최훈 작가도 3년 전 연재를 시작하면서 "등장인물들은 실제 선수를 모델로 했지만 여러 명의 특징을 뒤섞어 놓아 독자들이 쉽게 눈치 채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최 작가의 캐릭터 묘사가 관심을 끄는 건 그가 프로야구 카툰 등으로 현실 야구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어서다. 피규어(만화 캐릭터 모형)까지 만들어진 프로야구 10개 구단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프로야구 카툰 <돌직구>가 대표적이다. 또 매년 프로야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발간하는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도 최 작가의 카툰은 빠져선 안 될 백미다.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6>(하빌리스)에 등장하는 최훈 작가의 카툰과 프로야구 10개 구단 캐릭터들.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6>(하빌리스)에 등장하는 최훈 작가의 카툰과 프로야구 10개 구단 캐릭터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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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각 구단별 시즌 전망을 다룬 도입부 카툰도 흥미롭지만, 각 선수들의 특성과 현재 상황을 단 한 컷으로 압축한 카툰은 최 작가가 단지 웹툰 작가가 아니라 프로야구 전문가 반열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전문성은 야구를 단순히 극적 재미를 높이는 소재 정도로 활용한 기존 작가들과 최훈을 구별하게 만든다. 

하지만 현실 야구와 거리가 가까울수록 풍자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일부 구단이나 선수, 팬들은 마치 편파적인 경기 해설이나 언론 보도를 보듯 카툰 내용에 항의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메이저리그를 배경으로 2004년부터 연재했던 'MLB 카툰'에선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최 작가는 '클로저 이상용' 연재 종료를 앞둔 지난 3월 29일 <스포츠동아> 인터뷰에서도 "너무 똑같이 그리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누가 봐도 알 만한 인물을 그대로 썼다고 해보자, 그 캐릭터가 악역으로 나올 수도 있다, 술집에 가서 행패를 부리거나 한다면 팬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지 않겠나"라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클로저 이상용'에서도 일부 선수의 잘못된 행동이나 구단 프런트간 신경전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게이터스의 노감독을 몰아내고 감독 자리를 차지하려는 수석코치와 홍보팀장, 이들의 음모에 맞선 운영팀장, 전략분석팀의 대립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 평소 감독스타일에 불만이 있는 선수를 앞세워 언론플레이로 팀을 분열시키고 선발 등판을 앞둔 외국인 투수에게 술을 먹여 스캔들을 일으키는가 하면, 심지어 상대 팀에 작전 사인까지 흘려 팀의 연패를 부추긴다.

작품 속에선 이 같은 '꼼수'가 오히려 분열된 팀을 단합시켜 승승장구하게 만들지만, 실제 야구에선 만화보다 더 만화 같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무리 만화가 현실과 가깝더라도 풍자일 뿐이라고 가볍게 웃어넘기는 배포도 필요하지 않을까?


클로저 이상용 1 - 승리를 책임지는 마지막 선수

최훈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2014)


태그:#클로저 이상용, #최훈, #프로야구, #스포츠 만화, #야구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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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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